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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Apr 25. 2024

지옥도(地獄圖)

믿음과 신념에 대한 단편소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런 걸 대단한 고민인양 하는 햄릿에게 조소를 보냈었다. 당연히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나은데, 차라리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도가 현실적이지 않은가. 이러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햄릿에 저주에 걸려버려 죽느냐 사느냐 같은 것을 고민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살’ 스스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고민이다. 자살을 결심한 밤 대학가의 비좁은 술집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나는 술을 잔뜩 마시며 자살의 좋은 점을 설명하고 그 남자는 나를 대단하다는 양 치켜세워 주기도, 아이를 혼내듯 윽박지르기도 하였다. 술을 마시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지상으로 올라와 담배를 태우고, 다시 지하로 내려가 술을 마시는, 그런 불건전한 밤이었다.     

내 죽음을 구태여 설득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고작 오늘 처음 만난 이 남자에게 자살의 정당성을 설득하고 있었는데, 변변찮게 거절당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사람의 인생은 말이죠. 5살 정도에 피크를 찍고, 점점 내려가는 것뿐이에요. 물론 잠시나마 기뻐지는 이벤트는 있겠죠 대학의 합격이나 아주 뜨거운 연애처럼 말이죠. 하지만 결국은 우하향 곡선이다 이 말입니다. 왜냐? 자꾸 뭘 알게 되기 때문이에요. 어른의 고통, 세상의 풍파 따위의 것들을 하나씩 알게 될수록 우리는 점점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어요.”     


남자는 이번엔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눈으로 날 쳐다보았는데 도수가 높은 안경 뒤로도 눈이 제법 초롱초롱하고 크다는 것이 느껴졌다.     


“왜 하필 피크가 5살인 건가요? 그때 엄청 즐거운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뇨 그런 건 없어요. 그저 5살 땐 뭐 때문에 힘들었는지 기억이 안 나니깐 5살로 해버린 거예요. 6살 때부터 숙제란 게 생기고, 어린이집에서 친구란 게 생기고, 그런 게 다 불행의 원인이 되거든요. 아무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살면서 그런 일들은 더 많아질 거예요. 하루하루 살수록 점점 더 불행해지는 거죠. 나중에 치매가 걸리면 정신이 잠깐 들었을 때 목이라도 메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조금 앞당겨진 것뿐입니다. 하루하루가 기대되지 않으니 제일 또렷할 때, 제일 존엄하게. 그렇게 가는 게 아름다운 거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오늘 이렇게 즐겁지 않습니까? 어제는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이랑 재밌는 시간을 보낼 줄 알았겠어요? 저도 이렇게 미모의 여성분과 술을 마실지는 어제까진 전혀 몰랐다고요. 내일 또 행복할 일이 생길 줄 누가 알겠어요. 당신은 지금 너무 나쁜 의미로 과감한 거 같은데요?”     


이건 소위 플러팅 같기도 한 대답이다. 이 남자는 이런 식으로 능구렁이처럼 대답을 했다.      


“일단 처음 보는 사람이랑 시간 보내는 것 하나도 재미없거든요. 그리고 까놓고 말해 그냥 제 목숨이니깐 제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아주아주 존엄한 자기 결정성 같은. 뭐 긴 설명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제가 죽고 싶으니깐 죽는 거예요.”     


이 남자는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신기한 곤충을 발견한 곤충학자가 지을법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자기 목숨이 완전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 그렇다면 백 퍼센트 크리스천은 아니겠네요.”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속으로는 ‘당연히 아니지’라고 말하고 겉으로는 꽤나 의젓하게 “그러는 당신은요”라고 물었다.     


“저야 백 퍼센트죠. 천 퍼센트, 만 퍼센트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어쩐지 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었나 봐요. 크리스천이 이렇게 바에 와서 처음 보는 여자랑 말 섞어도 되는 겁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라 그런지 더 쏘아붙이듯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성이 소심한지라 혹시라도 기분 나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남자는 웃음을 잃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입을 뗐다.     


“아무래도 보통은 그렇지 않죠. 하지만 오늘은 좌우간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리곤 내 손 위에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 자신의 손을 얹었다. 전혀 에로스한 느낌은 없고, 마치 신부님이 ‘죄를 사하노라’ 따위의 말을 할 것 같은 태도로 말이다.     

