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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민 May 21. 2023

삶은 마치 페이스트리

감기 몸살과 영화 <스탠 바이 미>

7시에 일어나 반포종합운동장에서 달리기 수업을 받았다. 함께 수업을 듣는 대여섯과 40분 정도 조깅을 하고, 자세 개선에 도움이 되는 훈련동작을 배운다. 오늘은 아주 약간의 이슬비를 맞으면서 뛰었다. 집에 돌아와 대충 파스타를 해 먹고, 이발을 하고, 밀린 청소와 빨래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회사에서 무료로 나눠 준 머그컵에 리브레 온두라스 드립백을 내려 마시고 있다. 살짝 싱겁지만 그런대로 마실만하다. 아직 일요일이 한창이고, 날씨는 서서히 개는 중이다. 창문 밖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린다.


지난 일주일은 이렇지 않았던 탓에 지금의 평화가 더욱 생생하게, 마치 손에 잡힐 듯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저번주는 끔찍했다. 일요일 밤부터 목이 칼칼하더니 월요일 아침엔 몸살이 왔다. 종일 앓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회사 일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었다. 다음날은 39도가 넘는 고열이, 수요일에는 오한과 구토, 설사가 찾아왔고 엊그제는 편도염이 크게 도져 침을 삼킬 때마다 찾아오는 날카로운 통증으로 잠을 거의 잘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회사에 가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주간회의 중 내가 레포팅을 해야 하는 순간에 눈앞이 하얘지고 이명이 들려서, 나는 간신히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을 뛰쳐나왔다. 이러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어서 더 민망하고 한심했다.


몸이 건강하고 통증이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삶은 얼마나 살만해지는가. 아프고 나면 거의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살만한가’가 아니라 ‘살만해지는가’로 굳이 문장을 마무리한 이유는, 나의 경우 이 깨달음의 지속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로 잘 잊는다. 좋았던 순간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불쾌한 경험도 결국 비슷비슷한 크기의 책들처럼 납작한 상태가 되어 마음속 서랍 어느 구석에 쌓인다. 그러고는 잊어버린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밖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아주 소수의 순간만이 오래된 사진처럼 흐릿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 나이대의 아이들을 주제로 한 영화를 나는 속절없이 좋아한다. 특히 아이들끼리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는 더더욱. 윤가은이나 김보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내가 잊어버린 유년을 후하게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어제 영화 스탠 바이 미(Stand By Me, 1986)를 처음으로 봤는데, 아직도 여운이 짙다. 이 영화는 소설 작가인 주인공이 과거에 친구들과 떠났던 1박 2일의 모험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네 명의 친구들은 그들이 사는 작은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든 소년 실종 사건의 주인공인 어떤 아이의 시체를 찾기 위해 도보 여행을 나선다. 비극적인 미제 사건을 해결한 유명 인사가 되고 싶어서다. 50km 가까이 되는 먼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고난을 겪기도 하고, 다투거나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며,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도 한다. 고생 끝에 결국 원하던 시체를 찾았지만, 애초의 계획과 달리 정체를 숨긴 채 제보를 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런 내레이션이 깔린다.


‘겨우 이틀 만에 돌아왔는데 마을이 좀 달라 보였다. 작아 보였다’

‘친구들도 식당의 일꾼처럼 내 인생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글을 쓸 만큼 스스로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나는 삼십 대 중반을 통과하고 있다. 건방지다고 하기엔 너무 나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삶은 여행의 중첩이 아닐까. 제각각 다른 여행이 마치 페이스트리처럼 쌓여 있는 형태가 곧 삶인 것이다. 어디가 시작인지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고, 심지어 여행 중이라는 것도 곧잘 망각하지만, 우린 어딘가로 떠나 무엇인가를 하고 다시 처음의 장소로 돌아온다. 돌아온 곳은 예전과 다르다. 때로는 크게, 때로는 그 차이를 전혀 알아차지리 못 할 만큼 아주 미세하게.


이번 감기몸살의 경우에는 명백하게 후자에 가까웠다. 저번주 일요일과 지금, 이번주 일요일 오후를 비교해 보면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나의 집은 여전히 좁고, 조명이나 책장의 위치도 변하지 않았으며, 침대보를 비치는 햇살의 각도도 그대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의 페이스트리에 아주 얇은 층이 하나 생겼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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