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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제인 Oct 26. 2020

결혼식이라는 필터

내 축의금은 7만 원이었다.



  결혼식에 관한 글을 읽다 문득 생각나는 지인이 있다. 나는 나보다 몇 살 먹은 사람들보다, 한 두 살 즈음 어린 친구들에게 조금은 괜찮은 언니 누나였다고 자신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잘 들어주며 감정을 잘 풀어주려 노력하는 온도의 사람.


내가 나보다 적게는 한 두 살, 많게는 서른몇 해 차이 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애정과 조언들이 나를 성장시켰으므로 내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그와 비슷했다. 우리의 체온이 36.5도이니 내가 그들에게 대하는 온도란 45도쯤 되지 않았을까.


  게 중에서도 괜히 마음이 쓰이던 동생이 있었다. 내가 애정 하던 모임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모임을 이끌던 나는 그 동생이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모임에서 가장 먼저 들었다. 내게는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몰래 준비해오며 결혼 준비로 속상했던 일련의 일들을 모두 들으며 조언과 격려를 해주었다.


1년 남짓 되는 모임의 인연들이 10명 넘게 결혼식에 참석해준 일은 더 고마웠다. 내 결혼식이 아니면서, 내 친동생도 아니면서, 얕고 넓은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기도 했다.



  

결혼식이 있기 한 달 전쯤 일이 터졌다. 요는 예비신부가 우리 모임의 친구에게 축가를 부탁했고, 결혼식의 날짜도 모르는 언니에게 부탁하면서 의가 상해버린 것이다. 결혼식에 초대받지도 않은 사람이 예비신부도 아닌 사람에게 축가를 부탁받은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비신부는 청첩장이 나오면 차근차근 정식으로 초대할 참이었던 모양인데,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답변에 축가를 하기로 한 친구가 친한 사이에 어떻게 안 한다고 할 수 있냐는 거였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감정선들을 풀지 않고는 두 사람이 다신 안 볼 지경까지 치달을 것 같았다.


예비신부는 이런 상황에 미온적이었고, 오지랖 넓은 나는 두 사람 각각과 대화하며 실타래를 풀어주려 노력했다. 몇 시간씩 전화기를 붙잡고 설득하고 공감하고의 반복이었다. 누구도 잘못했다고 탓하기도 뭣했으며, 그래도 누군가의 한 번뿐인 결혼식에 앞서 불쾌한 감정이란 축복이 아니니까 그런 것들을 제거하고 싶었다.



  모임 사람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것은 내가 리더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는데, 예비신부에겐 대신 애써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들었다. 그런데 결혼식 전부터 조금씩 회의감이 들었다. 결혼식에 초대할 사람들은 400km는 떨어진 곳에서 오는 사람은 물론 제주에서 오는 사람도 있었다. 청첩장을 준다는 명목으로 모인 몇몇은 커피 한 잔 얻어먹지 못한 채 그저 청첩장만 받았다.


자리마저도 지각한 예비신부는 마치 결혼식을 기점으로 돈을 걷고 이별하겠다는 것처럼 조급하고 여유가 없었다. 신랑은 모임에 속해있으면서도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았는데, 10명남짓 참석해 준 모임 사람들은 물론 축의금을 대신 전해 달라는 사람과, 축가까지 해결해 준 참 고마운 사람들뿐이었다.



  내 축의금은 7만 원이었다. KTX를 타고 400km를 넘게 달려와 참석한 싱글녀의 축의금이 애매모호한 값어치는 실망감이 반영된 값이었다. 관계에 대한 회의감, 곧 이별할 인연에 대한 비용. 나는 그 이후로 전화 한 통, 연락 한 번 따로 받지 못했다. 겨우 할 말이 있어 안부 겸 걸었던 내 연락을 마지막으로 감감무소식이 될 게 뻔했다.


청첩장을 받았던 사람들 사이에 볼멘소리가 나와서 경황이 없었다는 핑계로 결혼 이후에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신부는 여전히 의지가 없어 보였다. 따로 단톡 방을 만들고 식당을 예약하는 일도 다른 사람의 몫이었으니. 나는 그 자리에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 참석할 만큼의 마음과 시간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내가 보낸 축의금의 의미에 대해 떠올리곤 한다. 10만 원을 했더라면 내가 조금 덜 찜찜했을까 하고. 실망감을 반영하기엔 금액이 높고 내 마음의 크기를 반영하면 금액이 적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하며 참석했던 몇몇 결혼식이 스친다. 행진하는 신랑 신부의 사진을 멋지게 찍어주고 그 사진들을 당사자에게 보내고. 아이 낳고 아등바등 사느라 소식 없는 이들의 프사로 현재를 가늠하긴 하지만 지금은 끊긴 그들과의 마지막 대화란 '오늘 너무 예뻤어, 응 잘 찍어줘서 고마워, 신혼여행 무사히 잘 다녀오고 잘 살아'이다. 부러 멀어지려 한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내 쪽에서도 딱히 애쓰지는 않았다. 결혼이라는 필터링에 내가 걸러졌든지 또는 내가 걸렀기도 하니까.



  비혼을 지향하지도 3년 내 결혼할 계획도 없는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청첩장을 보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낸 축의금만큼의 축복을 되돌려 받으려 결혼을 알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청첩장을 보내지 않을 용기,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내 결혼식 로망이다.

나는 내가 부디 

감사한 인연

감사히 유지할 수 있는

신부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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