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런던 알바생활
난 원래 대학원을 다니며 알바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간 모아둔 돈 + 퇴직금이면 공부만 하면서도 충분히 런던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과 경기 불황의 여파로 미친듯이 오르는 물가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변수였던 것...결국 나는 오른 물가만큼 생활비를 벌어야 할 수밖에 없었다.
1. 우리는 어디까지 일할 수 있는가?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짬뽕이 되어 살아가는 글로벌 잡탕city 런던은 저마다 다른 노동 허가(Work permission) 아래에서 일하며 산다. 우리는 말그대로 외국인노동자(a.k.a 외노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먼저 우리의 VISA가 허락하는 노동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영주권을 가진 한국인 분들은 아무런 제한없이 영국인들과 동일하게 근무할 수 있다. (부럽다). 더불어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워킹홀리데이 VISA 소유자들 역시 2년 동안에는 근무 시간 제한없이 근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생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발급되는 Student Visa는 학기 중이냐 아니냐에 따라 허락되는 근무시간이 달라진다. 학기 중에는 주당 최대 20시간, 방학 때는 시간 제한없이 근무가 가능하다. 정상적인 학생이면 어차피 학기 중에 풀타임으로 근무할 여력도 없다. 따라서 내 생각에 이건 학생비자를 악용하려는 사례(예를 들면 명의상 학생으로 등록해놓고 실제론 사업이나 일을 한다던지)를 막기 위해 만든 가이드가 아닌가 싶다.
2. 한국인이 많이 하는 알바
사실 이곳 런던도 구인난이 심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잡을 수 있는 일이 널리고 널렸다. 물론 본인의 영어실력에 따라 그 범위가 더 넓어지기도, 다소 좁아지기도 하지만. 이 글을 통해 내가 직접 해봤거나 지인(한국인 유학생)들을 통해 들은 알바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1) 학교에서 고용하는 연구생 알바
요구되는 영어수준 ★★★☆ (업무에 따라 달라짐)
근무난도 ★★
시급 ★★★★★
사실 학생입장에서는 학교보다 좋은 고용주를 찾기 힘들다. 우선 근무지가 학교라서 멀리 이동할 필요도 없고 시급도 그 어느 알바보다도 짭짤하다. 게다가 고용주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할 일도 없다. (우리는 노동자인 동시에 막대한 학비를 낸 학생이기에ㅋㅋㅋ). 게다가 이런 Research job 같은 경우 교수님들과도 친해질 수 있으니 일석삼조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단점은 박사를 강요받을 지도?).
하지만 꿀알바이니만큼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보통 학부별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통상적으로 전체 e-mail을 통해 공지가 되니 이런 경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얼른 지원해보도록 하자. 인터뷰도 박사과정생들이나 교수님과 같이 한 번은 뵌 분들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부담도 덜하다. (음...아닌가?)
위의 공고는 내가 학기 중에 받은 공고인데, Media and Communications 학계에서 슈퍼스타 중 한 명인 교수님이 자기를 도와줄 단기 Researcher를 고용한다는 내용이다. 읽어보면 참고문헌 정리, 페이스북 관리 정도의 매우매우 간단한 일이고 시급은 £20 수준으로 파격 그 이상의 대우를 보장한다 (참고로 런던의 최저시급은 £10 언저리다). 교수님과 친해지는 건 덤이다. 하다 못해 나중에 박사 추천서를 받기도 훨씬 편해질 것이다.
(2) 카페 알바
요구되는 영어수준 ★★★
근무난도 ★★★★☆
시급 ★★☆
가장 기본 알바다. 특히 나이가 조금 어리다면 개인적으로는 한 번은 해봐도 괜찮음직한 알바다. 시급은 그야말로 최저시급에 머무는 정도지만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알바생 동지들+손님들과 소통하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아무래도 석사생보다는 학부생들이게 좀 인기가 있는 듯 하다.
내가 다녔던 LSE 옆 스타벅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인들을 압도적으로 많이 채용하고 있는데 듣자하니 이전까지 한국인 알바생들이 일을 압도적으로 잘해버려 고용주에게 한국인은 일을 잘한다는 편견을 심어줬다나 뭐라나. 그런 이유로 LSE 옆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 K-pop을 더 자주 많이 들을 수 있다.
