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필리버스터 중단 그리고 민주당의 내로남불과 오만

by 남재준

우원식 국회의장이 나경원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국회법 제102조(의제와 관계없거나 허가받은 발언의 성질과 다른 발언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를 위반했다면서 필리버스터를 제지했는데, 굉장히 황당하고 부당한 행위였다. 규정이니 질서니 하는 것을 명분으로 소수파의 권익을 침해한 행위였으며 민주당의 전형적인 내로남불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나경원 의원이 그 필리버스터에서 말한 취지처럼, 민주당은 상임위 의사 진행부터 법안 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자신들이 불리할 때는 보수정당의 정치적 의도 탓을 하고, 자신들이 유리할 때는 정상적인 상황이고 자신들은 순수하고 합리적 의도만 있는 것처럼 한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이 소수파였을 때 정확히 같은 논리로 보수정당을 공격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자신들이 테러방지법 등에 관하여 필리버스터를 할 때는 노래를 부르거나 했었는데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이 당시에 그것이 국회법 제102조를 위반한 것인지 아닌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했었다. 민주당에선 ‘그때와 다르다’라고 하는데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법을 들먹이기 전에 일관성과 무결성(Integrity)부터 먼저 지키기를 바란다. 내게 적용하는 기준과 남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다르면 그자는 규범적 우위에 있을 수 없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테러방지법 입법 시도 자체가 보수정당의 전체주의적 폭거였고 지금 가맹사업법 개정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는 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말 자체는 일견 타당하지만 필리버스터의 맥락에 대한 시비를 가리는 건 이해관계자인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국회의장의 의사진행과 질서유지 등의 권한은 국회의원의 구체적인 의사 발언의 내용까지 국회법의 규정을 들어서 일일이 시비를 가려서 규율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없다. 국회의장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의장일 뿐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으로서 국가이익을 위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며(헌법 제46조 제2항), 무엇이 국익을 위하고 양심을 따르는 것인지는 의원 개인이 판단할 문제에 속한다.


또 국회법 제102조의 유권해석권을 국회의장이 갖는 것도 아니다. 나경원 의원의 발언 취지는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 가맹사업법 개정안의 입법이 진행되고 있는 전체적인 정치적 맥락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청래, 우원식 등 민주당 정치인들 상당수가 마치 자신이 법해석권이라도 가진 것처럼 헌법이나 국회법을 들먹인다. 그러나 헌법이나 법률 등 국가의 법이라는 것은 학교 교칙처럼 그 문구 그대로 이해하고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법학도 사법도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이고 자기 혼자 우월한 도덕적 지위에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결국 나경원 의원이 어떤 내용을 발언할지는 나경원 의원이 판단할 문제이지 우원식 의장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민주당은 민주당 입장에서 보고 국민의힘은 국민의힘 입장에서 보므로, 결국 양자가 충돌할 때에는 가급적이면 일단 양자의 의사를 그대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의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나중에 민주당이 소수파가 되고 국민의힘 출신 국회의장이 나오는 경우 얼마든지 역으로 민주당 의원들을 같은 입장에서 제압하려 들 수 있다.


민주당이 소수당이었을 때 보수정당이 이런 식으로까지 하지 않았다. 애초에 무제한토론제도 자체도 2012년 5월 그러니까 아직 보수정당이 국회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을 때 도입된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자신들이 소수파일 때 이 제도를 아주 유용하게 썼다.


헌법재판소 2020.5.27. 선고 2019헌라6 결정을 보면, 진보와 보수 간 무제한토론제도의 성격에 관한 의견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 결정에서 법정의견을 낸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헌법재판관은 다음과 같은 요지로 설명했다.


<2012년 5월에 개정된 국회법은 무제한토론제도, 심사기간지정제도, 위원회의 안건조정제도, 안건신속처리제도, 의안 등 자동상정제도,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 지연 법률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 제도를 도입했다. 입법취지는 ‘쟁점 안건의 심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건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심의되며 소수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심의되도록 하여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국회를 구현’한다는 것이었다. 즉 앞서 제시한 제도들은 모두 ‘대화와 타협을 통한 안건의 심의’와 ‘효율적인 안건의 심의’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무제한토론제도는 이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한다.


