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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언

by 오로롱도로롱


“정말 괴팍한 노인이에요”


노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렇다. 아주 괴팍하고, 온몸에서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오는 듯한 사람. 아내는 일찍 죽고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외지에서 살고 있어, 그의 컴컴한 집에는 홀아비 냄새가 가득하다. 노인은 남을 만나면 언제나 참견할 거리만 찾고 궁시렁거린다. 요즘 아이들의 예의범절이나, 요즘 젊은이들의 빈둥대는 삶, 그리고 자신과 같이 늙어가는 처지지만 자신보다 조금 더 어린 늙은이들에게도 인사를 제대로 안 한다느니 틀에 박힌 소리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싫어하지만 어쩐지 혼자 굴방같은 집에서 자녀도 없이 사는 것이 측은한지, 한 두 마디씩 말을 걸어주고 건강을 살펴주기도 한다.

노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렇다. 자신이 사랑했던 부인을 보낸 후로 그는 죽음에 대한 아주 생경한 공포가 생기고 말았다. 그녀는 특별한 병이 없이 갑자기 돌연사했기 때문에, 비통한 심정보다 허무함이 더 컸다. 어제까지만 해도 혈색 좋게 웃어주던 배필이 하루아침에 송장이 되어 나타나니 노인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으리라. 그때부터였는지 삶의 의욕이 없어진 사람처럼, 음침해졌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쌀쌀맞게 대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감정을 몸에서 잘라낸 사람처럼 말이다. 노인은 그렇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기는 싫었다. 삶이 허무하고 죽음이 너무도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낀 만큼, 삶에 애착을 버리고 죽음을 멋지게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노인이 무섭도록 집착한 것은 자신의 유언이었다. 언젠가 책에서 위인들의 마지막 말들이라는 부분이 무척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진짜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위인들의 유언은 그들의 삶과 꼭 맞아떨어지면서도, 멋진 마지막을 위한 장식이었다. 데카르트가 “자 이제 출발하지”(실제로 했는지는 모른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했을 때 노인은 그 말라붙은 눈에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감동을 느꼈다. 하지만 어쩐지 멋들어진 유언을 빼앗긴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노인은 매일 아침 눈을 뜨고부터 밤에 다시 눈을 감기까지 유언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이 멋들어진 유언에 대해 이미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호언장담을 해두었다.


“내가 죽기 전에 정말 멋진 유언을 남길 테니 내가 남긴 유언을 묘비에도 쓰고, 내 장례식에도 쓰고, 지역 신문에도 투고해. 꼭이다. 분명 근사할 거야!”


그의 아들은 도대체 건강하신 분이 왜 벌써부터 유언에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도 자신의 아버지가 꽤나 괴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차근차근 유언을 정리했다. 위인들의 유언을 짜집기한 것이긴 하지만 제법 근사해 보이긴 했다. “마지막 여행을 떠나지”, “이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 “내 삶에 박수를 쳐다오” 노인은 만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만든 유언을 햄릿의 대사처럼 장엄하게 읽기도 했다. 물론 듣는 사람들은 의아해하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유언을 적은 노트가 빼곡해질 때쯤, 노인은 돌연 자신의 아내가 아무 유언도 남기지 못했다는 것에 다시금 슬픔에 빠졌다. 그리고 이 슬픔은 또다시 집착이 되어 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도 유언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후로 몇 해가 지났다. 노인의 몸도 많이 쇠약해졌고, 이제는 그가 유언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되어서야 슬슬 그의 멋진 죽음에 대해 다들 묘하게 기대하는 눈치이기도 했다.


“그 괴팍한 노인네가 몇 년을 공들였는데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게 죽으려고 그러는 거람...”


