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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Nov 28. 2023

반쪽짜리 남자


  비극은 언제나 불쑥 찾아오는 법입니다. 제 비극은 평범한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던 중에 찾아왔습니다. 대학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밥을 먹고 있었는데, 어쩐지 음식이 이에 자주 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오른쪽 위 어금니 쪽에 음식이 자꾸 끼어 몇 번 씹고 혀로 어금니를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그냥 조금 불편하게 먹어야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돌연 룸메이트가 벼락같은 말을 하지 뭡니까.     


“너 오른쪽 눈을 안 깜빡이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눈을 깜빡이는 건 보통 의식하지 않은 채로 하는 행동이니까요. 당연하게 20년간 깜빡이던 눈이 깜빡이지 않는다. 무척 이상한 일이지만 의식할 순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 하고 대수롭지 않은 척하며 식판을 퇴식구에 버렸습니다. 룸메이트와 나는 식사가 끝나면 물을 마시는 습관이 있어서 스테인리스 컵을 꺼내 차가운 물을 담았습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밸브에서 가장 시원한 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곳에서 물을 뜨는 것도 역시 습관이었습니다. 차가운 물을 목으로 넘기는 순간. 주륵. 물이 입에서 새어 나갔습니다. 아주 차가운 물이 제 오른쪽 가슴 쪽으로 떨어졌고 그때 무언가 잘못된 대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식당이 있는 10층에서 우리의 방이 있는 9층까지 내려가는 길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 얼른 거울을 보고 눈과 입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성큼성큼 몇 칸을 뛰어 내려가 방문을 열고 화장실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거울을 보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알아버린 오이디푸스의 심정이 이랬을까요? 저는 결국 용기를 내 거울을 보고 말았습니다. 비극적인 저의 운명을 목도해 버린 것이지요. 제 얼굴은 정확히 반으로 나눠 왼쪽은 평소와 같았으며 오른쪽은 완전히 멈춰있었습니다. 마치 또 다른 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눈을 깜빡이려 해도 왼쪽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원하는 만큼 깜빡여졌지만, 오른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빤히 쳐다봤습니다. 아아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도대체 이런 비극은 들어본 적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이런 말씀 드리기 정말 죄송하지만... 폐암 말기입니다...’라는 식의 대사를 던지면, 환자 역을 맡은 배우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대성통곡을 하다 이내 정신을 조금 차리고 ‘그럼 저...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와 같은 뻔한 질문을 하고, ‘6개월 정도 살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의미 있는 6개월을 보내다 감동적으로 죽는 그런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에는 옆에 어렵게 말을 꺼내는 의사도 없고, 저는 대성통곡을 하는 배우도 아니었습니다. 정확히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도 지을 수 없었습니다. 표정을 구기려 해도 제 오른쪽 얼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으니깐요.          



