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의 기록, 재외공관 입직과 퇴직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하여
최근 대학생들에게 직업에 대한 강연을 하다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 사회의 변화를 맞이하며
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연을 한 대상은 유럽학을 전공하며
어문계열에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변화의 흐름을 읽는다."라는 결론으로 변화에 능동적인 사람이 되자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재외공관 입직 전 저는 중동, 남미, 아프리카, 유럽 40개국 일주, 프랑스 워킹홀리데이 등 해외 생활을 하였는데, 여타 대학생들과는 다른 그리고 많이 늦고 길게(?) 대학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경험 덕분인지 해외 취업과 타지 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국에서의 기반을 포기하고, 새로운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는 일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여행을 하고,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보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만 프랑스 파리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1년간 생활했던 경험이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외공관 입직을 준비할 시 과거 해외의 경험이 플러스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 번 유학 생활을 경험해 보았다거나,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재외공관 입직에 지름길입니다. 주재관 (영사)로 파견 오시는 분들도 그 국가의 체류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업무에 쉽게 적응하는 편입니다.
재외공관에 입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해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성장의 시간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으며 저 또한 마찬가지의 마음이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하여 미국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미국 주재 총영사관에서 약 3년이라는 시간을 근무하면서 재외공관에서 영사 민원 서비스를 위한 업무, 재외국민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영사민원 업무를 비롯해, 언론홍보 업무를 경험했습니다. 2018년 하반기 입직하여 코로나 시기에 영사 업무를 한 경험은 어려움이 다수 있었지만, 업무 간 흥미롭고 새로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또한 저는 재직 시절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아 3개월 간 쉰 후, 1년 3개월을 더 근무하였습니다.
근무하던 공관의 관할지역은 캘리포니아주 (San Luis Obispo 카운티, Kern 카운티 및 San Bernardino 카운티 이남지역),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가 있습니다. 재외국민 등록 숫자로 보면 공식적으로 68만 명의 한인 (한국 국적, 영주권자)가 있으며 한국계 미국인과 체류 비자를 소지하지 못한 이들까지 하면 100만 명에 육박하는 곳입니다. 업무량이 많은 만큼 전 세계의 공관 중 직원 수가 가장 많고, 1급 공관으로 분류가 되어있습니다. 불철주야 열심히 하지 않는 직원이 없을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휴가 쓰는 것도 비교적 자유롭고, 타부처에서 오신 외교관 분 (신분)들의 실력도 출중하여 직 간접적으로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재외공관의 특성상 현지에서 체류해 본 경험자를 선호하곤 합니다. 처음 타지에 와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함은 물론 휴대폰, 통장 개설, 현지 지리, 생활을 해보지 않는 이와 일한다는 것은 채용하는 입장에서 리스크를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생활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지만 2017년 이후, 블라인드 채용이 외교부에도 적용이 되어 운이 좋게 입직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영사 민원 업무는 기본적인 여권 발급, 비자, 서류 발급 (가족관계, 기본증명서 등)의 업무를 하고 공관 특성상 영사확인 위임장 발급 업무가 가장 많으며, 국적 이탈 & 상실 및 병역 연기, 이중 국적 신청 등 재외국민 관련 업무가 다수였습니다.
또한, 총영사관의 활동을 위한 언론 & 홍보 업무를 수행하며 미주 언론 (중앙, 한국, 조선, 코리아타운데일리, 선데이 저널 등) 대응 업무를 하였고 국내 동향 파악과 외신 관련 모니터링을 하였습니다. 특히 한국 국적의 사람들이 관할 지역에서 피해를 입는지와 범죄, 인종차별, 혐오 등에 노출되는지를 확인하였습니다. 다양한 부처가 내부에 존재하다 보니 그 안에서 갈등이 있고, 이를 조율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묘미도 있었습니다.
재외공관 입직 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현지 생활에 적응을 하는 것입니다. 오랜 해외의 경험으로 현지에 적응하는데 약 한 달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자 다양한 도시에 방문하였는데, 뉴욕, 워싱턴 DC, 하바나(쿠바), 멕시코 시티(멕시코), 포르토 (포르투갈) 등을 여행하였습니다. 재외공관의 특성상 현지의 공휴일에 휴무를 하므로 휴가를 잘 맞추어 약 7일 ~ 10일 정도의 휴가를 다녀올 수 있습니다. (*공관마다 환경은 상이하니 참고)
저 같은 경우 미국 생활은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혼자 생활하는 어려움은 둘째 치고, 밤거리 치안이 좋지 않은 로스앤젤레스 특성상 야간에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엄습해 저녁에 잘 돌아다니지 못했습니다. 이마저도 적응이 된 나머지, 3개월 정도 지난 후에는 그나마 저녁에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홀로 타지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주로 운동 모임에 자주 나갔고, 현지 미국인뿐만 아니라 한인들과도 교류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우연한 기회로 미주 한인체전에 육상 대표로 출전해 우승을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주에서 30년 이상 생활하신 어르신들과도 교류할 수 있었고, 재외국민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며 업무를 하다 보니 더 역동적으로 저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았습니다. 종교를 가지신 분들은 종교 활동을 하시는 것도 추천드리며, 언어 교환을 비교적으로 찾는 것이 쉬운 지역이고 복수 국적자임에도 한국어를 소통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한국어 가능자를 원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언어 교환하는 친구를 만나 함께 여행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가곤 했습니다.
