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도극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영 Sep 11. 2020

가장 보통의 결혼

2019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박강아름 결혼하다

한 커플이 있다. A는 오랜 시간 프랑스 유학을 꿈꿨고, 결혼 후 프랑스의 'ㅍ'도 모르는 배우자 B와 함께 프랑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A는 열심히 대학 입학을 위한 어학 공부와 포트폴리오 준비에 매진했고, B는 매일 두 개씩 도시락을 싸며 A를 뒷바라지하며 가사를 전담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육아까지 B의 몫이 되었다. B는 카메라를 향해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A의 말에 말한다 '나는 식모입니다' A는 우울해하는 B에게 집에서 운영하는 원 테이블 레스토랑 '외길식당'을 제안한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A와 B의 성별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A는 이 영화의 감독 아름이고, B는 그녀의 남편 성만이다. 우리의 고정관념이 완전히 부서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리얼하게 펼쳐지는 아름과 성만의 일상을 보며 종일 집안일과 밥만 챙기는 성만에게 주부 우울증이라도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다가도, 사실 이들의 관계가 가부장적 남녀 관계에서는 익숙하게 보아온 모습인데 나는 이제까지 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타박하게 되는 재미가 있다. 나에게도 깨야할 고정관념이 많다는 것을 영화를 보는 내내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너무나도 원했던 아름이지만,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큰 고통을 겪었고 자신이 왜 결혼을 했을까 되묻는다. 그 답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처음엔 남편 성만의 사회활동을 위해 시작한 '외길식당' 의 시즌 2를 오픈하며 방문한 다양한 커플들에게 결혼의 의미에 대해 묻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름의 기획안 피칭에선 '박강아름의 외길식당' 이었던 이 영화 가제가 결국 '박강아름 결혼하다'로 바뀐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보았다.


아름은 인터뷰했던 커플들의 이야기로는 찾고자 했던 '결혼의 의미'의 답을 찾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지만, 관객인 나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덩케르크 해변에 도착한 두 사람이 보리의 유모차를 함께 들고 모래밭을 걸어 거친 파도 앞으로 함께 다가가는 모습. 바다 앞에서 거센 바람을 함께 맞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부부로서 인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한 건설사 광고가 생각났다. 결혼한 지 4년 되었는데 맞는 게 하나도 없다는 두 남녀가 나온다. 둘은 집 안 곳곳에서 부딪힌다. 소리 지르고, 짜증내고, 놀리고 싸운다. 하지만 '좋은 걸 보면', '맛있는 걸 먹으면' 생각나는 사람이기도 한다. 서로 다르게 수십 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났고, 사람에 따라 수천수만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부부의 세계다. 하지만 좋을 때도 싫을 때도 함께 마주하는 것. 긴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보통의 결혼'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결혼생활은 충돌의 연속일 것입니다. 말투, 식습관, 생활패턴 심지어 집안의 온도와 같은 사소한 일들로도 서로의 옳고 그름을 지적하며 충돌하고 결혼에 대한 후회가 들 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부부가 된다는 것은 평생을 따로 살아온 두 사람이 어느 날부터 함께 살아가게 되는 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단순한 개인의 다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생기게 되는 마치 두 [문명의 충돌]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다르기에 매일 미워할 이유도 이해해야 할 일들 투성이지만 ‘가족이 된다는 것’은 서로의 다른 문명에 부딪혀보고 이해하는 과정들의 반복이 아닐까요? (출처 : KCC스위첸 유튜브, 2020 TVCF 문명의 충돌 https://youtu.be/B0wcoNbqihc)


아름과 성만은, 귀여운 딸 보리와 여전히 프랑스에 살고 있다. (이 글을 다듬으며 오랜만에 SNS를 보니 세 가족 모두 최근에 잠시 한국에 오신 듯 하다.) 아름의 다음 영화는 어떤 이야기가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박강아름 결혼하다>가 정식 개봉해서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땐 남편 손잡고 다시 한번 극장에 가야지.



박강아름 결혼하다 Areum Married

박강아름 / 85분 / 다큐멘터리 / 한국 / 2019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관의 역할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