남자는 나에게 자신의 집에 가보겠느냐고 말했다. 이상한 짓은 절대 안 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묵주반지를 보이며 말이다. 나는 만 퍼센트 크리스천과 바에서 만나 집에 같이 간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흥미가 생겼다. 술을 마신 남자가 이상한 일은 절대 안 한다라고 한다면 결코 믿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죽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그게 뭐가 중요할까. 세상엔 이상한 일 투성이고, 여기서 말하는 이상한 일이란 어쩌면 너무도 예상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물론 이런 남자와 처음 만나서 잠을 자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골목을 굽이굽이 돌았더니 낡은 대문의 단독주택이 나왔다. 집 안에 감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으레 볼 수 있는 낡은 주택이다. ‘이런 데에는 보통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고, 빛이 드는 창가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했다. 남자가 불을 키니 다른 집이라면 티브이가 있어야 할 거실 한가운데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예수의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엔 그림의 예수와는 다르게 무척 야윈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동상이 걸려있었다.      


“집엔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지금은 저 혼자 살고 있습니다. 아 물론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웃으라고 한 말인지 진심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웃음이 나왔다. 꽤 귀여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암요 저런 그림 앞에서 설마 그럴 리가요.”     


남자는 냉장고에서 보리차로 보이는 갈색물을 따라줬다. 별로 긴장한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술을 마시고 따라간 선배의 집에서 처음 이상한 짓(?)을 한 경험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처음 집에 왔을 때, 냉장고에서 생수병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셨다. 아마 술을 깨려고 그런 것이겠지. 나는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 그 조용하면서도 신경 쓰이는 소리와 물이 넘어가며 꿈틀거리는 선배의 목젖을 쳐다보았다. 처음은 으레 그렇듯 별로 로맨틱하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으며 묘한 죄책감과 고통, 허무함 같은 것이 머리를 가득 채워버린다. 그것을 사랑이란 포장지에 싸그리 집어넣고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포장하지만 가엽게도 사랑마저 없었던 내 경우에는 취기라고 하는 비닐봉지만도 못한 것에 쌓여 더욱 불쾌하고 기분 나쁘지 않을 수 없는 게 되어버린다.     


우린 조용히 소파에 앉아 액자에 걸려있는 그림을 쳐다보았다. 잠깐 정적이 흐르고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단독주택이니 괜찮다고 이야기하며 불을 붙였고, 나도 그를 따라 담배를 피웠다. 불도 키지 않고 있었지만 창문과 비슷한 높이에 있는 가로등의 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탁상 스탠드 정도의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닿는 곳에 있는 액자가 눈에 보였다. 액자 속 사람의 얼굴, 피어오르는 연기, 우리가 마치 그림 속 예수의 제사를 지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신은 신이 있다고 믿나요?”     


“글쎄요... 신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게 당신이 믿는 신일지는 모르겠군요.”     

남자는 조용히 웃었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지만 입꼬리만 조용히 올라가는 소위 ‘사람 좋은 미소’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제가 믿는 신이 있다고 믿을 것 같나요?”     


만 퍼센트 크리스천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까. 길에서 대충 ‘믿으세요.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어떻게 하면 믿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 말이다.      


“제가 만날 수 있으면 믿을 것 같네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연기를 내뿜더니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차를 한잔 더 가져왔다.     


“저는 원래 교회가 싫었어요. 주말마다 놀기도 바쁜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다녀야 했단 말이죠. 모태신앙이란 것이 보통 그렇습니다. 뒤늦게 교회를 다니는 사람보다도 더 믿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때였나 기도회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아주 큰 기도회였는데 어떤 사람이 기도를 하다가 막 울더니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어요. 어린 마음에 무서워서 어머니를 쳐다보니 어머니는 그이보다 더 격렬하게 무슨 말을 중얼거렸어요. 우리 어머니는 영어도 못하는 사람인데, 처음 들어보는 나라의 언어를 너무 자연스럽고 빠르게, 큰소리로 말이에요. 그때 뭔가 믿음과 비슷한, 호기심 같은 게 생겼던 것 같아요.”     


난 워낙 반대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반박할 말들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남자의 말을 끊고 싶지 않았다.      


“교회도 열심히 다녔죠. 하지만 제 안에 불신은 늘 있었어요. 학교에선 과학을 배우지 않습니까? 전 공부도 꽤 잘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꾸 배운 내용과 비교하게 되고, 믿기 어려운 부분이 생기고, 해결하려 해도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듣게 되니깐 나중엔 이게 오기로 바뀌어서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길로 교회도 안 가게 되고, 오히려 과학공부에 매진했어요. 부모님은 매일매일 방에 들어와서 저를 설득하려 하고, 집에 저렇게 큰 액자를 두고 저를 위한 기도를 하셨어요. 하지만 사춘기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면 감동을 받겠습니까.”     


