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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제인 Oct 08. 2020

1인가구에게 친구의 방문은

토요일, 익선동. 2020.2.18



결혼 5년차를 지나는 베프와의 서울 투어는 근 1년만이었다. 내가 서울살이를 시작하기 전, 집을 함께 알아보러 다니면서 온갖 부동산을 뒤지고 구경조차 못한 이틀을 보낸 이후로 처음. 평소엔 어지러져 있던 방에 밀린 설거지와 널부러진 살림살이를 후다닥 정리하느라 그녀를 마중하러 가기 전 나는 몹시 바쁘면서도 긴장했다.


누군가 내 방에 방문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정리정돈하는 덕분에 초대 하기를 꺼리지 않지만, 내 공간에 나만 있는 것이 익숙하고 편한지라 현관문을 두드리는 일은 택배아저씨를 제외하곤 드문 일이었다.


그녀는 내게 제일 친한 친구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동안 나누는 대화대신 TV를 본다거나 묵묵히 구경을 한다거나 누워있는 일이 다반사다. 내가 단양에(그 전엔 울산에) 있는 그녀의 집에 놀러갈때면 결국 각자의 집에 있는 것 마냥 누워있기 일쑤고,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때에도 묵묵히 제 할일을 할 뿐이다. 할 얘기가 있다거나 일상의 어떤 때에 문득 생각이 난 때면 주저없이 전화를 걸어 짧은 통화를 마치고 무심히 툭 끊는다.


그녀는 나와 통화를 할 때엔 대부분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고 있고, 나는 전화선에서 냄새가 날 지경이라며 둘이 시시덕거린다. 네가 거기에 있고 안녕한 지, 이따금 부재중전화로 혹은 다시 전화거는 것으로 확인하는 사이.



마음을 표현하자면 괜시리 오글거리는 막역한 사이란 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 한 통에도 기차안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에 대하여 글쎄 그랬다니까, 하며 시시콜콜 딴 얘기를 하기 바쁘다. 나는 우리가 어떨 땐 남자친구들 간의 무심한 우정처럼 무뚝뚝하거나 서로를 소위 까면서 노는 듯 싶다가도 여느 여자애들처럼 팔짱을 끼고 다니며 서로를 챙기는 모양새가 신기하기도 하다. 오래된 친구에게 변화의 단초가 될 사건들이 생기면 너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끌어당기는 존재가 되기도 해서, 나의 변화를 고까워 하는 관계는 멀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나의 변화에 심심한 잔소리를 얹어주고도 그 그대로를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물리적 거리가 있어도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 막역한 사이라고 불린다해도 적절히 거리를 둘 수 있는 사람. 친구라는 관계는 서로를 덜 완벽하게 알아서, 그래서 더 오래 잘 지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락 싸들고 말리기 직전까지 나는 이 친구의 결혼을 반대했었다. 지난 주엔 친구는 시댁을 이유로 고비를 넘고 있다. 얼굴을 보고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우리는 통화로 많이 나누었다.  고대하던 첫 임신의 소식을 남편보다 먼저 알려주었고, 유산하던 날 수술을 마치고 통화를 했던 것도 나였다. 괜찮다는 말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에 울음을 터뜨렸다. 서로의 마음에 서툰 우리는 그렇게 위로하고 마음을 꺼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토요일의, 익선동

 이번 주 내내 무기력했다던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건 맛있게 먹이고, 손수 얼굴 팩을 해주고, 잘 재우고, 정신없이 걸으며 힘들게 해주는 것이었다. 속에서 맴도는 내 고민을 툭 내뱉거나 뜬금없이 친구를 예쁘다고 칭찬했다. 그간 있었던 일을 묻다가 그녀의 편에서 욕을 신랄하게 해주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쓰고보니 한 게 많은 것 같지만, 실은 그녀는 그녀의 얘길하고 나는 내 얘기를 했다. 평소처럼 툭, 그리고 긴 배웅으로 불안해하고 아쉬워하며.

 




1인가구에게 누군가의 방문은 공허를 허용하는 것과 같다.



친구가 다녀간 집은 평소엔 어지러져 있던 집과 달리 깨끗하고, 고맙다는 말도 표현을 새삼 제때 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고, 뭐라도 쥐어주고 보낼걸 하며 아쉽기도 하고. 그건 내 공간에 누굴 들이는 것이 빈번하지 않았던 나에게 다녀간 자리가 더 클 수 있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크기는 내가 어떤 대상을 곁에 어떤 식으로 두는지에 따라 다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기간에 그렇게나 내 몸을 생각하는 나는 집에 오는 길에 달고 칼로리는 어마어마하며 영양가라곤 하나 없는 먹을것들을 잔뜩 사왔다. 온 종일 목표치의 걸음수를 훌쩍 넘게  채우고, 피로한 채로 내 공간에 비로소 나 혼자 누워있음에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불안을 견디기 위하여.


꽉 채웠는데 텅 빈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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