  그날로 저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마침 대학병원이 근처에 있어 금세 자리를 얻었지요. 일반적으로 병원은 아파서 오고, 입원은 몹시 아프면 하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저 얼굴이 움직이지 않았을 뿐, 당장이라도 뭐든지 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오히려 아픈 것은 정신이었습니다. ‘신경과’가 아니라 ‘정신과’에 입원하는 편이 나았을 테지요. 온종일 이상한 검사들을 잔뜩 받아버리고 나니 제가 익히 느끼고 있는 것들을 수치로 알게 되었습니다. ‘안면신경의 98퍼센트 정도가 죽었습니다’와 같이 말입니다. 오른쪽 얼굴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람세히헌트’라는 병 때문이고, 며칠간 이어졌던 귀의 통증이 사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부지런히 제 신경을 공격하고 있었고 마침 귀 뒤편에 있는 안면신경들의 톨게이트 정도 되는 곳을 끊어버렸다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습니다. 기막힌 우연이 아니겠습니까? 마침 귀밑에 조금 바이러스가 들어왔다고 얼굴 반쪽이 날아가 버리는 게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마침 방학이 시작하는 날 입원을 하게 되어서 누구도 제 얼굴이 반쪽이 된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룸메이트 녀석 정도만 그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지는 몰랐을 것입니다. 몸이 아픈 병은 아니니 말입니다. 병원에서도 딱히 해주는 치료는 없었습니다. 병원식을 먹을 필요도 없고, 그저 귀에 온 바이러스가 뇌로 가지 않게 하려고 하루 몇 번 약을 먹고, 다 죽어버린 신경이 어제보다 살아났나 의미 없는 검사를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장례식에서 매일 관을 한 번씩 열어보는 셈입니다. 어제 죽은 것이 오늘 살아올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매일 검사를 해주는 덩치가 큰 남자는 전선이 잔뜩 달린 고무를 알코올로 정성스레 닦아서 제 얼굴 이곳저곳에 붙였습니다. 그리곤 전압을 조절하는 것 같은 스위치를 돌리며 다정한 목소리로 ‘아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제 신경을 테스트하는 기계일 겁니다. 신경에 전기가 통하니 응당 아파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죽어버린 제 신경은 도무지 아파할 리가 없었습니다. ‘안 아파요’, ‘아직도 안 아프세요?’ , ‘네 안 아파요’ 전압 스위치를 거의 최대로 돌려도 얼굴은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금 얼얼한 느낌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럼, 그 남자는 다시 다정한 표정으로 안면신경의 98퍼센트 같은 얘기를 하고, 젊은 나이니 금방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찬 말을 하며 나가셔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살짜리 남자애가 얼굴 반쪽이 날아가 버리면 분명 동정할 것입니다. 어쩌면 팔 한쪽이 날아가 버린 것보다도 더 비극적인 일일 테니까 말입니다. 그의 다정함 속에서 느껴지는 측은함을 명백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대망상, 피해의식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에 말했듯, 저의 병은 신경과보다는 정신과가 어울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원래 이런 병은 정신과에서 치료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익살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웃기도 자주 웃고, 남을 웃기는 데에도 나름대로 재능이 있었죠. 변변찮은 얼굴이지만 좋아해 주는 여자도 여럿 있었습니다. 미팅에서 만난 여성이나 수업에서 저에게 호감을 표현한 분들도 모두 제가 ‘웃겨서’ 좋다고 말했었습니다. 저도 나름 그런 호감을 즐기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물거품입니다. 완전히 달라졌지요. 얼굴 반쪽이 마비되었으니, 저 같은 사람을 보고 웃어줄 사람은 없습니다. 여자는 더더욱 이겠지요. 모두 저를 측은하게 볼 게 분명했습니다. 