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 대신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의 이야기
※ ‘모노노케 히메’의 줄거리가 있습니다. 스포 주의!
시작은 OST였다. 히사이시 죠의 모노노케 히메 주제곡을 지나가다 들었고, 어렸을 적 봤던 애니메이션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기억에 남았던 건 늑대가 멋있고 장면이 화려했다 정도여서, 사람들이 대작이라고 할 만한 메시지를 나만 이해하지 못한 나이였던 것 같아 어쩐지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모노노케 히메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 안엔 과연 애니메이션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단편적인 내용은 간단하다. 일본 막부 시대, 한 마을에 악령이 된 멧돼지 신이 돌연 침입하는 일이 발생한다. 누군가 자연을 대변하는 이들을 사냥했고, 분노한 멧돼지 신이 악령으로 돌변한 것. 악령의 저주로 인해 마을이 황폐화되기 전에 이를 저지하고자 자연의 최고 신이라 일컬어지는 사슴 신을 찾아 나서는 주인공. 결국 사슴 신을 잡아 왕에게 바치려 하는 인간 일당을 발견하고, 들개에게 길러진 들개의 딸 모노노케 히메와 힘을 합쳐 이를 저지한다는 내용이다. 간단히 보면 ‘너희 자연을 해치면 안 돼~ 자연이 분노하면 결국 인간도 멸망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사슴 신의 목을 취하려는 인간 등장인물 ‘에보시’다. 애니메이션을 보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마을의 덕망 있는 영주이다.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나병 환자를 스스로 돕고, 그 당시 차별받았던 아녀자들을 도와 여인들이 사회의 중요한 생산의 축을 담당하게 하는, 그야말로 인간애 넘치는 혁명가적인 면모가 보인다. 이렇게 다시 보면, 애니메이션은 확실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슴 신을 해치려는 에보시가 나쁜 것 같지? 하지만 그는 인간을 위해 자기희생을 마다치 않는 인물인데, 이러한 인물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지브리의 꽤 많은 작품은 인간 대 인간의 구도를 취하면서도 다시 보면 인간과 대자연의 대결 구도를 물어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브리의 초기 작품인 천공의 성 라퓨타는 하늘에 떠다니는 고대 문명 ‘라퓨타’가 인간 문명을 말살할 수 있는 힘을 지녔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아예 방사능 전쟁 이후 생겨난 거대 벌레 ‘오무’와 인간과의 사투, 화해를 그리고 있다. 비교적 최근 작인 ‘마루 밑 아리에티’ , ‘벼랑 위의 포뇨’도 각각 자연과 함께 숨어 지내는 소인족, 거대한 해일로 표현되는 물고기 떼를 보여준다. 이들 객체와 인간은 서로 갈등하기도, 한편으로는 화해하기도 하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특히 벼랑 위의 포뇨는 내용이 너무 난해해서 관람객들이 엔딩 크레디트를 보며 황당하였다는 후문이.. 있다).
그렇다면 작품들의 공통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딜레마적 물음이 전부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말미에 이르러서는 대자연과 화해해서 행복해졌답니다~ 로 끝나지만, 그 안에 담긴 갈등 내용은 결코 한쪽이 나쁘다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아리에티는 결국 따지고 보면 인간의 물건을 빌려(혹은 훔쳐) 살아가는 종족이고, 포뇨가 이끄는 물고기는 마을 전체를 바닷물로 뒤덮는다.
적당한 여운을 주며 두루뭉술하게 끝나는 작품의 엔딩에 이르러서는 난해한 표정으로 찝찝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과 대자연에 공존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물론 이런 메시지와 크게 관련이 없는 작품도 많지만, 많은 지브리 작품에서는 인간과 대자연의 딜레마를 던져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