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시작'을 듣고
노래를 듣는 걸 엄청 좋아한다.
좋아하는 가수도 좋아하는 노래도 엄청나게 많아서 매일매일 노래를 듣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가사가 좋은 노래에 무척이나 집착하는 활자형 리스너이다.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우연히 노래의 한 구절이 귀로 들어와 마음에 콱 박히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보잘것없는 삶이 조금 특별해지는 기분이라 그때의 상황이나 느낌을 최대한 오래오래 기억해두려 노력하는 편이다.
흔적의 시작을 들으면 무척 더운 여름날 아침이 떠오른다.
3년 전 이맘때쯤, 인턴을 했다. 그 전에도 조그마한 회사에서 일을 해보긴 했지만 대기업에서, 팀에 소속되어, 담당 선배를 배정받아 일을 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돌이켜보면 내 인생 최초의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3년 전 나는, 사회의 구정물이 꽤나 묻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을 만큼 철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음에도 인턴 생활은 나름의 스트레스였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싹싹한 건지 어떻게 내 능력을 증명하는지, 모르겠는 것 투성이었다. 아무런 악의도 의미도 없는 선배들의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곤 했더랬다. 처음 겪어보는 사회생활의 시작이니 아무렴 그랬겠지. 누구나 시작은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다 어느 날엔가, 지하철 역에서 회사까지 걸어가는 길에 랜덤 하게 틀어놓은 플레이리스트에서 흔적의 시작이 귀를 스쳤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뜨거운 햇살 아래 서서 귀를 울리는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이상하게도 그 무엇에도 좌절하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래 지금 여기
다시 꿈을 가지고
떨리는 마음을
꼭 감싸 안을 거야
지친 밤이 오면
또 약해지겠지만
어둠을 넘어서
난 달려 나갈 거야
흔적 <시작>
그래 지금 여기 다시 꿈을 가지고! 또 약해지겠지만 아무렴 어때! 난 다시 달려 나갈 건데! 하는 직설적이고 선언적인 가사 때문일까.
그 여름 그 아침은 묘하게도 이 노래 한 곡에 홀린 듯 힘이 났다. 한 달 남짓의 첫 사회생활은 그래서 아침마다 이 노래를 듣던 기억이다. (그래서 뭘 더 잘 하게 되었냐면 할 말은 없지만)
그 후론 주문처럼 힘들면 이 노래를 찾았다.
이 노래에 처음 기댄 여름이 다시 돌아오면 특히 더 생각났다.
공채로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사회생활 부적격자 같은 나의 나약함을 발견할 때면, 남들은 다 잘 녹아드는 것 같아 보이는 사회 체제에 혼자 도통 적응을 하지 못하겠을 때면, 나를 향해 잘할 수 있다 외치는 부적처럼 이 노래를 들었다.
그래 지금 여기 다시 꿈을 가지고!
그러면 또 어떻게든 얼마간 힘을 얻곤 하는 나를 보면 신기했다. 노래가 주는 힘이 이만치 크구나,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안 힘든 여름은 없었다. 끝끝내 못 견디겠다며 처음으로 퇴사 선언을 한 여름도. 여기저기 생채기를 남기며 첫 회사를 뛰쳐나와 다를걸 기대하고 들어온 회사에서 똑같은 부조리를 발견한 여름도. 그래도 어쨌든 버틸 수 있었던 건 나는 노래 한 곡에도 힘이 나는 사람이니까. 기어코 힘을 내는 사람이니까.
2014년, 2015년, 2016년. 3년의 여름을 꼬박 나와 함께한 이 노래는 올해도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니 어김없이 떠올랐다. 하지만 올해는 기분이 조금 달라서 아직 이 노래를 들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해야 하나, 그냥 별로 듣고 싶지가 않았다.
3년 만에 사회생활 초년생에서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좌절이 늘고 비관이 늘고 체념이 늘고 한숨이 늘고 미운 생각이 는 내가 혹시나 이 노래에 마저 힘을 낼 수 없는 사람이 되었으면 어쩌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노래 하나에 이게 무슨 대단한 의미부여인가 싶지만.
꿈이 뭐냐는 낯선 이의 질문에 아 무슨 꿈 타령이람 짜증나게...라고 생각한 나에게, 지금 여기 다시 꿈을 가지고, 라는 가사가 이제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들을 자신이 없다.
이 노래는 한때 내가 나를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 순간에도 이 노래를 듣고 힘을 내는 나를 보며 그래 이만치 나의 부분은 지키고 사는구나 생각하게 하는 지표였는데.
그만치의 나조차 잃어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난 3년은.
이 여름의 무더움은 그때와 다를 바 없는데. 이 노래가 처음 귓가를 스친 그때 그 횡단보도 앞에 서서 타박타박 관성에 이끌린 발걸음을 내딛으며 생각했다. 다시 꿈을 가지고 라는 말에 다시 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