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나는 내 나라에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 자란 나라가 싫은 순간이 참 많았다. 외국에서 몇 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내가 다니게 될 학교를 처음 봤을 때. 칙칙한 회색 건물, 닭장 같은 창문 속에 똑같은 옷을 입고 들어찬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모습, 그곳에서 욕하고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집어던지는 '선생'이라는 사람들을 목도하였을 때, 나는 한국이 너무너무 싫었다.
누구는 아빠가 총장이라 토플 점수가 미달인데 대학 서류를 붙었다 한다. 누구는 아빠가 대기업 고위 임원이라, 사람을 갉아먹는 서류전형이니 인적성이니 고민할 필요가 없이 쉽게도 취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런 사소한 부조리야 뭐, 이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사사건건 뭐가 싫다기 보단 좀 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 문화권 하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다른 개인의 인생에 이렇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말인가. 회사에서는 한 사람이, 한 마디의 말이 나를 들어 놓기도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했다. 요란하게 바람이 빠지는 풍선처럼 이리저리 정신없이 부유하며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이것은 나라는 개인의 특질의 문제일까 아니면 이 사회의 문제일까?
나에게 '헬조선' 담론은 그냥 자조적인 드립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이 나라를 떠나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술자리 맨스플레인을 앞에서 가볍게 웃어넘기고 뒤에서 친구랑 몇 마디 씹으며 훌훌 털어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불쾌한 농담을 들으면 구조와 개인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다 자괴와 자조에 두 다리를 푹 담그고 발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불어날 때까지 머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나라를 떠나 개인주의 문화가 팽배하여 한 사람이 타인의 인생에 이렇게까지 개입할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진심으로.
하지만 제법 확고한 나의 결심은 때때로 제동이 걸린다. 그 이유는 우습게도 내가 내 나라를 퍽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공연을 보며 페퍼톤스의 ‘21세기의 어떤 날’을 큰 소리로 따라 외치다 보면 낙관이 나도 모르는 새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마음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손톱처럼 자란 그리움’이라는 가사가 뇌리에 박히던 순간을 기억한다. 여기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그리움이 어떻게 손톱처럼 자랄까. I just looked at my nails… and somehow I....... 음. 영어로 난 사람을 아주 아주 많이 그리워한다 말할 순 있어도 너를 향한 나의 그리움이 손톱처럼 자랐다 말할 순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마음이 너무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나는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친구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면 내 친구들은 힘내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라고 공허한 위로를 건네는 대신 책을 준다. 김연수의 뉴욕제과점을 주었고 최은영의 한지와 영주를 주었다. 나를 위로하고자 추천했을 책들을 읽으며 나는 힘겹고 외로운 시기를 꾸역꾸역 통과했다. 문장들 속에서 친구가 묻은 위로를 값지게 건져 올렸다.
다른 어떤 나라에 가서 나는 이렇게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들을 흠뻑 즐기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조금 혼란스러워진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내 나라에 진득하게 머무르고 싶고 훌훌 떠나고 싶어서 말이다.
‘밤이 선생이다’는 황현산 선생이 몇 년에 걸쳐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묶은 산문집인데,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서문에 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이 그리움 속에서 나는 나를 길러준 이 강산을 사랑하였다. 도시와 마을을 사랑하였고 밤하늘과 골목길을 사랑하였으며,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얇지 않은 책에 빼곡히 들어찬 많은 글들은 모두 조금씩 주제가 달랐지만 그럼에도 관통하는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바로 그가 서문에 적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글에는 이 나라가 가진 여러 크고 작은 문제점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구석구석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름답고 재치 있는 글에 탄복하는 동시에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그의 문장들이 나에게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싫다며 도망치려는 마음은 조금 비겁하지 않냐고 콕콕 찌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글을 쓰는 어른이 있다. 그는 그의 글에 나라와 사람에 대한 진득한 사랑을 담았다. 나에게는 그가 글을 통해 우리 조금 더 잘 살아보자, 하고 말해주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나의 친구들이 김연수의 문장을 황정은의 문장을 건네어 나를 우울의 우물에서 건져내었듯 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읽고 그래서 우리가 더 공감하고 이해하면 사랑하는 이 강산 이 도시에서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