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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민 Nov 26. 2022

결혼에 관하여

30대 중반에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

대학 한 학번 선배들과 하는 계모임이 있다. 한 달에 2만 원씩 모은 돈으로 1년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마주하고 저녁을 먹는다. 그날 이외에는 따로 연락을 하거나 만남을 가질 만큼 가깝게 지내는 사이들이 아니라서, 오랜만에 만날 때면 다들 새로운 소식을 하나쯤 가지고 온다.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다. 그 사이 몇 명이 더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했다. 9명 중에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세 명뿐이었다. 좋은 음식을 양껏 먹었고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집에 가는 길이 조금 쓸쓸했다.


결혼이라. 20대만 하더라도 굳이 결혼을 해야 하냐는 반골 기질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젠 아니다. 그들은 모두 결혼했거나, 결혼하는 것을 전제로 연애를 하거나, 이번 생은 망했다며 자조한다. 결혼 생각이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기나긴 연애를 했지만 결혼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혼자가 된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애도 기간과 잠시의 자유를 거쳐 고민의 늪에 빠진다. 30대 중반은 그런 나이다.


나도 변했다. 예전엔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내가 결혼생활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인지에 대해 확신이 없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혼자 잘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예전엔 있었지만 이제는 없다. 저 멀리 보이던 것이 눈앞으로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세 번째로 영화화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를 보면, 주인공과 친구들이 들뜬 기분으로 자원입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천진하게 웃으면서 서로를 놀리고 응원한다. 신체검사를 받고 군복을 갈아입은 다음 군용 트럭에 올라타고 나면 상황이 바뀐다. 멀리서 들어오는 총소리와 부상당한 병사들을 보며, 웃음기는 가시고 얼굴에 긴장이 감돈다.


30대 중반은 그런 나이다. 이제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것은 곧,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결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조급함은 사람을 얼마간 비참하게 만든다. 주객이 전도된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한다는 결심을 하는 것과, 평생 혼자이기 두려워서 좋아할 누군가를 찾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나의 진의가 저 둘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는 이제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결혼을 꼭 해야 하냐고, 평생 혼자 자유롭게 살 거라고 천진하게 말할 수 있었던 때가 조금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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