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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민 Feb 04. 2024

마지막 남은 총알을 어디에 쏠 것인가

야금(2)

선택이라는 동일한 범주 안에 있다 해도, 미래를 계획하고 나아가는 것과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차악을 골라 집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사실 이번 이사 결정은 후자에 조금 더 가까웠다고 나는 생각한다. 계약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 살던 집은 회사 앞 6평짜리 원룸이었다. 그 작은 사각형 안에서 먹고 자고 일어나고 영화 보고 책 읽고 요리하고를 다 했다. 마치 새가 작은 둥지 안에서 나고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바라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간이 좁아 답답함을 느끼는 건 사실이었다. 아늑함과 답답함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지만, 원룸에서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 둘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는 것뿐이다. 이런 데서 개방감이나 텅 빈 느낌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식탁이 없다면 조금은 가능할 수도 있다. 근데 그러면 밥은 어디서 먹고, 일은 어디서 할까? 가장 큰 문제는 침대다. 침대가 있으면 사람은 자연히 눕고 싶기 마련이다. 누우면 웅크리고 싶다. 그리고 계속 웅크리고 있다 보면 기지개 켜는 법을 어느새 잊는다.


곧 계약 만료신데 어떻게, 연장하실 거에요?


황금 부동산 김민철 과장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난 정신이 퍼뜩 들었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와 집이 지근거리인 것은 좋았다. 신경 쓸 게 별로 없었다. 밤늦게 퇴근해 터덜터덜 걸어서 집에 가고, 아침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 러닝을 하고 출근하는 것이 지난 1년간 평일의 거의 유일한 일상이었다. 중심에 일이 있었고, 나머지는 그걸 최대한 덜 괴롭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내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있었다. 계속 여기에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갈 것인가.


난 서른네 살이다. 한때는 비혼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그 단어가 어떤 오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결혼하고 싶었다. 이게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모양새인 건 나도 안다.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는 거라고 믿고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지난 모든 연애는 결국 끝났다. 기간이 길든 짧든, 상대가 끝냈든 내가 끝냈든 누군가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서로 연락하지 말자고 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었는데 다시 생각하면 그저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헤어지지 못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별의 비용이 관계 유지의 효용을 아득히 뛰어넘을 때, 인간은 비로소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자유가 사라지고 책임이 늘어나는 대신 새로운 행복을 배운다. 태어난 이상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이거야말로 도전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거대한 기어 변환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온전히 내 입맛대로 결정하는 부동산 계약은 이번이 아마 마지막일 것이다. 집의 위치나 크기, 노후 정도, 층수나 엘리베이터 여부 같은 것들을 다음에는 나 편하자고 정할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총알을 난 어디에 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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