“더 싫어지겠죠.”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꽤 좋은 대학에 자연과학과에 입학해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언젠간 내가 어머니를 설득하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에요. 주위에서 천재 소리도 듣고 외국에서 유학도 하고 그러다가 어머니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돌아왔죠. 갔더니 온갖 줄들을 다 달고 거의 숨이 다 끊어져 가면서 두 분이 누워있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환자에게 말하라길래 사랑한다고 하려 어머니 귓가에 갔는데, 그 숨이 끊어가던 분이 하신 말이 뭔 줄 알아요?”     


“교회 다녀라?” 나는 최대한 그의 기분을 살피며 대답했다.     


“하느님 믿어라, 천국에서 기다리겠다.”     


남자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장난칠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묘한 죄책감과, 우울감 그런 마음과 함께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말하시곤 심장이 멈췄어요. 드라마처럼 기계에서 일정한 소리가 나오면서. 근데 고통스러워하시는 표정을 짓고 심장이 다 멈춘 그때,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환희에 찬 표정을 하고 돌아가셨어요.”     


“사후 경직 그런 건가요?”     


“그렇게도 볼 수 있죠. 하지만 죽고 나서 표정이 일순간 밝아진 건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당연히 아버지 어머니가 죽어서 슬퍼야 하는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뭔가 증명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는 생각이요. 예전에 종교를 과학으로 증명하려 했던 시도들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어요 의외로 에디슨이 굉장히 오컬트 애호가였거든요.”     


“귀신 탐지기 같은 걸 만들었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정확히는 특정 주파수를 이용한 것이긴 하지만요. 그런 거뿐 아니라 영혼의 무게를 측정하려는 실험도 했었답니다. 사람이 죽는 그 순간 무게의 변화를 측정해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던 거죠. 실패했지만 그런 시도가 유신론적인 과학자들의 전형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당신도 유신론적인 과학자인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전 어머님의 그 눈동자가 분명 무엇을 봤다고 생각했어요. 환희에 찬 표정, 분명 천국이거나, 예수 그 자체를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서, 나의 호기심을 위해 그것을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믿음이라는 영역은 사실 이유로 믿는다기보단 믿을지 안 믿을지 결말을 정해놓으면 그에 맞는 이유를 갖게 되는 거거든요. 전 믿기로 결심하고, 증명하기로 결심한 겁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 소름끼치게 부모의 죽음 앞에서 이런 결심을 하겠어요. 하지만 전 아마 이것을 위해 나와 나의 어머니가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는 조금 흥분한 듯 보였다. 유신론적인 과학자는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어머니의 죽음에서 아이디어라니 좀 무서운 사람인가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사람이 죽어도 신경은 몇 초간 살아있어요. 그중 청각은 가장 오래 살아있고, 시각도 얼마간 살아있죠. 그럼 당장 죽더라도 얼마간은 우리의 시신경이 뇌로 무언가 신호를 보내고 있을 거란 말이죠. 죽은 이의 눈앞에 펼쳐지는 무언가를요.”     


“어머니가 천국을 보고 보내는 신호를 잡아내려고...?”     


남자는 기쁜 듯이 내 손을 잡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저곳에 이에 대한 설명과 가능성을 이야기해서 몇몇 신도들로부터 투자를 받았어요. 시신경이 보내는 신호들을 우리가 보는 세상처럼 변환시키는 장치들을 말이에요. 기계 속에서 죽으면 죽는 몇 초간 시신경이 보냈던 신호들을 저장했다가, 서서히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는 거죠. 사진처럼 만드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겨우 그림 정도로나 가능할 것 같더군요.”     


“당신 알고 보니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그렇지만 사람이 죽는 순간에 그런 대단한 장치들을 연결하는 건 불가능해요. 게다가 천국이란 건 너무 주관적인 게 아닌가요? 그냥 빛나는 무언가? 게다가 그림이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무도 믿지 않는 것뿐 아니라 무지막지한 기계장치를 사람이 죽는 찰나에 연결해 두는 것도 불가능하죠. 그래서 말이죠. 전 천국이 아니라 지옥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지옥? 지옥은 다른가요? 지옥은 어떻게 보여주죠?”     


“지옥에 가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옥에 가는 간편한 법이라. 교회를 안 다니면? 나쁜 짓을 하면? 그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이 남자와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자살.”     