설사 웃어줄지라도 제가 스스로 ‘이 사람은 나를 비웃고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단정 지어 버리면 그만인 게 되어버립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거울을 보며 해결책을 곰곰이 생각했는데, 대략 두 가지 정도의 방안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가면을 사서 쓰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당신은 웃고 있겠지만 이것은 매우 진지한 생각이며, 나름대로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제가 수십 번 고민하고 고안해 낸 해결책입니다. 얼굴 반쪽을 가리는 가면을 사서 오른쪽 얼굴을 가리고 살면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얼굴이 마비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문제는 얼굴이 마비되면 말도 조금 어눌해진다는 것입니다. 입이 돌아간다고 보통 말하는 것이 사실 안면마비라는 것을 저도 겪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반쪽 입은 움직이고 반쪽은 움직이지 않으니 움직이는 쪽으로 반쪽 입술이 따라가게 됩니다. 그럼, 말도 역시 조금 이상해지는 것인데, 가면을 써도 말한다면 이것이 들통나게 됩니다.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럼 저는 말도 없는 인간이 되어버리면 됩니다. 표정도 없고, 말도 없으면 사실 가면도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반쪽이 마비되었다는 것은 나머지 반쪽이 마비되지 않아서 티가 나는 것이니, 정상인 반쪽조차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조각상의 얼굴을 보고 안면마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첫 번째 같은 고민이나, 연습도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는 것입니다. 나는 반쪽짜리 얼굴로 도저히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방법이지요. 과대망상, 피해의식으로 인한 자살은 발에 채이도록 많은 일이니 이 방법 역시 당연하게 거론될 수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우울하다거나, 무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연히 병이 찾아온 사람이 으레 당연하게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제 글을 읽고 계시는 점에서 알고 계시겠지만 전 첫 번째 방법을 택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한 달 동안 말도 안 하고, 표정도 없이 사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연습이래 봐야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지만, 물도 왼쪽으로 자연스레 마시고, 음식도 왼쪽으로만 씹는 것도 익숙해졌습니다. 한 달을 이렇게 하니 정상이던 왼쪽 얼굴도 점점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직도 여름방학이 끝나고 처음으로 대학동기들을 다시 만났던 날이 기억납니다. 저 멀리서 동기들의 모습이 보일 때부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적국의 파티에 참석하는 스파이 같은 기분으로 말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여름방학에 어디 어디를 다녀왔다.’,‘남자친구가 생겼다.’ 등등의 자연스러운 이야기 뒤에 ‘너는 뭐 했어?’라는 질문의 화살이 나에게 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질문 없이 그네들끼리 웃고 떠들어 대며 지나갔습니다. 저는 뒤에서 박수를 치며 웃을 필요도, 적당히 재치 있는 대답을 찾을 필요도 없다는 점에 안도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긴장을 너무 해 소변이 급해진 저는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로 갔습니다. 소변을 보고 손을 씻으려 세면대에 가 거울을 보니 왜 사람들이 저에게 딱히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은 ‘우울함’ 그 자체가 되어있었습니다. 표정이란 것이 한 번에 사라진, 마치 감정이 거세된 사람처럼 말입니다. 저도 제 얼굴 어느 쪽이 마비되었는지 깜빡이지 않는 오른쪽 눈꺼풀로 알아볼 수밖에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마네킹, 백화점에서 늘씬하게 뻗어있는 마네킹 같았습니다. 거울 속의 제 얼굴을 보며 예전에 돌아가신 할머님이 염을 하기 전 누워있던 것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면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며 누구도 ‘이런 산 송장 같은 것에는 말을 걸고 싶지 않겠구나’ 하고 약간의 안도와 약간보다도 조금 더 큰 만큼의 우울감을 느끼고 말았습니다.   


