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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디제이 Jan 11. 2021

버거운 창업 과정에서 찾아온 뇌혈관질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만 같았던 대학생 시절, 예상치 못한 기나긴 방황의 시간이 찾아왔다. 과대표를 자처할 만큼 학교생활에 적극적이었고, 전공에 대한 확신을 위해 미국 Dallas에서 1년간 인턴 근무에도 도전하였다. 인생의 방향을 찾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 끝에 결국, 주변의 걱정 속에 2학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학업 내려놓으며 창업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렇게 불안전했던 26살의 난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 밖으로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구나.

살기 위해 죽어라 싸우던지..

죽지 않기 위해 죽어라 도망치던지..

둘 중에 하나밖에 없는 전장 속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난 그저 사격 훈련조차 받지 못한 신참 병사에 불과했다.      


항공분야 전공에 매진했던 내가 도전하려는 창업 분야는 프랜차이즈 카페 창업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생뚱맞게 생각할 정도로 기존 나의 관심사나 삶과는 연관성이 전혀 없는 분야였다. 내 인생 사전에 없던 프랜차이즈 창업에 대한 꿈은 국내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어느 대학 선배와의 대화 덕분이었다. 대학교 졸업 후 대기업 취업이 ‘성공’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 대기업에 입사한 선배는 승자로 자리매김하였고, 방황을 전전긍긍하고 있던 난 패자의 자리에 홀로 서있었다.      


방황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 선배가 나를 포함한 대학 후배들에게 진로 상담을 해주고 술도 한 잔 사주기 위해 학교를 찾아왔고, 그날이 내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진로상담을 해주며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은 술이 한잔 두 잔 기울이며 취기가 오르는 속에 점점 빠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술이 취한 선배는 회사 생활에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과 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연신 토로해내고 있었지만, 결론은 돈 벌어야 하니 앞으로도 잘 버티겠다는 다짐으로 말을 마무리하였다.     


더 이상 내 인생의 선택을 미루기 싫었던 나는 그날이 과감히 결단을 해야 하는 날이라는 직감이 왔다. 그리고, 그 직감과 함께 그 선배 한 가지 질문을 건냈다.   

   

나 : 회사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직장 생활에 임하고 있나요? 선배와 똑같나요?

선배 : 대부분 먹고살려고 근무하지. 내 것이 아닌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거니까 회의감도 오고. 그래도 묵인하고 매일 반복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거지, 뭐.

나 : 그럼 퇴직을 앞둔 임원분들은요? 높은 직위의 관리자분은 다를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분들이 선배의 미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선배 : 그분들도 퇴직하고 치킨집이나 프랜차이즈 창업을 해볼까 고민하시더라고. 그런 거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네.    

 

그렇게 선배와의 대화가 있던 다음날 아침. 난 학교에 [장기휴학]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프랜차이즈 수익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학교 친구들과 선배들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인생이 걸린 선택일 수도 있는게 그렇게 무심하게 결단을 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으로 포장한 충고를 연신 전달해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구차한 답변을 하지 않았지만, 전날 선배와의 대화는 그동안 지속되어 왔던 고민에 불을 지피는 성냥일 뿐이었다. 학교에 장기휴학을 신청하던 시점은 중간고사를 마친 직후였고, 그렇게 난 가구점과 식당일을 하며 대학증록금을 지원해주신 부모님의 피같은 돈을 공중으로 날려버린 못난 아들이 되었다. 비록, 부모님께 휴학에 대한 말씀은 드리지 못했지만, 나의 생활모드는 하루 아침에 ‘걱정형’에서 ‘전투형’으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아르바이트와 창업 준비를 하며 내 자신을 온전히 갈아 넣을 수 있었다.     


경험도 전무했고, 더군다나 창업을 위한 초기자금까지도 부족했던 당시의 준비과정은 후반부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열심히하는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 1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창업을 위한 상권분석과 공개입찰 도전 등 반복되는 실패에도 꾸준히 시도한 끝에 마침내 목표로 하던 상권에 첫번째 프랜차이즈 매장을 오픈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나이 26살, 꿈만 같던 창업의 삶이 시작되었고, 우노 다카시처럼 당찬 포부를 지닌 ‘장사의 神 ’이 될 것만 같았다. 목표로 하던 상권의 자리에 낙찰되어, 원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오픈하고, 미리 시뮬레이션으로 산출해본 예상매출액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달성하는 꿈같은 나날이 이어져갔다.      


매장을 오픈하고 1년, 2년, 그리고 3년차에 접어들 때쯤, 대기업에 취업한 또래 대학동기들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만들어내며 주변의 부러움을 받고 있었지만, 내 몸은 이미 많이 지치고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사를 절대 얍보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장사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고 어린 내가 짊어지기엔 너무 버거운 존재가 되어 나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다.     


- 남들 일할 때도 일하고, 쉴 때도 일해야 하는.. 365일이 노동이 되는 삶!

- 본사 직원과 싸우고, 옆집 가게 사장님과 싸우고, 손님과 싸우고.. 싸움이 일상이 되는 삶!
 - 매장 오픈을 해야하는 매니져가 연락도 없이 출근하지 않을 때마다 자다가 뛰쳐나오는 불안한 삶!

- 믿고 믿고 또 믿었던 직원이 지난 2년간 매출금을 빼돌리 사실을 알며,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삶!

-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힘들어 쉬고 싶은 날에도 매장의 벌어지는 일을 모두 처리해야하는 외로운 삶!

- 고귀한 인격체인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 조차.. 시급 얼마의 가치로 판단하게되는 예민한 삶!     


이런 삶이 3년차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믿음과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던 돌파구인 운동을 하기 위해 어김없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가슴운동을 위한 벤치프레스 운동 중 무거운 바가 내 몸 위로 떨어지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순간적으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는데, 뭔가 싸늘하고 이상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고 있음이 느껴졌다. 두뇌가 보내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움직일 수 없는 오른쪽 팔과 다리.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말해보았지만, 귀로 들리는 나의 목소리는‘어버버버~~~’를 반복하며 전혀 발음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날 진료를 위해 급히 찾아간 구로 고대병원에서 3주에 걸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치료를 위한 입원이 아닌.. 왼쪽 뇌혈관 중 어느구간이 막혔는지 조차 쉽게 찾지 못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조형물을 몸 속에 넣으며 MRI 촬영을 반복하던 시간이었다. 담당의사는 수많은 시도 끝에 아주 미세하게 막혀있는 뇌혈관 하나를 극적으로 찾을 수 있었지만, 결론은 수술도 약물처방도 불가능 하다는 통보였다. 나의 사례를 통해 연구 욕심히 있던 그 분은 세계 유명한 학자들에게 나의 자료를 보내며 자문을 구해보는 등 방향을 찾기 위한 모든 시도를 하였지만,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비만체질도 아니었던 나에게 뇌혈관이 막힌 원인은 단 하나라고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


그렇게 3주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하며 담당의사에게 받을 수 있던 것은 ‘권고사항을 포함한 조언’이 전부 였다.

“뇌는 한번 다치면 회복이 너무 힘들고, 뇌가 손상되는 시간도 불과 몇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현재 운영하는 사업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채소를 포함한 깨끗한 음식만을 섭취하세요! 결혼도 하셨으니, 책임감 가지고 스스로의 건강관리는 스스로 잘 해가셔야 합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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