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망친 곳의 낙원 Nov 03. 2022

[Day78-88] 457 단상 in London

영국 석사 개강 첫 주  

2022.09.15 ~ 09.25 

또 몰아쓰는 블로그. 지금이 11월 2일이니까 거의 한 달을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못한 셈이다. 그 사이 본격적인 석사 과정이 시작됐고, 나는 밀려드는 논문, 세미나, 에세이와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물론 그럼에도 내가 부지런하고 계획적인 사람이었다면 시간을 쪼개 글을 썼겠지만 지난 한 달을 계기로 내가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고야 말았다. 


어쨌든, 이렇게 몰아서라도 글을 올리는 건 이번 주가 Reading Week 기간이기 때문이다. 읽어야 할 논문의 양이 한도를 초과하여 학생들이 포기를 선언하기 직전, 학교는 1주 동안 강의와 세미나를 중단해 학생들이 잠시 복습하고 예습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데 그것이 바로 Reading Week다. 배짱 좋은 친구들은 이 기간에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매일 도서관에서 파파고님의 도움을 받아 밀린 논문들을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그래도 지난 5주 중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었던지라 틈틈히 개강 이후의 삶에 대해 리뷰해서 올려보기로 한 것이다. 그럼 1주 차 상황, 렛츠 기릿. 



MT1주차 - 기 

석사과정은 가을학기, 봄학기, 여름학기 총 3학기로 이루어져있는데 영국의 일부 대학(고작 9개)은 이를 각각 Michaelmas Term(MT), Lent Term(LT), Summer Term(ST)이라 부른다. 우리 학교도 그 자랑스런 '일부'에 속하는지라 어플을 통해 먼저 받은 시간표에 온통 MT1, MT5 따위 식으로 표시가 되어있어 매우 혼란스럽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도 MT의 개강 주는 학교 측이 마련한 여러 소셜이벤트와 학부가 마련한 소셜이벤트들이 범벅이 되어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시끌벅적한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문득 10여년 전 대학생활이 떠오르기도 해서 마음까지도 젊어지는 기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학생회와 동아리에서도 신입회원을 유치하기 위해 부스를 잔뜩 설치해둔다. 매우매우 신입생이 된 기분이다.


더욱이 공식 소셜이벤트에는 대부분 술과 간단한 핑거푸드들이 제공된다. 가난한 대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는 것이다! 

조악하지만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한다!


또한 같은 전공의 학생들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아시아인 일색이었던 프리세셔널과 달리 매우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어울어져 놀게 되는데, 이때 열심히 즐겨둘 필요가 있다. 이후에는 친구를 만들 기회가 생각보다 별로 없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으면 자연히 말을 할 기회가 줄어들고, 그러면 영어가 늘지 않고, 결국 다크템플러와 같은 대학생이 되어 방과 후 집에 돌아가면 (입을 너무 열지 않아) 입에서 악취가 나는 눈물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MT1주차 - 승 

그리고 이맘 때 드디어 아내도 런던으로 넘어왔다. 결혼한 이후 이렇게까지 오래 떨어져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매불망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더랬다. 특히 현우가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 지난 2주 간은 큰 집에서 매우 쓸쓸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아내의 입국은 더더욱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두둥등장!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그간 븅신같이 미뤄왔던 수많은 집안일과 도저히 매커니즘을 찾을 수 없는 세간살이 정리를 빌미로 신나게 박살이 난 후에야 비로소 유부남으로서의 현실을 다시 직시하게 되었다. 특히 나의 소울푸드였던 불닭볶음면을 모조리 압수당한 것이 가장 눈물나는 부분. 




MT1주차 - 전 

잠깐의 즐거운 시간이 끝나면 매우 혹독한 현실이 석사생들을 엄습한다. 1년 안에 모든 석사과정이 끝나는 영국의 특성상 학사일정이 매우 타이트한데, 특히 외국인 학생들에게 그것은 더욱 가혹하다. 별도의 오리엔테이션 과정 없이 첫주부터 읽을거리들이 폭탄처럼 투하된다. 


석사이니까 강의가 적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학기에만 무려 4개의 강의가 배정되었으며, 그와 관련한 세미나와 워크샵까지 합치면 일주일에 4일은 무조건 학교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주 4일이면 널널하지 않느냐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강의당 기본 40장이 넘어가는 논문(필수 논문만 계산한 것)을 읽기 위해선 전날 하루를 모두 투자해도 모자라다. 결국 참다못해 파파고의 힘을 빌려보지만, 매우 현학적으로 쓰인 논문을 번역하기엔 파파고의 딥러닝은 아직도 한참 부족하기만 하다. 

저작권 때문에 가렸지만, 대충 '씨줄과 날줄로 명징하게 직조된 상하의 계급 갈등' 느낌의 글들이다. 



MT1주차 - 결 

그나마 혼자서 끙끙대며 논문을 읽는 건 그래도 할만 했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멘붕은 강의실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리세셔널과는 차원이 다른 교수님의 말속도와 단어 수준은 나의 정신을 완전히 아득하게 만든다. 아무리 좋게 쳐져도 50%도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나름 아이엘츠 점수도 나쁘지 않고, 프리세셔널을 통해 그보다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됐다고 생각했지만, 실전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다. 

무엇인가 중요한 얘기가 나왔을 때 동시에 시끄러워지는 다른 학생들의 타이핑 소리가 들리면 더 큰 멘붕에 빠진다. 나만 못 알아듣고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그러나 강의는 그야말로 멘붕의 시작이었을 뿐..더 큰 불편함은 학생들끼리 진행하는 세미나에서 찾아왔다. 그건 차차 다루기로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Day71-77] 457 단상 in Londo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