  

  강의실에서도 여간 말할 일은 없었습니다. 출석은 손만 번쩍 들면 그만이고, 질문을 자주 하는 교수님의 시간엔 대충 마스크를 쓰면 아픈 학생이겠거니 하며, 질문도 넘어갔습니다. 학교에서도 그림자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몇몇 친구들은 제가 조금 이상해졌다는 것을 눈치챈 것도 같았습니다. 흘끔흘끔 쳐다본다거나 저를 보며 귓속말한다거나 이상하게 제가 강의실에 들어가면 시끄럽던 분위기가 일순간 조용해지기도 하는 등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제가 바라던 것이었으니 저로서는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병원에서 했던 고민 중 두 번째 방법으로 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방금 감사라고 했습니까? 감사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이죠? 어딘가에 있을 신에게 감사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절대로 아닙니다. 애당초 신을 믿지 않던 저는 더더욱이나 신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신이 모든 걸 할 수 있으며, 무조건 선하다고 덮어놓고 주장하는 종교들의 믿음이 우습고 때로는 화조차 날 정도였습니다. 20년 동안 저는 딱히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조금씩은 했을지라도, 신께서 나서서 벌을 줄 만큼 나쁜 짓은 단언컨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얼굴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 20살짜리 남자애가 자살을 생각하게 만들다니요. 제가 죽기라도 했으면, 신이라는 작자는 어쩌려고 그랬을까요? 집에서 기숙사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교회를 보고는 불같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도 나 같은 비극이 닥치면, 그때가 되어서야 믿음을 저버릴 건가? 내가 자기를 믿지 않아서 벌을 주는 건가? 부끄럽지만 이런 일이 있고, 도무지 그들이 바보 같아서 교회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제가 타인과 말해본 정말 얼마만의 경험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먼저 목사 한 분의 메일주소를 받고(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니 흔쾌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집에 가 저의 상황을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대충 ‘잘못한 게 없는데 이런 일이 생겼고, 이렇게 비극이 닥쳤는데 내가 어떻게 신을 믿겠느냐?’와 같은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며칠 뒤 교회에 한 번 찾아오라는 답변을 받고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육십은 되었겠지만, 나이에 비해 꽤나 젊어 보이는 목사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녹차 한잔을 내어 왔고, 그 옆에 사십 대 정도에 넓은 이마를 시원하게 내놓은 아주머니도 앉았습니다. 저는 최대한 한쪽 입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그래도 덜 불쌍하게 보이기 위한 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메일에서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있는데 신이 있다고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시죠?”     