무제한토론제도는 그것으로 인하여 국회의 의사 절차가 지나치게 지연되거나 해당 안건에 대한 처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효율적인 안건의 심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제도의 도입 취지가 의결정족수 충족이 가능한 의원들이 다른 의원들에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의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소수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안건에 대한 효율적 심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데에 그 입법취지가 있다.>


그런데 무제한토론제도의 목적에 관한 이러한 해석은 사실상 이 제도가 결정적으로 쓰여야 하는 정치적 맥락을 빼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다수파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갈 위험이 높다.


2012년 5월에 도입된 무제한토론제도를 비롯한 여러 제도들을 ‘함께 놓고 보면’ 합의적 의사결정과 안건 심의의 효율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개별 제도들을 놓고 보면, 양자 중 어느 것이 더 본질적인 목적이고 어느 것이 부수적인 목적인가 하는 것을 구별해야 유의미하게 된다.


무제한토론제도는 기본적으로 단순히 법안에 대한 의견을 듣는 절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소수파가 대상 안건의 본회의 가결을 지연시키면서 정치적 레버리지를 높여 궁극적으로는 합의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모든 제도는 남용의 여지가 생기므로, 그것에 대한 제동 장치로서 토론 종결 동의 제출과 의결, 무제한토론 중 회기 종료 시 그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하도록 하는 등의 규정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무제한토론제도의 과용이나 남용 등을 막기 위한 부수적 목적에 따르는 것일 뿐 무제한토론제도 자체가 안건 심의의 효율화 역시 소수파 존중 및 합의 의사결정 유도와 똑같은 지위의 본질적 목적으로 보아 거기에 복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억지 해석이다.


이런 식으로 입법취지를 이해하면 무제한토론제도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않고 정치적으로 다수파에게 이용될 여지를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무제한토론제도의 본질적 입법목적을 몰각시키게 된다.


이러한 점에 관하여서는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헌법재판관의 반대의견을 보아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무제한토론제도의 도입은 기존 국회에서 쟁점 법안을 처리할 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수적 우세를 기반으로 단독 처리를 강행하였고, 소수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회의장을 점거하거나 의사일정을 거부하면서 장외 투쟁을 하는 등의 갈등이 심화되는 문제에 대처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국회의장 직권 상정 제도를 무력화하여 다수파를 어느 정도 억누르고, 동시에 회의장 및 의장석 점거라는 소수파의 관행적 의사 저지 수단도 불법화하여 소수파의 폭력적 행동도 저지하는 것으로 양쪽을 제도를 통해 강제로 물러서게 했다. 대신에 소수파에게 무제한토론제도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여 궁극적으로 정파 간 타협을 촉진하도록 하였다.


무제한토론은 국회 소수파가 특정 안건의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해 제한된 시간을 넘어 토론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합법적 의사진행방해(필리스터) 수단의 하나이다. 본회의 단계에서 소수의 참여를 보장하는 무제한토론제도는 그것이 실제로 실행되었을 때의 효과보다 ‘그 실행 가능성으로 인해 각 정당들에게 합의를 강제하는 효과가 더 큰 제도’이다. 국회의 의사를 일시적으로 지연하면서 소수파의 견해를 듣고 다수파와 소수파가 합의를 통하여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여 극단적 대치 상황을 피하게 한다는 점이 중요한 의의이다. (내 생각으로,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민주당은 무제한토론 도입의 취지를 완전히 몰각시켰다.)


무제한토론제도가 ‘쟁점 법안에 대한 진정한 토론을 위한 제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다수파가 개시된 무제한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무제한토론을 요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수파일 것이므로, 무제한토론제도가 소수파를 위한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수단이라는 본질은 불변한다.


무제한토론은 헌법에 규정된 제도는 아니지만 국회의 소수파가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지연할 수 있는 수단으로 도입된 이상, 국회 소수파 보호의 정신에 비추어 소수파의 무제한토론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반대의견이 무제한토론제도의 본질과 해석 방향을 제일 타당하게 짚었다고 본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나경원 국회의원의 무제한토론은 그 내용에 있어 충분히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는 무제한토론제도의 취지나 국회의원의 헌법상 위상/권한/기능 등을 생각해볼 때 국회의장의 의사진행이나 질서유지에 관한 권한보다 더 본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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