“맞아요 자살입니다.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건 종교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교리죠. 게다가 죽는 시기를 자신이 정할 수 있으니. 아무리 복잡한 기계 속에서라도 할 수 있죠.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타이밍. 그는 정확한 타이밍을 특히나 강조했다. 자살이 필요한 사람과 자살이 하고 싶은 사람이 한 집 거실에 있다. 그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사람의 초상화 앞에서 말이다.     

 

“그래서 기계 속에서 자살을 해줄 누군가를 찾고 있는 건가요?”     


“네 방금까지 그랬습니다. 사실 그래서 당신이 무척 반가웠어요. 당신이라면 흥미 있어할 것 같았거든요. 물론 보상도 충분히 할 생각입니다. 죽음도 무척 편하게 할 수 있는 약을 준비할 거고요.”    

 

“싫다면요. 이건 그리고 분명히 범죄라고요.”


나는 범죄라는 말을 강조했다. 하지만 무슨 범죄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말은 없을 것 같아, 반박이 들어올까 불안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분명 발각될 것도 알고, 살인이나 자살방조 같은 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지옥에 갈지도 모르고요.”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이 사람의 각오란 무엇일까. 난 아까 들은 ‘오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에 가면서까지 지옥 그림을 보여주려는 이유가 뭡니까? ”     

남자는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천국에 보내기 위함이죠.”     


결의에 찬 미친 과학자. 아니 신학자? 결의란 것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졌다. 도무지 하나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동력이 호기심이면 과학자이고 믿음이면 신학자일 것이다.    

  

“관심이 가시면 한번 직접 보시겠습니까?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얼추 가닥은 잡혔거든요.”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지하실로 향했다.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방이었다. 마치 숨겨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꾸며져 있지 않고 필요한 물건들만 나열된 장소였다. 방 안엔 이젤이 있었는데 그 위엔 유럽의 도시로 보이는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붉은 지붕들과 파란 바다, 중간중간 높게 솟은 첨탑들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도시라고 할만했다. 그 옆에는 모니터와 수많은 선이 연결된 헬멧 같은 물건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바닥엔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았을 때, 버려진 그림들이 칠해진 물감과 함께 바닥에 달라붙어, 바닥에 어지러운 추상화를 그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공상과학과 스릴러가 뒤섞인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들려면 난잡하고, 차갑고, 비현실적인 세트장이 필요할 텐데 그렇다면 이곳이 제격이겠구나 생각했다. 아마 내가 죽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 공간에서 당장이라도 도망쳤을 것이다. 죽고자 마음먹었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호기심과 떨림으로 이 남자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저 헬멧을 쓰면 시각 정보를 모니터에 저장하고, 그것이 저쪽 프린트에서 그림으로 나타납니다. 한번 헬멧을 쓰고 저 사진을 쳐다보고 있어 보시겠어요?”      


남자는 커다란 헬멧을 내 머리 위에 씌우고, 천천히 사방에 달린 나사 같은 것들을 조이고 풀러 헬멧이 머리에 딱 맞게 했다. 그리곤 무슨 버튼을 누르자 머리 전체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이 저려 눈을 뜨기 힘들었지만 유럽의 사진을 쳐다보려 애썼다. ‘왜 유럽사람들의 지붕은 붉은색일까. 내가 유럽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이렇게 어린 날에 죽고 싶진 않았겠지. 저렇게 멋진 풍경을 보며 사는 사람들도 자살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기계가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헬멧을 벗기고, 그림은 몇 시간 후에나 나오니 위에서 자고 가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번호를 남기고 집에 갈 테니 그림이 완성되면 다시 한번 만나자 말하고 남자의 집을 나섰다. 참 특이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지나가면서 수없이 많이 봐왔던 보통의 단독주택 지하실엔 죽은 사람의 눈을 빌려 그림을 그리는 기계가 있고, 착한 인상의 남자는 사실 다른 이들의 천국을 위해 지옥에라도 갈 사람이라니. 신념과 과학, 두 마리의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내 옆에 숨죽이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난 저기서 죽고 싶은가.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가 내 대답이다. 난 죽고 싶은 거지 남에게 이용당하고 싶진 않다. 게다가 나와 관련 없는 신념을 위해 죽는 것은 더욱이 싫다. 마치 전쟁터에 떨궈진 용병 같지 않은가. 그저 한 번의 신비한 경험이면 족한 것이다. 이것이 그날의 감상이었다.      