목사는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웃었습니다. 목사가 웃으니, 옆에 있는 아주머니(권사라든지 그렇게 불렸던 것 같습니다.)도 멋쩍은 미소를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시련을 주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선생님에게 시련을 주신 건 그것을 극복할 만한 힘이 있으시기 때문이겠죠? 덕분에 이곳에도 찾아오게 되신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목사를 보니 다시금 갑갑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표정을 구길 수 있다면 구기고 싶었지만, 이런 대답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할 말은 남아있었습니다.     


“당사자에게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시련을 주었는데, 이게 어떻게 착한 신이란 말입니까? 제가 자살했다면 그때는 나쁜 신이라고 생각하실 겁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바람대로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바람대로 살 수밖에 없지요.”     

여기서 저는 어쩐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예상했던 대답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비극은 남 일이니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혹은 당신의 자식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가득 찼습니다.     


“그럼, 제 병이 낫는 것도 신의 뜻이면 저는 이렇게 절망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듣기 좋은 소리나 들으면서?”     


화를 내기 싫었지만, 말끝이 조금 격양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권사는 제 말투에서 약간 겁을 먹은 것도 같았지만, 목사는 여전히 편한 얼굴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수밖에 없지요”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에게 구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대답이구나 하며 맥이 탁 풀렸습니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인질로 잡힌 전쟁 포로가 적국의 군인에게 살려달라고 빌 듯 나를 이렇게 만든 신에게 빌어야 한다니. 도무지 저는 그러기 싫었습니다. 책상을 쾅 한번 치고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목사도 권사도 붙잡지 않고, 교회 문을 나설 때까지 그들이 신이라 부르는 이도 저를 잡지 않았습니다. 교회 밖에 길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차는 쌩쌩 달리고 저의 비극과는 상관없이 세상이 돌아가더군요. 저는 이때 더 참담한 마음이 되어 이곳에 괜히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신을 부정하면 회의주의로 가야 하고, 신을 긍정하면 죄인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잘못한 것 없이 죄인이 될 바에야 삶에 회의적인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표정 없이 살아보다 안되면 죽으면 된다.’ 같은 이상한 결심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듯이, 저도 남이 보기에 음침한 마네킹처럼 사는 삶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이젠 예전에 다녔던 신경과에서 정상인 왼쪽 얼굴을 검사하면 50퍼센트 정도는 안면신경이 죽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꼭 필요한 일 외에는 밖에도 나가지 않으니, 낯빛도 점점 하얗게 변하고, 거울만 보면 정말 제가 아닌 무언가가 저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편하면 점점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고, 저도 이제는 죽지 않고 사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강의실에서 꽤나 예쁘장한 여학생들을 볼 때마다 설레는 감정이 불쑥 찾아왔다가, 지금의 송장 같은 제 얼굴이 떠올라 부끄럽고 좌절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예전이었으면 한 번쯤 말이라도 걸어봤을 텐데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은 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짚신도 짝이 있다고, 안면마비 사람들을 위한 카페에서도 아내가 살펴주고 있다든지 하는 글들이 보여, 나도 누군가와 사귄다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나한테 호감을 느끼는 이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의 기대란 걸 하게 된 것입니다.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나볼까, 대학 수업에서 나에게 호감을 표현했던 사람에게 연락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와 다른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려니 그것은 더 큰 부끄러움으로 다가올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난생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고른 전략은 소개팅 어플이었습니다. 세간의 인식은 어딘가 불순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떳떳하게 말하긴 어려운 것이었지만, 저는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세간의 도덕을 논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애초에 도덕이란 누구를 위해 누가 만든 것이랍니까. 그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인간들끼리 서로를 묶어 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이미 사회와 멀리 떨어진 마네킹입니다. 마네킹에게 도덕을 들이밀지 않죠. 각설하고 소개팅 어플을 여러 개 깔고, 과거에 찍었던 사진들과 설명을 적었습니다. 제가 반쪽짜리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밝히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가서 연락이 온 여성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꽤나 예쁘장해서 저도 어쩐지 기대가 되었지요. 부끄럽지만 남자란 것은 그런 생물인 겁니다. 거세된 감정이 야금야금 다시 도마뱀 꼬리 자라듯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색욕이 아니라 남성으로서, 인간으로서 다시금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일말의 자존심, 나의 앞으로의 인생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같이 여겨졌습니다. 소개팅 어플 따위에 너무 과몰입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남자란 건, 적어도 저란 놈은 당장 그런 인정도 없으면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게 됩니다. 언제까지나 인간들 사이에서 마네킹처럼 사는 것은 도무지 참담합니다. 말을 해보니 그 여자도 저에게 꽤나 호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으레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그랬듯 ‘참 재미있는 분이네요’ 따위의 말을 곧잘 듣게 되었습니다. 먼저 밖에서 만나자고 이야기한 것도 그 여자였습니다. 