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제인 Mar 31. 2022

연애의 온도

회피형 애착 유형의 연애사



봄바람이 살랑 부는 요즘 같은 계절이었다. 새싹이 움트고 진달래 개나리의 봄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한 날, 캠퍼스 옥상에서 나는 첫 이별을 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펑펑 울었고 찬란한 봄에 이별하고 걸어가는 마음이란 심장을 바닥에 질질 끌며 가는 것 같았다.



하지 않아도 될 이별이었다.


나는 그를 많이 좋아했지만 그의 감정 크기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이 몹시 속상했다. 스무 살의 나는 그랬다. 하지만 단지 서로의 마음 크기가 달라서 억울하단 이유로 그와 헤어진 것은 아니었다. 서운한 마음이 쌓여 이별을 통보했으면서도, 그를 향해 써왔던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옥상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완벽한 슬픔과 멋지고 쿨한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
그는 조연일 뿐 남겨진 기억에서 나는 그때의 나를 사랑할 뿐이었다.





나의 연애들은 누구나 그렇듯 설레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순탄하게 흘러간 연애는 하나도 없었다. 상처를 받았고 관계의 종료 버튼을 누르는 건 언제나 나였다. 많은 연인들이 떠나갔다. 나는 이것이 내 치부임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솔직한 tmi일지라도 그 모습 또한 나이기에 드러내야겠다. 나는 대체로 착한 편이었고 많은 것을 주었으며 끝에는 매몰찼다. 사랑은 뜨겁고 이별은 차갑게 한다는 것이 연애지론이었으니까.




치열하고 오르락내리락하던 20대를 지나 조금은 성숙해졌을 30대가 되었다. 30대가 되면 모든 것들에 무뎌지는 면이 있다. 그래서 좋아한다는 건 꽤 소중한 감정이다. 마음의 선을 넘어서 풍덩 빠지지 않아도 적당히 사랑하는 법을 알아서. 너무나 쿨하게 끝나버린 어떤 관계가 가끔씩 떠오르는 건 감정에 대해 내가 냈던 용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한다.




회피형 애착 유형. 그걸 가진 사람들은 상대방과 지나치게 가까워지거나 친해지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향이 있다. 관계에서 버림받거나 상처를 입을까 봐 불안해하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영역과 독립성을 중시한 나머지 누군가와 깊고 진지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확정적이고 서로에게 구속력이 있는 관계보다는 자유로우면서 약간은 모호한 관계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연인에게라도 자신의 속마음이나 진짜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편이 아니며, 상대방과 정서적 거리를 둬야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연애의 과학, 2022).




나는 종종 부담을 느낀다. 도망치고도 싶다. 내가 차가운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한 아이였고, 내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과의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정서적 거리 유지 감각을 위해 모호한 관계로 있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가까워지고 싶지만 멀어져 가고, 덜 사랑할 수 있어야 거리 유지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내가 싫지만, 그런 나를 사랑해야 했다.




나의 방어기제가 또 다른 상처를 만들까 두렵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도,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일도 이따금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전우애를 가지고 함께 살아갈 사람을 찾는다는 말도 어쩌면 의미 없을지 모른다. 스무 살, 심장을 바닥에 질질 끄는 채로 울던 그때의 나로부터 16년이 지났는데, 한 뼘 아니 1cm쯤은 자라지 않았을까.




한편 나는 꿈꾼다. 재밌는 연애가 재미없어진대도 괜찮기를, 차가운 내가 뭉근히 따뜻한 관계를 맺어주길 갈망한다. 절절 끓었다가 팍 식는 연애가 아니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온도의 연애가 내겐 최적이란걸 알았으므로







작가의 이전글 결혼식이라는 필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