며칠 뒤 남자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 그려진 그림을 주려는데 한번 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난 알겠다고 약속을 하고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개인 카페에서 남자를 기다렸다. 4월임에도 날씨가 30도에 육박하는 이른 더위가 몰려들었다. 해를 많이 봐야 뼈가 튼튼하다는데, 어차피 이젠 상관없나. 하는 마음으로 볕이 들지 않는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곧 남색 자킷에 나이에 맞지 않는 넥타이를 맨 남자가 둘둘 말린 캔버스를 들고 곧 도착했다. 밖의 더위를 주머니에 넣고 왔는지 남자가 앉자마자 더운 바람이 불었다.      


“많이 기다리진 않으셨죠? 투자자를 구하기가 영 어려워서, 아무래도 사람이 누군가 죽어야 하는 일이라 믿음이 투철하신 분들도 꺼려하시네요.”     


“아... 그렇죠...”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하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에는 조금도 관여하고 싶지 않을 테니깐. 남자는 자신이 특이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 남자는 캔버스를 펼쳤다. 그것은 내가 그날 본 유럽의 해안 도시였다. 마치 유화를 그려주는 AI가 그때 사진을 보고 그린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하지만 역시 미완성이라 그런지 그림이 많이 흐린 것 같았다. 내가 그 사진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가 세상을 놀라게 할 발명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사하죠? 완성되기만 하면 더 큰 사이즈도 그려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제 말을 조금이라도 믿어주겠죠.”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과학을 들먹이며 당신을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말을 전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목표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 이상으로 그의 광기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이죠. ‘남을 위해’ 죽고 싶지는 않아요. 당신에게는 순교겠지만 나한테는 이용당하는 거 같거든요. 돈을 준다고 했는데 죽는 마당에 돈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좀 더 돈이 간절한 사람을 찾아보도록 하세요.”     


남자는 조금 실망한 표정이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지만 하기 어려울 때 짓는 표정, 망설이는 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적절한 말을 찾는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내가 전에 만나던 남자는 늘 싸움을 회피하려고 했는데, 내가 조금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면 줄곧 이런 표정을 지었었다.     


“물론 그런 사람을 구한다면 돈으로 쉽게 설득할 수 있겠죠. 예를들어 자녀의 학비나, 가족의 수술비 같은 돈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되어버리면 그건 ‘자살’이라기보단 ‘희생’이 되어버리잖아요. 당신 말대로 순교처럼 보일 수도 있고요. 전 그게 걱정이어서 완전히 자의로 죽는 사람을 찾고 있던 겁니다.”     


남자는 나를 이용하려고 한 것은 맞지만 억지로 죽게 만든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고 연신 변명을 했다. 나도 이 남자가 이상한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닐 것 같다고 막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밉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더 어울렸다가는 나도 이상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아서 이제는 그만 끊어내고 싶었다.   

  

“당신의 연구 잘 되길 바랄게요. 지옥의 모습 같은 건 신을 안 믿는 저에게도 꽤나 궁금한 주제거든요. 그리고 지옥이든 아니든 눈으로 본걸 그려주는 기계는 좌우간 쓸모 있어 보여요. 제가 당신이었다면 이런 이상한 목적 말고, 좀 더 돈 되는 방향으로 사업을 했을 것 같네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남자는 날 붙잡지 않고 그림만 건넸다. 물감이 채 굳지 않은 부분의 캔버스는 기분 좋게 서늘했다.     