우리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만나기로 했고, 이날이 보통의 커플들에게 무슨 날인지 아는 저는 불쑥불쑥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이 정해진 날부터 어떻게 하면 저의 반쪽짜리 얼굴을 들키지 않으면서 대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거울을 보며 복화술을 연습하는 마술사처럼 입을 최대한 적게 열면서 이야기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게 한쪽 입으로 옅게 웃고,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입을 움직이고, 마스크도 챙길 것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마스크를 쓸 수도 있었습니다. 금요일 밤에 그녀와 나는 역 근처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두근대는 마음으로 옷을 고르고 나니 도마뱀 꼬리처럼 자란 감정은 어느덧 모양을 잡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결전의 날이 되었습니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수염과 손톱을 정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거울 속의 마네킹은 아프고 난 이래로 가장 생기 있어 보였고, 그녀와의 연락도 잘 이어졌습니다. 수능을 치러 가는 날처럼 조금 편두통이 느껴질 정도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습니다. 역으로 가는 길엔 성탄절을 맞아 교회마다 밝은 전구를 줄에 묶어 길게 늘어뜨려 놓은 장식이 눈에 띄었는데, 오늘은 어쩐지 그렇게 밉지 않았습니다. 내심 믿지도 않는 신에게 나를 응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역 앞에서 감색 코트와 검은색 스웨이드 재질의 부츠를 신은 여자가 보였습니다. 얼굴은 사진에서 본 것보다는 역시 별로였지만, 그건 그거대로 귀여운 면이 있었습니다. 저는 뒤에 조용히 다가가 어깨를 툭 쳐서 약속한 사람임을 알렸고 그녀는 빠르게 제 몸을 훑더니 이내 웃어 보였습니다. 아아 사람이 저에게 미소를 보여준 것은 나를 비웃었던 목사 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이성의 호감이 주는 만족감, 그것은 제가 인간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린 근처의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지하에 있는 술집은 크리스마스 대목임에도 손님이 별로 없었고, 언제 빨래를 했을지 모르겠을 만큼 오래된 헝겊 의자가 있었습니다. 가게는 그런 낡음을 감추고자 어두운 조명을 선택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저는 술을 마시러 온 것도, 분위기를 즐기러 온 것도 아니라 시험을 받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익숙하게 술을 시키고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습니다. 저는 호주머니에서 얼른 손거울을 꺼내 제 얼굴을 점검했습니다. 나지막이 ‘안녕하세요’나 ‘실물이 훨씬 나으시네요’ 따위의 말들을 하며 그것이 또박또박 들리는지 그것을 말할 때 내 입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연습의 성과로 약간은 티가 나지만 아예 안면마비 같은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비대칭, 인간의 신체는 당연하게도 비대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딱 그 정도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화장을 고치고 온 것일까요? 그녀가 어쩐지 조금 더 밝아 보였습니다. 안주로 대충 끓인 듯한 부대찌개를 두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근래엔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마시니 식도부터 위장까지 뜨거운 것이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간호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했습니다. 저를 보고 당연히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상한 말도 하지 않고, 과묵하고 젠틀한 것 같다며 내심 기분 좋아지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저도 그에 맞춰 그녀의 감색 코트나, 당돌한 목소리, 통통한 볼살 등을 칭찬하며, 당신도 꽤나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은근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취기가 점점 오르고 고개를 슬쩍슬쩍 왼쪽으로 돌려가며 이야기했더니 절대 그녀가 내 안면마비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사실 더 이상 제 얼굴을 보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왼쪽 어깨로 온 신경이 쓰였지만, 이런 것에 익숙한 양 벌컥벌컥 소주와 맥주를 요상한 비율로 섞은 술을 들이켰습니다. 그녀는 거의 제 어깨에 기대어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남녀의 술자리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저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녀는 저보다도 더 또렷하게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하며 모텔로 향하는 길은 어쩐지 충만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희망이란 게 보였달까요. 저도 아직 보통의 인간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예쁘고 말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겨울바람이 부는 추운 길을 한참을 걸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성탄절이니깐 남는 방이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걷다 보니 그녀의 걸음걸이도 어느새 단정해지고, 약간 쑥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생겼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당장의 기대보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를 더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얼어붙어 가는 얼굴의 무감각을 느끼며, 겨우 방이 남은 붉은 벽돌에 구닥다리 간판이 달린 여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방은 넓지도 좁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것도 역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요. 들어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술과 주전부리들을 차려두고 씻으러 들어간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어쩐지 급격하게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이불속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마음에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성욕도 아닌 이상한 결의 같은 것을 다지며 주머니에 있는 콘돔을 만지작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씻고 나온 그녀는 완전히 술이 깬 것 같았습니다. 샤워 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시원한 맥주캔을 소리 나게 까 벌컥벌컥 마시며 은근히 저를 훑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번엔 처음 만난 이성 간에 나누는 으레 하는 말들이 아닌 진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진지한 대화를 이런 데에서 하자고 말을 꺼내는 게 우습기도 했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하고 맥주 한 캔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녀는 제 표정을 지적했습니다.  

