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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적과 발산 Nov 21. 2022

경제를 절대 예측할 수 없는 이유

잘못된 도구는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

전통경제학 모델에는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이 합리적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거래가 합리적인 조건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장은 효율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 기존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명석하다고 소문난 경제학자들이 하는 말이니 그럴듯해 보이는가?


주장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이루는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식견 있는 척해봐야 거짓된 명제에서 시작된 주장은 결국 반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수십 년째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통경제 학파는 반박을 인정하지 않는다.(극단적인 사건은 그저 예외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와서 반박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지금껏 쌓아온 명성과 함께 정통성을 잃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일종의 종교라고 봐도 무방하다.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동물이라면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있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다.

굳이 복잡한 경제 시스템을 예로 들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우리는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통체증이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정체가 발생한다.(합리적이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통체증은 예측할 수가 없다.(어느 지점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체증이, 얼마 동안 발생할지는 예측 불가하다.)

차가 많다고 해서 꼭 교통 체증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통행량이 적은 곳에서도 교통체증은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통체증은 효율적 시장가설의 대표적 모델인 종모양의 표준편차로 설명이 가능할까?

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실질적으로 가능하지 않지만 가능해 보이게끔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 경제학에서 항상 해오던 방식이다.)

이렇게 이어진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사람들은 경제를 마치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시장 전문가들을 소위 신격화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능해 보이게 하는 것'과 '가능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증거가 없다는 것'을 '없다는 증거'로 받아들인다.


교통체증은 통행량이 임계점(임계점의 크기는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음)을 유지해오다가 돌발스러운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임계점을 돌파한다(임계치에 다다랐다면 작은 크기의 이벤트로도 임계점 돌파가 일어난다.)

즉 임계점에 다다르더라도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으면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임계점이란 것은 사건이 일어난 후에만 임계점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종모양의 표준편차엔 임계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값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바른 시뮬레이션이라 함은 기존에 발생했던 이벤트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결과를 넣은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하지만 전통 경제학자들은 극단의 이벤트는 예외로 두고 시뮬에이션을 돌린다(바구니보다 큰 물건은 뺀 상태에서 무게를 측정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경제는 어떤 모양에 더 가까운가?

경제는 위의 그림과 같은 L자형 커브 모양의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

돈으로 움직이는 복잡계에 속한 경제시스템은 절대로 표준편차화 할 수 없다.

전통 경제학자들이 모델을 단순화시킨 상태에서 학문을 연구하기에 경제가 마치 단순계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학문이다.


소를 연구해야 하는데 동그라미 2개에 줄 4개 그어 놓고 "소라고 가정해봅시다"라고 하는 것이 경제학이다.

다음 글에서는 멱함수란 어떤 것이고 멱함수의 법칙을 따르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선 어떤 행동이 적절한 것인지 다루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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