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자유주의자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을 때는 ‘해악 원칙에 따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으면 뭐든 할 나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늘 경계인으로서 무리 짓기나 피상적인 인간관계나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제도나 구조에 대해 고통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구체적 경험들을 말로 다 표현하기는 어렵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음을, 그리고 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음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기 개성의 표현만 있고 ‘침묵의 미학’이 사라진 시대에, 자유는 있는데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사라진 것 같은 미묘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고교 동창이 내게 ‘이제는 너와 같은 생각이 문화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말했을 때 선뜻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다. 여전히 자유주의가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으며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자유주의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추구해야 하는 사상이다. 영원히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영원히 완결된 성취가 달성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집단을 이루고 집단을 이루면 개인의 영역에 대한 제한 또는 침해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며, 제한과 침해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여백과 공간을 내어주고, 나 또한 그러한 여백과 공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에 보수와 진보 중 진보 측에 더 기울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내 생각은 정치이데올로기라기 보다는 문화적 코드에 가까웠던 것 같다. 보수 진영에도 진보 진영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고 아닌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민주주의에 자유주의를 흡수해서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간판만 자유를 강조하거나 한다. 이를 극복하고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상호 공존하는 사회문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서 생활에서 노력하고 있다.
“저는 이념이 먼저인 작가는 아닙니다. 억지로 무슨 주의를 붙이자면 난 그냥 자유민주주의자예요. 개인주의자구, 그냥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 있잖습니까? 자기가 이 사회에 필요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항상 떳떳할 필요가 있고, 자기 일을 남에게 존중받고 싶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만큼 남에게 대접하는 게 옳고, 남에게 당하기 싫으면 남한테 그러지 않는다든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 있잖아요.
(…) 어떻게 보면 난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중하니까 남도 중한 거지, 전체를 위해서 나 개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런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이 남자와 여자 사이라고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생각밖에 전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가 싫은 거죠. 남자가 여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고, 여자가 남자를 억압하는 사회도 싫어요.”
_ 박완서 소설가, 「박완서의 말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 중
작가 최인호의 도시적 감각이 소설에는 초현실적인 면모로 등장했다면 그의 인생에서는 개인주의라는 정치적 입장으로 나타났다. “너에게 관여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나한테 관여하지 말라”를 주장하는 개인주의자 최인호는 1970년대의 문단에서 반체제와 체제 간의 싸움이 있었을 때 철저히 `비체제'로 일관했다. 그것을 그는 작가적으로 손해를 본 부분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비체제라는 것이 체제 쪽에서 보면 퇴폐주의자이고, 반체제에서 보면 기회주의자이자 상업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적 면모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것을 자신의 특징으로 완전히 받아들인다. 몸을 의탁할 `적'이 없이 항상 혼자 떠돌 수밖에 없어 외롭지만 대신 외로움은 정신적 자유를 주었기에 그는 행복하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그는 100% 자유주의자가 되기를 원한다. 작가는 “그것은 아주 위대하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을 때 그럴 수 있지. 정말 도통해야지” 하며 다리를 탁자 위에 올린다. 그리고 가늘게 눈을 뜨고 창문 밖 먼 산을 바라본다. 나는 비밀을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예의 그 장난기 어린 웃음을 역시 입가에 머금고 말이다.
_ 최인호 소설가와의 인터뷰(채널예스, '작가 최인호, 나는 개인주의자이며 자유주의자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제가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주의자하고 이기주의자가 다른 게... 개인주의자는 다른 개인도 존중을 해야되죠. 그래서.. 너무나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좀 힘들어서 피하는 수도 있긴 한데 저는 다른 생각들을 더 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게 불편하다보면은 같은 생각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우리가 옳다. 남들은 왜 그렇게 생각해.' 점점 그렇게 하다보면 고립되고.. (양극화되고) 정말.. 거기는 거기대로고 여기는.. 다들 섬이 되는 것 같아요."
_ 은희경 소설가, EBS 초대석
“여덟 살 때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주산학원의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기세여서,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현관 처마 아래 모여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도로 맞은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그 처마 아래에서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발을 보며,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느끼며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_ 한강 소설가, 노벨상 만찬 연설 (2024년) 중
“국가를 위해 도움 되는 것 이전에 한 분 한 분 개인으로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란다.”
_ 노무현 대통령, 루마니아 동포 간담회 中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상 사랑하는 이치를 읽고 배우고 경험하고 그리고 크게 보고, 또 깊이 생각해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상대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상대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사상입니다. 관용이 없는 사회는 사생결단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배제의 사회가 됩니다. 그래서 절대주의 또는 극단적 사상으로는 상대방을 억압하고 배제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공동체 속의 하나로 통합할 수가 없습니다.”
_ 노무현 대통령, 원광대학교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강연 中
“누구나 다 정치를 할 수 있고 정치를 해야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정치만이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개인적인 인생관 같은 것도 있는 것이니까요.”
_ 문재인 변호사,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사퇴 기자회견 (2004년) 中
“국가의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인권을 억압하던 시대도 있었지만 우리는 자유와 평등, 존엄과 안전이 국민 개개인의 당연한 권리가 되는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과연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광복이 이뤄졌는지 되돌아보며, 개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를 생각합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께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는 헌법 제10조의 시대입니다.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자유와 평등의 실질적인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사회안전망과 안전한 일상을 통해 저마다 개성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한 사람의 성취를 함께 존중하는 나라를 만들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결코 우리 정부 내에서 모두 이룰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께 드리고, 확실한 토대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_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2020년) 中
“(법무부장관 시절) 옷은 평소 내 스타일대로 입었다. 당시는 내가 멋을 내는 나이였으니 화려했겠지. 나는 자유주의를 추구하면서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소신이 있다. 일단 여성이 남성과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 것은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핸드백도 옷에 맞춰서 바꿔 들었다. 국민들 보기엔 남성 위주의 단일화된 검찰 조직에서 매우 튀는 장관이었을 거다. 그래도 여성이 기존 권력에 맞서 싸운다는 이미지 때문에 더 좋게 봐준 것 같다.”
“민주주의에서 주권을 인정하는 첫째 요소가 상대방의 발언권을 인정하는 거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발언권을 독점할 수 있다. 나는 장관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권한을 많이 나누고, 최종 결정만 내가 했다. 그런데 지금도 어디 가보면 의사 결정권자 혼자 떠드는 경우가 많다. 발언이 자유롭지 않으면, 그룹을 형성하고 자기네끼리만 모이게 된다. 서로 더 격렬하게 싸우게 된다.”
“문자 폭탄을 받는 사람이 그걸 위협적이라고 느끼면 폭력이다. 나는 그게 노무현 대통령의 사망에 따른 트라우마에서 시작했다고 본다. 특히 진보 진영의 자책감이 컸다. 왜 이분만 역사에 없는 길을 가게 했나라는 죄의식. 그러나 그것을 문자 폭탄 같은 형태로 표출해선 안 된다. 민주주의는 토론을 보장하는 것, 틀린 말을 참고 듣는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상황이다. 강자의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 민주당 권리당원들끼리도 좀 더 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_강금실 변호사(전 법무부장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2020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