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윤종신'의 '몰린'을 듣고
가을이 왔다. 아직은 조금씩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가을은 가을이다.
가을이 온 마당에 지나간 계절을 돌이켜보자면, 이번 여름은 너무 힘들었다. 무덥고 습해서 밖에 조금만 서 있어도 숨을 못 쉬겠는 날씨에 이럴 거면 시에스타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열변을 토했다. 망고나무라도 여기저기 자라든가! 밤늦도록 이어지는 더위에 땀에 젖어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열대야 속에선 이 여름이 어서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바람에서 가을을 한 자락 느낀 아침엔 이상하게 이렇게 여름이 가버리는 게 괜히 서운했더랬다. 너무 강렬해서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계절이 한순간에 뒤돌듯 사라져 버림에 대한 아쉬움인가. 자라나고 꽃 피우던 봄과 여름이 지나가면 이제는 소멸하고 질 일만 남았음에 대한 씁쓸함인가. 그렇게 물러서라 하던 더위가 막상 사라지니 아쉬운 마음부터 드는 게 이상했다. 애써 찾아와 준 가을에게 미안하게도.
가을은 벌써 올해 세 번째로 맞이하는 계절인데 가을이 왔다, 고 생각하고 나니 문득 올해 봄과 여름은 어떻게 왔던가 싶었다.
봄의 시작은 언제였더라, 여름은 언제 왔더라. 가을의 문틈에서 지난 두 계절이 어떻게 왔다 갔는지는 정작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꽃망울이 고개를 내밀면 봄인가, 5분쯤 걷고 나니 콧잔등에 땀이 맺히면 여름인가.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건 두터운 옷을 한 겹씩 더하는 것보다 덜 명확해서 그런가, 점점 온기를 더해가는 계절은 어쩐지 그 시작이 언젠지도 잘 모르겠는 기분이다.
가을의 시작은 반면 나에게 꽤나 명확한데 그것은 노래 한 곡 덕분이다. '몰린'이 듣고 싶어 지면 그때야 비로소 나는 아 가을이 왔구나 싶은 것이다. 요즘엔 관성처럼 이 노래를 찾아들었다. 일 년 내내 다른 계절에는 그다지 떠오르지도 않던 노래가 팔월 말, 구월 초가 되면 슬금슬금 떠올라 못 견디게 듣고 싶어 지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마른 잎 떨어지며 차츰 앙상해지다가
땅 속 깊이 뿌리내린 내 마음
시린 가을 하늘 구름 따라 끝도 없이
높아지다가 그러다 우주 밖으로 몰린
시린 가을 하늘 찬 바람따라 정처 없이
헤매이다가 그러다 세상 밖으로 몰린
아름다운 내 첫사랑
짧았던 단 하나의 마음
2012 월간 윤종신 9월호, 몰린
해가 슬슬 짧아지며 점차 한 해의 끝으로 몰리는 이 계절에서 이 쓸쓸하고 따뜻한 노래가 떠오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정처 없이 계절이 어떻게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다가 언제가 던져놓고 잊고 있던 낚싯대가 움찔하듯 이 노래에 나의 가을이 걸려 다행이다. 가을의 시작을 알려주는 노래 하나가 있다는 사실로 마른 잎 떨어지며 차츰 앙상해지는 나뭇가지를 보는 일도 조금 덜 쓸쓸해지는 기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