나는 집에 그림을 걸어 두었다. 좁은 자취방엔 어울리지 않게 큰 그림이 액자도 없이 걸려있으니 마치 미술품 밀수꾼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죽기 전에 저런 좋은 데나 한번 가봐야 하나’하며 아직은 죽기 아깝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다. 나는 아직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깐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쯤에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계획했었다. 어린 나도 데려가려고 돈을 더 쓸 각오도 하신 것 같은데, 나는 비행기가 두려워 울며불며 떼를 썼다. 하늘을 떠다니는 커다란 물체는 나에게 신기함이라기보단 두려움이었나 보다. 나중에 중학생이 되어서 중력이나 양력 같은 걸 배우고 나서야 그런 두려움은 줄어들었다. 놀이기구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롯데월드를 간 날, 나는 사람들이 위험해 보이는 기구들을 돈을 내고 줄까지 서서 타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겁쟁이로 보이는 게 싫어 눈을 꼭 감고 바이킹을 탔고, 도무지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나에게 놀이공원은 두려움을 버텨내는 아마존 부족의 성인식이 치러지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어른이 되어 그런 기구들을 만들어 내는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그들의 생계를 걸고 밤을 새워 설계했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은 점점 옅어졌으며, 의외로 우리가 당연하게 타고 다니는 자동차, 오토바이에서 몇 천배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것을 따ᅠ강떠올리며 놀이기구 따위를 무서워하는 것이 비이성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비이성적인 공포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이해하면 되고, 이해하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비행기의 원리가 아니라 비행기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 지금은 유럽의 먼 나라까지 돈만 있으면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몇 달간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종일 이어폰을 꽂고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상자에 출력된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었다.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일. 다른 사람과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컨베이어 벨트가 조금만 더 발전한다면 사람 따위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발전의 비용보다 이어폰을 낀 인간이 더 값싸기 때문에 나와 여러 사람들은 한 팔 간격으로 서서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붉은 지붕과 첨탑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도시에 가봐야겠다. 다녀와서 죽을지 거기서 죽을지, 혹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가 생길지 모르니깐. 괜히 여름에 죽었다간 내 시체에 구더기와 땅벌레들이 들끓는 것을 상상하니 차라리 겨울이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죽음을 미뤘다. 그 남자의 연락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종종 메신저로 그림을 보내곤 했었는데 도시의 풍경, 꽃, 열대에 사는 부리가 큰 새 따위의 것들이었다. 점점 좋아지고 있는지는 작은 휴대폰 화면으론 알아채기 어려웠다. 지옥을 그리기 위한 연습으로 지상 낙원을 그리고 있는 그 남자의 팔자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수중에 400만 원 정도가 모여갈 무렵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서부터 거친 질감이 느껴지는 경찰은 남자를 알고 있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전에 술집에서 잠깐 만나 집에 함께 갔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남자가 이상한 말을 했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으레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점점 따져가듯 물었다. ‘진술에 따라 용의자가 될 수도 있으니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대답하라’는 식이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끊고 싶었지만 이것 때문에 여행계획을 망치기 싫었기 때문에 그간 있던 일들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물론 남자에게 불리할 만한 이야기는 조금 줄여서 말이다.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기계를 개발 중이고 나에게 그것을 자랑을 하기 위해 집에 데려갔으며 나는 그날 기계를 체험했고 얼마 지나서 완성된 그림을 선물 받았다. 그것이 전부다. 이야기하는 동안 경찰은 타이핑을 계속했다. 그리고 나에게 고맙다는 듯 슬쩍 무서운 이야기를 전해줬다. 대학가에서 실종자가 두 명 발견되었는데, 모두 그 남자와 마지막까지 있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는 것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남자는 받지 않았다. 만 퍼센트 크리스천이 납치 같은 것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고 그녀들이 어디 가서 투신했거나 목을 매었을 것이다. 대충 그런 식의 상상을 했다. 나도 그날 밤 어딜 가서 죽었다면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테니깐 말이다. 그 뒤로 경찰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 남자가 잡혔다고 해도 나에게 연락은 오지 않을 것이다. 수사란 것은 아주 깊은 곳까지 그물을 내려 바다 밑을 기어다니는 광어를 낚아 올리는 것처럼 은밀한 것이어서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그 줄기는 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물류창고에는 나가지 않게 되었다. 더 많은 돈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어도 유럽 어딘가를 가는데 500만 원 이상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암막커튼을 친 방에서 티브이를 켜두고 낮과 밤이 없이 잠을 잘 수 있다. 배가 고프면 열 두 피스짜리 초밥을 배달시켜서 절반을 먹는다. 초밥을 먹는 이유는 간단한데, 먹고 바로 누워도 속이 부대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몽사몽 있다가 다시 배가 고파질 때가 되면 나머지 절반을 먹고, 초밥 장인이 고행을 하듯 그렇게 지내다 홈쇼핑 채널에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동유럽의 보물 크로아티아’라는 커다란 글씨 아래 펼쳐진 풍경에 나는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5박 6일에 299만 9천 원. 삼백만 원에서 천 원이 모자란 돈이다. 삼백만 원을 현금으로 내면 천 원을 거슬러 줄까. 재밌는 상상이다. 하지만 그런 문의는 여행 상품을 파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연신 떠드는 홈쇼핑 호스트 밑에 쓰여있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밝은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인사 뒤로 상담을 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할부에 관한 설명도 듣지 않고 여행을 예약했다.     


