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는 형편없이 진부하고 따분한 책이다. 불평등의 역사적 기원부터 지속가능한 성장에 대한 예측까지 단순한 이론 하나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저자는 경제 성장의 결정 변수를 사유재산권 보장, 신기술 투자 장려 같은 포용적 경제제도로 봤다.
여기저기서 찬사가 쏟아지는 책이라 기대가 컸지만 다 읽고 보니 35년 전 미국 정치경제학자가 발표한 워성턴 컨센서스의 ‘미국 자본주의 만세’ 논리와 차이가 없었다. 존 윌리엄슨은 1989년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줄이고 무역과 자본 자유화, 민영화에 중점을 둔 미국식 시장경제체제의 확산 전략,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제안한 바 있다. 이 책은 이 진부한 전략을 증명하기 위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개별 역사적 사건들을 자기 멋대로 짜깁기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넘쳐나고 여러 정치 사회 경제 이론을 내세워 곡학아세 하고 있다. 자기가 이뤄냈다고 자부한 이론적 증명은 없고 주장만 가득하다.
이 책은 또 역사적 사건의 해석적 오류에 그치지 않고 매우 혐오스러운 편견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대표 사례가 남북 아메리카의 경제 발전 차이에 대한 설명이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같은 열강이 북아메리카에 들어와 원주민들을 내쫓고 유럽식 경제체제를 도입한 덕에 부자 나라가 됐고 페루, 볼리비아, 과테말라 같은 나라는 잉카 문명 후예의 제도적 적폐 탓에 가난하다고 주장한다. 잉카 문명의 착취 체제가 스페인 같은 제국주의의 적폐와 변태적으로 결합해 혐오스러운 경제체제가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 곁들였다.
중국의 경제 성장을 설명하기 동원한 사례와 인물의 평가도 오락가락한다. 덩샤오핑을 문화대혁명이라는 야만의 역사에서 살아남아 경제 성장과 개방을 이끈 개혁가로 추켜세우더니 막상 중국 공산당 실패의 사례로 언급한 천안문 학살의 주범이 덩샤오핑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이 책이 국내에서 찬사를 받다니 출판사의 마케팅 역량이 상당한 듯하다. “대다나다.” ㅋㅋ 혹시나 주변 권유로 이 책을 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너무 심했나. 이것도 내 편견일 수 있다. 원래 인간은 편견 투성이 아닌가. 이 책의 저자들이 싫은 건 자신들을 편견 투성이임을 부정하고 칼 마르크스나 제레미 다이아몬드 같은 석학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