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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Apr 22. 2024

25살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사로 산다는 것.


 올해부터 나에게 새로운 직업이 추가됐다. 그것은 무려 방통고. 말만들어서는 무슨 인터넷 강의라도 찍어 올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오신 어르신들과 학업중단 아이들의 출석 수업일에 나와 수업을 하고,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게 주된 역할이다.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들 중엔 당신들의 청소년기에 어떠한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못해서, 이제라도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기 위해 온 어르신들이 많다. 심지어 담임까지 하게 되었는데, 우리 반 최고령 학생은 71세로 나와 무려 46세 정도 차이가 난다.



 처음 교탁에 섰을 때 어쩐지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수업을 하는 첫 단원이 '행복'에 대해 가르치는 것인데, 꼴랑 25년을 살아온 내가 감히 이런 분들에게 행복을 운운하는 게 좀 이상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수업에 들어가 보니 다들 너무 어린 선생의 등장에 웃음이 터지셨다. 다행히 싫어하시는 않으셨다. 재롱잔치를 보는 기분이셨을까? 하지만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다들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수업시간이 40분 밖에 없어 빠르게 진도를 나갈 수밖에 없는데, 더듬더듬 대답도 하시고 필기도 열심히 하셨다. 아쉽게도 잘 알아들으시는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그들의 공부방법은 아주 고전적이다. 책 한 권 들고 다니지 않고, 커다란 패드와 애플팬슬로 슥슥 공부를 하는 청소년들과는 다르다. 과목마다 공책을 꺼내서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걸 그대로 적으려고 하고,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하면서 칠판과 공책을 오간다. 앞에서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오히려 내쪽이 재롱잔치를 보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배움의 대한 열정? 갈증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전후소설 속의 등장인물 같은 삶을 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어색하게 책상에 앉아 칠판을 보고 어렵사리 대답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사춘기가 있었을 테고, 그 예민하고 힘든 시기에 여공으로 미싱질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내가 가르치는 어린 친구들은 무척 풍족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꼰대가 되어가는 것이다. 노인이나 청소년이나 아마 저마다의 슬픔이 있겠지.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를 관두고 싶어 하고, 학교를 못 다닌 어른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 이제는 학교란 곳이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라기보단 누구나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고 싶어 한다가 더 맞는 말인 듯싶다.



 나는 태어나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할머님과 함께 살았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유년기는 거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머니와 함께 있었고, 그 덕에 애늙은이 같은 성품과 더불어 삶에 약간은 초연한 태도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노인들은 똑똑하지 않아도 지혜롭기 때문에, 그 나이에 요즘 아이들처럼 영어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 조기교육 학원에 다니지 않아 학업적으로 뛰어나지 않아도 성격이나 생각은 그들보다 먼저 자란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아주 큰 감사함과 그리움을 느낀다. 수업을 하는 방통고 1학년 2반엔 91세의 할머님이 계신다. 가장 앞에서 우리 할머니가 쓰셨던 삼배 모자 같은 걸 쓰시고 머플러를 하시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을 들으신다. 역시 알아들으시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지금 수업하는 부분이 몇 페이지인지 떨리는 손으로 책을 넘기신다. 어쩐지 나는 나를 길러주신 할머니가 떠올라 더 천천히 말을 하게 되고,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7세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한 번도 든 적 없는 생각이다. 이런 나는 오히려 방통고에 어울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분이 건강하게 졸업하시면 나는 그것으로 나의 소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분 한 분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며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도 너무 바빠 그럴 여유가 없었지만 아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건 대부분의 노인이 좋아할 것이다. 소위 '우리 영계 선생님'이 물어보는데 당연히 성실하게 대답해 주실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써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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