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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적과 발산 Jul 30. 2022

부장님 왜 손절을 안 하세요?

우리의 뇌는 존버를 외친다.

직장인 안 대리는 요즘 들어 부쩍 잦아드는 김 부장의 한숨소리에 이유를 물었는데 원인은 주식이었다.

10만 원 넘게 간다는 삼성전자를 9만 원 초반에 매수했었는데 10만 원은커녕 현재 6만 원대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알못 안대리는 왜 8만 원일 땐 안 파셨냐고 물었더니 바닥인 줄 알고 물타기 했다는 김 부장의 대답에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왜 사람은 손해를 봤을 때 팔지 못하는 것일까?

이유를 알아보기에 전에 간단한 문제를 풀어보자.

깊이 계산하지 말고 직관적으로 생각되는 숫자를 떠올려 보시라.


문제 1) 1만 원짜리 주식이 10% 떨어졌다. 그렇다면 본전이 오려면 몇% 올라야 본전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10%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11%이다.(소수점 절삭)

문제 2) 40% 떨어진 주식은 몇% 올라야 본전일까?

정답은 67%이다.

즉 10% 손해 일 때는 손절을 하더라도 11%의 수익으로 원금 복구가 가능한 반면, 40% 손해 일 땐 67%가 올라야 본전이다.

90% 떨어진 주식은 약 1000% 수익이 발생해야 본전이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더 큰 손실이 나기 전에 작은 손실 상태에서 손절매한다면 작은 수익으로 원금 복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대다수는 실행으로 옮기질 못한다.

그 이유는 체감상 손실의 고통이 이익의 기쁨보다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좌: 대니얼 카너먼, 우: 故 아모스 트버스키

행동경제학 선두주자이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과 故아모스 트버스키 박사는 신기하게도 경제학자가 아닌 심리학자들이다.(아모스 트버스키 박사는 1996년에 별세했다.)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행동경제학 모델은 주류 경제학 기본 모델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비주류 학문으로 취급받아왔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국제적으로 많은 국가들에서 편입되고 있는 데에 반해 국내에선 아직까지도 인지도가 낮다는 건 정말 안타깝다.)

이 두 명의 박사는 인간이 예측과 확률 판단에 있어서 젬병이라 것을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증명함과 동시에 기존의 경제학 모델인 효율적 시장가설에 전적으로 반박했다.


<출처>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657

그중 한 가지 예로 인간이 이익과 손해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기쁨과 슬픔을 나타내는지 두 박사의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면 1만 원의 이득과 1만 원의 손실은 체감상 같아야 하지만 위의 표를 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가 100만 원을 벌었을 땐 100의 행복을 느끼는 반면, 100만 원을 잃었을 땐 200의 슬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래도 인간이 판단에 있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비이성적인 심리 덕분에 우리의 원시 인류가 긴 세월 동안 생존했고 우리 또한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비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데에는 인류가 진화해온 과정을 보면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생물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일차원적인 본능이 있다.

인간 또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존 시스템이 알고리즘화 되어있다.

즉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신체는 생존과 번식을 통해 유전자를 퍼트리는 행동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수백만 년간의 수렵과 채집을 했던 인간에게 손해는 곧 죽음과 가까워짐을 의미했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면,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농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식량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1백만 년 전, 소규모 공동체와 떠돌이 생활을 했던 원시인 청년 김조상 씨가 사냥을 통해 잡은 토끼를 잃는다는 건 칼로리 섭취를 하지 못해 생존하지 못하고 당연히 대를 잇는 기회 또한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유전자는 눈에 보이는 건 즉각적으로 다 먹어치우고(냉장고가 없으므로 저장 불가) 손실을 보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도록 시스템화 되어 왔던 것이다. 손해는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시시대에 적합했던 이 생존전략은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선 계좌잔고 바닥을 향한 지름길로 유도한다.

평가손익이 3% 일 때는 얼른 팔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지만 -30% 일 때는 비자발적 장기투자를 외친다.

우리는 고도로 발달된 환경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원시의 뇌를 가지고 있기에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우리의 본성과 반대로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는 본성을 쉽게 거스를 수 없다.

나 역시도 본성 앞에선 그저 비루한 생명체의 하나일 뿐이지만 주식시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제일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덜 바보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나긴 역사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기존 경제학 모델은 처음부터 틀린 가정을 통해 연구된 학문이기에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가정을 전적으로 무시한 채 어떠한 모델을 기준으로 매매에 임해야 하는지 다음 글에서 설명토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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