여행이 한주 앞으로 다가왔을 때, 그 남자의 번호로 문자가 왔다. 저장해두지 않았지만 이렇게 미리 보기에 ‘...’이 있을 만큼 긴 문자를 보내는 건 그 사람뿐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담배를 찾았다. 오랜만에 몸을 감싸는 긴장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심호흡을 하듯 연기를 깊게 내뿜은 뒤 문자를 읽기 시작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안타깝게도 잘 못 지내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오해를 받아서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렸거든요. 아무래도 제 연구는 세상과는 맞지 않나 봅니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아 이용하는 게 사실 좋은 일은 아니란 것을 압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없기 때문에, 워낙 가치 있는 일에 쓰이는 것이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시켜 왔지만 세상을 설득시키는 것은 아직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결국 완성시켰다는 겁니다. 지옥의 그림을 완성시켰어요. 분명히 똑똑히 지옥입니다. 지금 제 상태론 그 그림을 가져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그 그림을 시내에 있는 OO교회 A 씨에게 전달해주지 않겠습니까? 오늘까지 전달되지 않으면 인간들은 계속 의심하면서 살게 돼요. 하지만 전달된다면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당신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몰라요. 이번만큼은 당신이 노아입니다.”     


남자의 문자엔 사진도 한 장 첨부되었는데, 자신의 집과 지하실의 비밀번호가 적혀있는 메모장이었다. 문자 속의 남자는 어쩐지 다급해 보였다. 물방울이 휴대폰 액정에 떨어져서 오타가 생기는 것처럼 온갖 곳에 오타가 있었다. 나는 곧바로 남자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나는 노아가 누군지 잘 모른다. 배를 만든 사람이니, 조선사라고 불러야 할까. 세상에 모든 동물을 싣고 다녔으니 사육사라고 불러야 할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구원자가 되어달라는 그의 간절한 부탁이 아니라, 지옥의 그림에 대한 호기심으로 채워져 있었다. 지옥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는 마음 말이다. 정말 뿔이 달린 붉은 피부의 악마들이 용암이 펄펄 끓는 탕에 사람들을 집어넣고 있을까. 지옥에 갔다면 이미 다 죽은 마당에 그런 우스꽝스러운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지옥이 두려워서라기보단 천국을 가고 싶어서 신을 믿고, 자신을 바쳐왔던 게 아닐까.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꼬리의 끝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어떤 근원적 질문 같은 것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실재하는가?’     


내가 여기서 그림을 가지러 간다면 난 분명 의심을 받을 것이다. 결백을 주장하려 몇 달이 걸릴 테고, 모아둔 돈도, 크로아티아도 사라지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아쉽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그것들은 죽음 앞에선 사소한 것들이다. 크로아티아의 멋진 풍경은 거기에 사는 사람에겐 일상일 테고, 돈 따위는 누구도 언제든 벌 수 있다. 하지만 지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지금 뿐이다. 죽어본 사람은 없으니 누구게에도 일상은 아닐 것이다. 지옥이란 것도(존재한다면) 누구나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살아서는 결코 볼 수는 없다. 죽음 앞에선 우리 모두 장님이 되어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불은 나에게만 있다. 나는 ‘노아’가 아니라 ‘프로메테우스’가 더 적합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막 커튼을 거두어도 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세상은 캄캄해져 있었고, 나는 서둘러 겉옷과 모자를 챙겼다.     


대학가엔 골목골목 길은 많지만 사람이 다니는 길은 몇 개 없다. 큰 골목들은 빼곡하게 싸구려 주점들이 차지하고 있고, 드문드문 학생들이 보인다. 그런 굵직한 골목들 사이에 잎맥처럼 나있는 작은 골목들은 누군가 건물의 소유권을 나누려고 아스팔트로 그린 경계선이 되거나, 술집에서 주기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대학생들의 흡연장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의 집을 갈 때 일부러 그런 작은 골목으로 갔다. 담배꽁초가 유독 많이 떨어져 있는 그런 길로 말이다. 낮에는 계절마다, 날씨마다 제각기 색이 다르지만 밤은 온통 검은색 하나다. 예전에 색이란 개념을 처음 배웠을 때 느꼈던 충격을 기억한다. 색이란 것은 사실 정해진 것이 아니며, 빛이 부딪히는 각도에 따라 그렇게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각기 다른 페인트 통에서 페인트를 벽에 칠하면 벽에는 서로 다른 아주 작은 돌기가 생겨 빛을 반사하는 상상을 했다. 세상에 아주 작은 각도의 서로 다른 돌기들이 이곳저곳에 돋아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평평한 것은 검은색인 것일까. 검은색은 빛을 반사하지 못할 테니 돌기가 아니라 구멍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집이 보였다. 그가 혼자 살았던 집이다. 부모를 잃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연구를 시작한 과학자. 하지만 종교인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사실 과학자 중엔 종교인이 많다는 내용의 유튜브를 본 것도 같다. 아마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다시 그들만의 합리적인 주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메모장에 쓰여있는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캄캄한 거실에 전에 봤단 그림이 걸려있고, 소파에는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나는 잠시 그 그림 앞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저는 당신을 잘 모르지만, 늘 궁금했기 때문에 여기에 왔습니다.’      


