brunch

매거진 나도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영 May 19. 2022

이것이 Z세대의 다큐다

성덕

TV 예능프로그램에 아이돌 가수의 ′덕후′로 출연한 십 대 소녀는 자신을 ′성덕′(성공한 덕후)이라 자처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그의 스타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몇 년 뒤 그의 스타는 성관계 장면 불법 촬영 및 유포, 집단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었다. 졸지에 범죄자-스타의 팬이 된 성덕은 분노인지 슬픔인지, 여하튼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범죄자가 된 스타의 팬들을 만나보기로 한다. <성덕>은 오세연 감독 자신의 흑역사를 까발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사랑했기에 더욱 고통받는′ 같은 처지의 성덕들을 만나다가, 급기야 ′박근혜 석방 시위′를 이어가는 서울역 앞 태극기 부대에까지 이른다. 비속어가 난무하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설적이고 통렬하고 솔직한 자기 성찰적인 다큐멘터리.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영리하다.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 다음영화 movie.daum.net)




TV에 박제된 정준영의 열혈팬. 오세연 감독은 공중파 방송에 나가 찐팬임을 인증하며 오빠가 사인해준 대로 공부 열심히 해서 효도했고 대학도 서울로 갔는데, 정작 계속 노래하겠다던 그 사람은 무대가 아닌 법정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의 우상이 범죄자가 되어버린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법원 방청 후에 붉어진 눈으로 다 익지도 않은 컵라면을 씹어 넘기던 감독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2021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후 거센(!) 입소문을 타고 영화제마다 매진 행렬을 일으키고 있는 <성덕>. 그래도 나름 열심히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이제까지 봤던 작품 중에 1000000% 공감한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최초의 영화였다. 나의 오빠가, 나의 스타가 한순간에 범죄자가 돼버린 상황을 마주한 뒤 팬이 느끼는 상실감, 허무함, 분노, 슬픔 등등등.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이 말하는 모든 문장은 죄다 내 마음 그대로였다. 리얼한 표현과 위트가 가득한 인터뷰들이라 깔깔대며 웃으면서도 심장이 콕콕 찔리는 느낌….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해 산산조각 난 팬들의 마음을 풀어놓는 것을 넘어, 한가득 남아 있는 굿즈와 앨범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아직도 그들을 옹호하고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들여다보고자 했다.


‘(그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후반부 나오는 이 말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잘못을 했고 이제는 지울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렸지만, 한때는 내 온 마음을 다해 좋아했던 사람이 주어진 생명보다 먼저 사그라들지 않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너무나 알 것 같았다. 영화 상영 이후 있었던 GV에서 감독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우선 죽음으로서 그가 저지른 범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책임졌으면 하는 마음과 한 때 좋아했던 사람의 죽음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스타들을 만나고 그중 일부는 내 마음속에 들어와 나의 모든 것, 나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신만의 덕질 연대기를 꺼내놓지 않을 수 없는데, 나 역시 여러 오빠들(혹은 동생들..)을 마음에 담고 성장했고, 자막 없이 내 가수가 말하는 걸 이해하고 싶어서 뒤늦게 시작한 일본어로 유학도 가고 일도 하였으니 연예인 사랑이 나의 20대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저 너무 많이 사랑한 죄…로 잘못된 이를 좋아했던 나를 탓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한없이 애정을 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우리 자신을 멋지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특별 상영으로 관람했는데 워낙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라 올해 안엔 정식 개봉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나와 덕후 에너지가 비슷한 친구 손 잡고 한 번 더 보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영화였다.



성덕 Fanatic

오세연 / 87분 / 다큐멘터리 / 한국 / 2021

매거진의 이전글 쌓아온 세월은 개발과 공존할 수 없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