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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Jun 10. 2023

좋아하던 식당과 갑자기 헤어질 때

최근 몇 달간 매주 목요일마다 시청 근처에서 점심을 20~30분 사이에 후다닥 해치워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 나 혼자 애정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는데, 몇 주 건너뛰고 이번 주 목요일에 갔더니 세상에나, 지난 5월 31일 자로 영업을 마치셨더라. 마지막으로 점심 먹은 게 5월 18일이었는데 그다음 주에도 갔으면 문 닫는 걸 미리 알 수 있었을까? 헤어짐은 정말 갑자기 찾아온다. 





시청 주변 모든 회사원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오후 12시 반. 쉬운 선택지인 편의점 삼각김밥 대신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금방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무교김밥을 발견했다. 작은 빌딩 1층 출입구 옆에 자그맣게 자리 잡고 있던 가게는 나처럼 혼자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양쪽 벽에 길게 놓인 테이블과 가게 입구 앞 좁은 창가석에 종종종 앉으면 전체 열 명 남짓 들어가는 좁은 공간. 손님들이 서로 등을 마주하고 양쪽에 앉으면 가게 가운데는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로 좁은 통로밖에 남지 않지만, 마치 독서실에 앉아 있는 것 마냥 벽을 앞에 두고 편하게 짧은 점심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러 명이 함께 와서 식사하긴 어려운 공간이라 북적거리는 시청 근처 점심시간에 한자리 차지하고 혼밥하기에 좋은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이 맛있었다. 김밥도, 그 외 다른 음식들도 간이 과하지 않았고, 김치가 정말 맛있었다. 한국의 어느 식당을 가도, 일단 김치가 맛있으면 더 이상 볼 것도 없지. 이 비싼 서울 한복판에서 10년 넘게 장사하실 수 있었던 이유가 다 있다. 



하루는 주방과 가까운 제일 안쪽 자리에 앉았는데 눈앞에 사장님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00년째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건강하고 맛있는 김밥을 위해 어떤 재료는 지인에게, 어떤 재료는 가족에게 받고 있다는 등등 무교김밥만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왜 그 안내문을 사진 한 장 안 찍어두었는지 ㅠㅠ) 글을 읽고 나서 이곳에서 먹는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졌고, 비록 음식을 받거나 다 먹고 떠날 때 인사 한두 마디밖에 나누지 않는 사장님이었지만 혼자 내적 친밀감 상승! 



항상 밝은 얼굴로 여자 손님들에게 언니 언니하고 불러주신 키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장님과 두세 분의 조리 담당 여사님들이 계셨는데 이분들 사이가 화목해 보이는 것도 짧은 점심시간 동안 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어느 식당은 손님이 있거나 말거나 주인과 직원, 직원과 직원끼리 짜증 섞인 말을 던지는 경우도 왕왕 있는 걸.



코로나를 지나며 정말 많은 가게들이 생겼다가 또 사라졌지만, 이제 그 가게에 다시 가볼 수 없다는 게 많이 아쉬웠던 건 오랜만에 겪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딜 가던지 맛있게 먹었으면 꼭 나올 때 맛있었다 얘기하고, 내가 그곳에서 얻어가는 것들에 대한 감사를 그때그때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갑자기 헤어질지 몰라서 아무리 사진첩을 뒤져도 정작 중요한 김밥 사진은 하나도 찍어둔 게 없었다. 너무 편하게 먹는 음식이라 먹기만 바빴나 보다. 



마지막 인사글을 보면 사장님이 다른 곳에 가게를 차리시는 거보단 휴식을 선택하신 거 같단 생각이 드는데, 오랜 시간 일하시면서 돌보지 못한 여러 가지를 잘 보듬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다. 한 달에 한두 번 짧은 점심시간을 보내는 곳이었지만 배고픈 나의 뱃 속도 허전한 나의 마음도 따뜻하게 채워주었던 무교김밥. 감사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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