영사민원, 언론 홍보 업무를 수행하며 저의 마인드셋은 "공관장의 마음가짐"으로 업무하자 였습니다. 이는 재외공관에 구성원이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를 하며 구조적으로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실무자들의 초동조치가 중요하며, 조직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더 올바른 것을 지켜야 추후에 문제 (감사원 감사, 국회 정기국정감사 등)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업무하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로 생각했던 것은 영사 민원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인원들이 악성 민원으로 고통을 받지만, 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었으며 외교부 부처의 공무원들도 실상 이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한 후, 민원 업무에 예약제가 시행이 되고 건물 내로 들어오는 인원이 한정되었지만 민원 관련 양이 너무 많았기에 이러한 문제는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언론 홍보 업무를 하며 한국 국적, 영주권자, 한국계 미국인, 현지인과 개인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업무량이 많았지만 역동적인 업무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코로나 시기라 조금 아쉬웠지만, 언론 관련 업무를 해보는 것이 저에게 좋은 경력이 되었습니다. 한 달에 야근을 96시간까지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영사조력법에 근거해 재외국민을 보호하는 재외공관의 특성상 실질적으로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국내의 형법, 형소법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후 관련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3월 중순부터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해 미국은 봉쇄가 되었습니다. 특히 식료품, 휴지, 물 등을 사는 것이 어려웠고 일부는 사재기를 하였습니다. 또한 야간에 통행이 금지가 되어 6시 이후에는 통행증을 보여주어야 통행이 가능했습니다. (보통 다섯 시에 집에 들어가서 있었기 때문에 통행증을 소지만 했지 사용해 본 적은 없습니다.) 백인 경관의 인종차별적인 법 집행으로 흑인 조지플로이드가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미국 전역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LA 폭동 사건을 교훈 삼아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는 주 방위군이 주둔하였습니다. 일부 업소들의 피해가 있었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당시 업무를 하며 미국 사회의 흑인 인권 운동, 대선을 경험하였고 직접 미국 서부의 법집행 기관을 경험하였습니다. 이 덕분인지 대학원에 와서도 관련 건에 대한 기초 자료를 조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재외공관에 입직을 한다는 것은 인생에 한번쯤 굉장히 좋은 경험과 커리어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만 입직 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1. 나는 현지에 가서 생활하며 영주권을 취득하며 추후 생활을 지속할 것이다.
2. 입직의 좋은 경험을 기반으로 추후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할 것이다.
1번의 경우와 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 없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지에 체류해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여행, 유학 등과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나라와 도시가 그에게 잘 맞아 쭉 생활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2번의 경우는 대부분 구직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옵션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을 채용하는 기관에서 알게 되면 일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미국 같은 경우에는 관용 비자로 채용되는 것을 연장해주지 않고, 5년 간 만 주고 있습니다. 즉, 영주권과 시민권자가 아니라면 5년만 근무를 하는 것입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타 국가에서는 정년까지 보장이 되는 자리입니다.
재외공관 실무원으로서 가장 큰 어려움은 연차가 지나도 호봉이 쌓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공무직 근로자에게 해당이 되는 문제인데, 오랜 시간 연차가 쌓여도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실무 업무에 익숙해지다 보면 분명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이를 회피하는 경향도 발생할 수 있으며 결국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닐 것입니다.
또한 급여를 보았을 때도 실질적으로 혼자 살았던 당시의 저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으나, 현지에서 자녀를 낳고, 가정을 영위하기에는 부족하였습니다. 제가 퇴사한 후, 급여나 복지 부분에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채용하는 외교부는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서 십분 이해하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채용 시에 2번의 옵션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왜 현지에서 영주 하며 살지 못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2019년 재외공관 행정직원 노조가 생긴 이후, 구조적인 문제가 점차 해결해 가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행정직원의 이야기는 전혀 달리 보입니다.
최근 재외공관에 입직한 이들이 면접을 준비하며 개인적으로 문의가 많이 오게 되어 <내가 외교부를 떠난 이유>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좋은 커리어가 되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인생에 있어 한 번쯤 외교부 직원을 꿈꾸는 분들과 이직을 준비하시는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