   

“오빠는 표정이 참 똑같은 거 같아 어떻게 한 번을 환하게 웃지를 않네? 지금 불편해?”     


이런.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날 것 같았습니다. 얼굴에 열기가 갑자기 돌며 부끄러워지고 있지만 어떻게든 둘러댈 수 있었습니다. 나오기 전에 여러 상황을 다 시뮬레이션해 봤거든요.     


“아 그냥 원래 좀 표정이 없어. 넌 술 다 깬 것 같네?”     


“에이 아니야 아직 알딸딸해. 표정이 좀 없는 게 아닌데? 아예 없는 정도야.”     


그녀는 장난스레 제 얼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습니다. 물론 제 오른쪽 얼굴은 만져봐서는 전혀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없을 겁니다. 이건 신경적인 문제거든요. 어떻게든 잘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쎄 갑자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아니지 뭡니까.     


“내가 보기엔 오빠 지금 수심이 가득해. 이거 왜 그런 건 줄 알아? 이상하게 듣지 마... 진짜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이거 다 조상님 때문이야.”     


  귀를 의심했습니다. 조상님이라니 적어도 소개팅 어플로 만나 일사천리로 이런 곳까지 오게 된 마당에 조상님이라는 말은 너무 상황에 적합지 않습니다. 수영할 방향을 잘못 잡아 호주의 해변까지 온 펭귄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당황한 제가 대답할 새도 없이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가족들도 불치병에 걸렸었지만, 조상님의 무슨 제사를 지냈더니 모두 호전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덜컥 그녀의 마음이 의심스러워졌습니다. 이것 때문에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일까?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원래 약간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대뜸 그녀의 입에 키스를 했습니다. 암. 당연한 것이지요. 제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를 밀쳤습니다. ‘오빠 잠깐만’ 같은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대뜸 눈물이 나려 했습니다. 무언가 일말의 기대 같은 것들이, 저의 기대는 그런 저속한 것이 아닙니다. 부디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기대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내가 오늘 자 줄 테니깐 내일 무조건 나랑 같이 거기 가는 거야”     


이렇게 의심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나의 기대도 완전히 무너진 것이며 나는 사랑받은 게 아니라 이용된 것입니다. 그것도 이상한 신에게 미친 사람에게 말입니다. 나는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 마비된 얼굴을 거울로 봤을 때도, 다정함 속에 측은함을 느낄 때도, 죽음을 생각했을 때도 터져 나오지 않던 눈물이 갑자기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왼쪽 얼굴은 있는 대로 구겨지고 오른쪽 얼굴은 아마 평온하게, 눈도 감지 않고 그녀를 보고 있었겠지요. 자신이 믿는 신을 위해 몸까지 파는 그녀를 말입니다.     


“오빠 왜 울어! 얼굴은 또 왜 그래 오빠 얼굴 되게 이상해 오른쪽이 안 움직여”     


  그녀는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이유가 고작 하루아침에 찾아온 비극 때문이란 걸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원래 이런 것입니까? 이런 대비도 안 되는 비극 때문에, 저는 이렇게 더럽고, 수치스러운 구렁텅이에 빠져야 하는 겁니까? ‘이따위 세상엔 내가 살기 싫어.’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녀를 강하게 침대에 밀쳤습니다. 그쪽도 눈물을 터뜨리더군요. 저는 그때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나의 왼쪽 얼굴도 굳어버린 오른쪽 얼굴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도 저처럼 하루아침에 찾아온 비극을 느껴보면 그때는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 만났던 목사도, 내 대학 동기들도 어쩌면 당신도 그러기 전까진 결코 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네, 그런 생각으로 저질러 버린 겁니다. 싫다고 밀쳐내는 사람의 목을 조르고 저질러 버렸지요. 이것은 확실히 죄가 됩니다. 저도 백 프로 인정하는 바예요. 아아 당신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건 오로지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인 겁니다. 제 잘못을 정당화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생각과 정반대입니다. 나는 더 큰 벌이 받고 싶어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마네킹은 인간들과 살 수 없고,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살 가치가 없습니다. 화내지도 웃지도 찡그리지도 못하고 사는 것도 지치고, 보통의 정신으론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분명 저 같은 건 살아봐야 똑같은 일을 저지를 것이다. 이 말입니다. 처음 이 종이에 ‘반성문’이라 쓰여있는 것을 보고 코웃음이 났습니다. 전 손톱만큼도 반성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치들이 좋아하는 신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살아간 것뿐일 테지요. 암 그렇고 말고요. 갑자기 찾아온 비극은 제가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의 시작을 다시 읽어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굳이 말하자면 신이 만든 비극이야, 내가 죽인 여자가 믿는 신인지 목사가 믿는 신인지는 몰라도 그 망할 녀석이 만든 비극입니다. 그 녀석이 내린 심판이라면 더욱이 싫습니다. 차라리 당신이 나에게 심판을 해주십시오. 판사님. 저에게 사형을 선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보다 저는 당신을 더 믿습니다.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했으니 사형 정도는 내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신의 벌이라고 생각할 바에야 고도로 발달한 법이 정해놓은 벌을 받는 편히 저에게는 훨씬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니 판사님. 간곡하게 아룁니다. 부디 제게 사형을 선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XXX년 X월 X일 위 진술자 : O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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