호사가들도 노인이 언제쯤 죽을지 쑥덕이는 것을 즐거워했다. 은근하게 그를 로맨티스트로 묘사하며 죽은 아내를 못 잊어 사람이 미쳐버린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지역신문의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씩 노인의 주변 사람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요즘 노인의 몸상태는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노인은 이제 자신이 정말 죽음에 임박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묘하게 숨에서 쓴 냄새가 나고, 자신의 심장이 아주 느리고 옅게 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슬슬 자신의 멋진 죽음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때라고 느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변에서 가장 큰 장례식장을 예약할 비용과 가장 큰 묘비도 미리 준비해두었다. 묘비를 만드는 석공도 살아있는 사람이 미리 와서 자신의 묘비를 골라가는 것은 정말 처음이라고 말했다. 아주 커다란 화강암에 노인의 이름을 써놓고 유언을 써놓을 공간만 남겨두었다. 노인은 마치 장례식이 아니라 결혼식을 준비하는 사람처럼 기쁜 얼굴이었다. 아들과 함께 가장 좋은 수의에 가장 좋은 제사 음식 등 모두 최고로 준비했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왔다. 자신의 심장이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낮게 뛰고 먼저 간 자신의 아내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밤 10시쯤?



좁은 노인의 집에 사람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기자, 정치인, 노인의 이웃, 오랜 친구 등등 모두 노인의 죽음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멋진 유언을 준비했을까? 하는 기대감에 다들 흥분했다. 여기도 마치 결혼식장 같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노인은 갑자기 주인공이 된 것에 적잖이 당황했으나 그래도 자신이 멋지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꽤나 기뻐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말을 맞춘 아들이 마이크를 들고 아버지 옆에 있었다. 자신의 괴팍한 아버지의 마지막을 더욱 멋지게 해 드리기 위해 쉬지 않고 손님들을 맞고, 언제라도 아버지가 유언을 내뱉는 순간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침대 옆에는 지역 방송사에서 온 카메라가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지역 명물이 되어버린 괴팍한 노인의 유언을 생생하게 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멋진 죽음을 위한 배경들이 모두 마련되었다. 노인은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내가 죽은 이후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두근거림이었다. 자신의 숨이 멎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워 곰곰이 마지막 유언을 고르는 중이었다. 그때 점차 숨이 멎기 시작했다. 물론 노인만 감각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노인은 남은 힘을 짜내 재빠르게 아들에게 신호를 줬다. 아들은 마이크를 어서 노인의 입에 가져다 댔다. 노인은 유언을 뱉을 준비를 했다. 차분히 눈을 감고, 노트에 빽빽이 썼던 유언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최선의 하나를 정해 놓았어야 하는데, 죽기 직전까지도 정하지 못한 것이다. 수백 개의 유언들이 갑자기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노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아들에게 자신의 노트를 가져오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이미 그런 말을 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얼른 자신의 삶을 헤짚으며 마침표에 어울리는 말을 찾으려 했으나, 남아있는 삶의 기억이 모두 유언을 생각해온 날들뿐이었다. 노인은 그제야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쒸...이..버..ㄹ...”


노인의 마지막 단말마였다. 아들과 사람들은 일순간 정적하더니 모두 배를 잡고 방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정말 괴팍한 노인네라니깐!”

“그래도 갈 땐 아주 큰 웃음을 주는구먼!”

“내가 살아오면서 들어온 농담 중 최고야!”


다음날 신문에 노인의 유언이 대서특필 되었다. “씨발” 노인의 유언이다. 기자들도 뭐 인생이랄 게 별거 없다. 욕설 단말마로 끝마치는 것이 인생이다. 이런 개똥철학 기사를 내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호사가들의 입방아에도 단연 최고의 소재였다. 다들 알고 보면 재밌는 노인이었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주부들은 조금 달랐다. 노인의 죽음이 텔레비전에 나간 이후로 자신의 집에 있는 다섯 살배기 꼬마들도 말끝마다 “씨발”거리는 것에 진이 빠졌기 때문이다. 노인의 아들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의 묘비명에 “씨발”을 세겼다. 정확히는 “쒸이벌”이었지만 말이다. 마을 어귀에 있는 가장 큰 묘비에 가장 큰 글씨로 멋들어진 욕설이 세겨졌다. 노인은 아쉽겠지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죽음이었다. 그의 유언도 곱씹어보면 그의 품행과 냉소적인 태도, 조금의 재치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유언이었다는 평이다. 물론 유언이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남긴 당사자는 곱씹어볼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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