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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Jul 15. 2023

고독의 여행의 쉼표

안티과 커피에는 화산재의 향이 난다

과테말라 옛 수도 안티과에서는 커피 나무가 화산재 속에 뿌리 내린다. 커피 나무가 화산 가스를 흡입해서일까. 안티과 커피에는 화산재의 향이 난다. 신맛은 적고 카라멜 맛이 강해 담백하고 향긋하다. 과테말라에 들어온 뒤로 날마다 커피 2잔 넘게 마셨다. 5월말 어느 비오는 날 어김없이 자주 가는 카페로 향했다. 아카테낭고 화산(3880 m)에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온 터라 피곤했지만 과테말라 안티과 커피를 거를 수는 없었다. 지붕 없는 중정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외벽으로 난 창살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중정으로 빠져나가 한낮에도 서늘해 좋다. 안티과에서 날마다 혼자 이 카페를 찾았다. 

오후 늦게부터 햇빛이 가시고 잠시 후덥지근해지는가 싶더니 소나기가 요란하게 쏟아졌다. 카페 중정으로 빗물이 내렸다. 창살 사이로 들이치는 비를 막기 위해 외벽으로 난 창을 닫았다. 카페 안은 금새 비에 젖은 커피 향으로 가득찼다. 빗소리는 닫힌 창문을 넘어왔다. 빗소리와 섞인 커피향은 낯선 곳에 홀로 앉은 여행객의 감성을 자극했다.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고독의 향은 에스프레소향보다 짙다. 여행이 문장이라면 고독은 여행의 쉼표다. 그간 낯선 곳에서 급하게 만난 동행과 어울리며 소진한 감정을 추스린다.  

낯선 곳을 여행하다보면 자의반 타의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만남은 잦고 헤어짐은 급하다. 쉽게 친해지고 빨리 헤어진다. 여행의 이유가 맞으면 만나고 행선지가 다르면 헤어진다. 동행이 많거나 잦으면 여행은 번잡스러워진다. 선택의 순간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번잡함이 싫어 홀로 움직이다 보면 교통, 숙소, 투어 예약부터 식사까지 혼자 해결해야 한다. 그만큼 성가스런 일이 많아진다.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 씻거나 화장실에 갈 때도 여권, 지갑 같은 귀중품을 지니거나 락커에 잠근다. 한국인 동행이 있으면 서로 짐을 봐줄 수 있다. 숙소나 투어 예약도 함께 할 수 있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를 돌아다닐 때는 소설가 2명과 동행했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차를 빌려 시계 방향으로 유카탄 반도를 돌았다. 에이비앤비를 예약하고 차량 렌트비를 분담하니 여행의 질이 크게 개선되었다. 닷새가 지나면서 여행이 번잡스러워졌다. 부대끼면서 감정의 선이 팽팽해졌다. 다시 홀로 여행하고 싶어졌다. 유카탄 반도를 한바퀴 돈 뒤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동행과 헤어졌다. 아카테낭고 화산에서 맞은편 활화산이 분출하는 용암을 보고 싶다고 핑계를 댔다. 불과 일주일 전 페루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에서 모래사막을 홀로 걷는게 외로워 동행을 찾던 기억은 벌써 잊었다. 

장기 여행자가 으레 겪는 감정의 변덕이다. 여행자는 인생을 압축적으로 산다. 인생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면 여행도 다르지 않을게다. 다만 만나고 헤어지는 빈도가 잦고 기간은 짧다. 여행이 즐거우려면 만남과 헤어짐에 능숙해야 한다. 자칫 동행을 잘못 만나면 여행은 엉망이 된다. 특히 헤어짐이 훨씬 중요하다. 낯선 이와 급하게 만나다보니 동행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상대를 살필 시간의 여유가 없다. 반면 헤어짐은 여행자가 통제할 수있다. 갈등의 불씨가 발화하기 전에 자연스레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 

그래야 재회할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이 다르면 헤어졌다가 함께 하고 싶은 곳에서 다시 만나는 거다. 낯선 이와 다시 관계를 만드느라 애쓰기보다 익숙한 이와 동행하고 싶어하는 이가 많다. 홀로 여행과 동행 사이에서 능숙하게 균형을 찾아가는 거다. 인생이 여행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다. 자기 뜻을 거슬러가며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고집하기보다 함께 하고 싶은 곳에서 선택적으로 동행하는 삶이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길 수 있고 상대의 고독을 존중하는 이가 즐겁게 여행한다. 우리는 혼자 지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함께 어울리며 고독을 갈망하는 존재다. 여행은 그 사실을 깨닫게 한다.  

비가 잦아들고 커피향이 사라지자 그리운 이가 떠올랐다. 파타고니아 여행 초기 피츠로이 산을 함께 오르고 토레스 델 파이네 W트레킹 코스를 함께 걷던 이가 보고 싶었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다음 행선지는 그가 있는 곳이다. 파타고니아를 떠나면서 애써 헤어진 친구다. 그리움이 내뿜는 향을 음미하며 카페를 나와 빗속의 안티과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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