속으로 그림 속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은 없었고, 담배 연기는 어쩐지 자꾸 눈으로 와 눈가가 따가웠다. 담배를 다 태우고 지하실로 걸음을 옮겼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공포영화의 세트장 같던 그곳으로 내려갔다. 전보다 훨씬 정돈된 그곳엔 여전히 침대가 있고 그 위에는 남자가 누워있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지하실에 비명이 울려 메아리를 쳤다. 침대엔 그 남자가 자신이 개발한 그 조잡한 헬멧을 쓰고 있었다. 나는 남자에게 달려가 헬맷을 벗기고 그를 흔들었다. 숨은 끊겼고, 그는 실핏줄이 모두 터져, 흰자위가 전부 붉게 물든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손을 떨며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남자는 분명 자신의 의지로 여기에 누웠을 것이다. 순교자의 마음으로 분명히. 나는 동정심보단 두려움이 들었다. 아마 죽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을 그의 시신이 지하실의 서늘한 공기로 식어가고, 부릅뜬 붉은 안구는 이 세상의 것이라기보단 지옥에서 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눈을 감기고 그림이 출력되는 프린트로 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출력된 그림은 온통 붉은 물감으로 칠해져 있었다. 하지만 붉은 것들의 명암 정 가운데 희미하게 사람의 형태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담배 연기처럼 옅고 흩어지는 모양으로, 생겨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 어느 하나로 확신할 수 없는 형태였다. 나는 그림을 더 밝은 전등의 아래에서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분명 무언가 일부러 그려졌다고 할만한 것이긴 했다. 이것은 긴 머리의 인간인가. 꽃 같기도 하고 빛이 번지는 모양 같기도 하고. 누구는 예수라고, 누구는 주마등에 스치는 어머니의 얼굴이라고, 누구는 터진 안구의 빛 번짐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저 자신이 믿는 대로 봐도 좋은 정도의 애매함. 하지만 적어도 저것은 악마이며 이곳은 지옥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남자에게 당신은 완전히 병신 같은 짓을 벌인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아니 더 진작 이야기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그가 말했듯 이유가 결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정해두고 이유를 만드는 것이니깐. 그도 아마 자신의 죽음을 정해 두었을 것이다. 삶은 마치 목줄을 찬 개처럼 죽음의 뒤로 순종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담배가 다 탈 무렵, 내 두근거림도 가라앉았다. 어쩐지 지금의 이 상황이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놀랄 것은 없다. 그도 나도 모두 죽고 싶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형태로 말이다. 지옥은 아마 없거나 이렇게 쉽게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도 역시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림을 챙겨 지하실을 나왔다. 풍경은 조금도 변해 있지 않았다. 나는 거실에 있는 예수의 그림 앞에서 난생처음 기도를 했다. ‘그가 원하는 곳에 가게 해주세요’라고 말이다.     

 

그림은 교회에 전달했다. 목사는 신의 얼굴이라고 떠들어 댄 것 같지만, 세상을 뒤바꿀 만한 일은 되지 못했다. 경찰은 사정을 듣고는 괴짜 같은 자살 사건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실종된 여자들은 가출 청소년들 사이에서 발견되었고 남자의 누명도 벗겨지게 되었다. 패키지여행으로 떠난 크로아티아에는 역시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가 있었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았고, 난 추락하지 않고 무사히 땅을 밟았다. 내 죽음은 좀 더 미뤄졌다. 어쩐지 죽고 싶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스스로 죽어버린 그가 너무 허탈해 보여서인지, 지옥에 미친 듯이 집착하는 사람을 봐서 ‘진짜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되뇌면서 잠깐 지옥 문턱까지 갔다 왔다고 생각하며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결심이란 것은 또 이유를 만들어 내고, 삶을 만들어 낼 것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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