한국과 영국에서 모두 스벅 알바를 해본 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업무 강도는 어디든 비슷하다고 하니 관심있으시면 LSE 지점에 한 번 지원해보시길.
(3) 재고정리 알바 (한국인 업체)
요구되는 영어수준 ☆
근무난이도 ★★★★
시급 ★★★☆
한인 업체에서 물류 정리와 관련해서 한국인 단기 알바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처음 알바를 한곳도 사적으로 알게 된 한국인 형님네 옷가게의 재고창고였다. 매우 단순하게 옷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바코드를 찍어 수량을 체크하는 일이었다. 특히 영어에 자신이 없는 워킹홀리데이 학생들이 한인 업체에서 하는 단순 육체노동을 가장 먼저 찾는 경향이 있다.
일당은 9 to 6로 점심시간 대충 30분 정도 빼놓고 일하면 100파운드 정도 줬으니까 시급으로 한 13파운드 정도 되는 셈이다. 나쁘지 않다. 단순 노동임에도 근무난이도를 별 4개로 잡아둔 건 이게 은근히 너무 단순해서 육체와 정신이 모두 피곤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해도 뭔가 이상하게 정신적으로 몽롱해진다.
(4) 한인식당 알바
요구되는 영어수준 ★★★
근무난도 ★★★★★
시급 ★★(+☆)
영국 한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구인란의 80%를 차지하는 한인식당 알바자리다. 영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인을 더 선호하는 알바랄까..ㅋㅋㅋ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현재 나와 같은 하우스에 거주하는 어린 한국인 친구들은 모두 예외없이 한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런던에 그만큼 한식당이 많고 모두 잘 되는 편이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영국인+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이 한식당을 매우 많이 찾기 때문에 알바 구인도 기본적인 영어회화가 가능한 사람을 더 선호한다. 시급은 평균 11파운드 정도니까 최저시급보다 조금 더 쳐주는 정도이지만 매끼 한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메리트가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식당 서빙은 근무난도 극악이다. 특히 손님이 몰리는 피크타임의 노동강도는 극상이다. 구인공고가 자주 올라오는 것에는 다 이유가..
(5) 가이드 알바
요구되는 영어수준 ★
근무난도 ??? (성향에 따라 너무 다름)
시급 ★★★★☆
개인적으로 취업을 하기 직전까지 계속했던 가장 오래한 알바였다. 한인이 설립한 여행사의 알바 가이드로 일하는 것인데 이상하게 이것도 은근히 구인공고가 자주 올라온다. "아니, 가이드면 영국에서 오래 살고 영국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이다. 당장 엊그제 입국한 워킹홀리데이 청년도 대본을 달달 외워서 다음날 할 수 있는 게 바로 가이드다.
회사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대충 시급 13파운드에서 출발한다. 시급도 나쁘지 않고 특히 나처럼 앞에 나서서 아는 채 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만한 꿀알바도 또 없다. 더욱이 PD 경력 살려서 사진도 잘 찍었던 나는 특히 인기가 많은 가이드였다. 그럼에도 분명히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기빨림, 늘 같은 코스를 돌다 보면 생기는 지루함, 그리고 잊을만 하면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변수들에 대응해야 하는 점들은 가이드 알바의 대표적 단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본인의 성격만 맞다면 위의 알바들 중 가이드 알바를 가장 추천한다. 특히 대학원생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데, 이유는 맨날 도서관에 쳐박혀있지 말고 이렇게라도 런던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들을 자주 걸어다녔으면 하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나가서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이야기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부분도 있다. 낭낭한 용돈벌이는 덤인데다 가끔 플랫폼에 남겨져 있는 나에 대한 칭찬 후기는 자칫 떨어져있는 자신감을 다시금 끌여올려 주기도 한다.
3. 조금 특이하게 돈을 버는 방법
(1) 자기 사업 만들기
학생 신분으로 개인 사업을 하는 건 불법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학생 VISA는 개인사업을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에 프리랜서로 등록해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나 스냅촬영을 하는 방법은 조금 편법적인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정확하게 모르는 주제에 이렇게 글을 싸질러도 되나 싶지만, 영국 비자센터에서 얘기하는 개인 사업은 정확하게는 영국에서 사업자를 낼 수 없다는 표현에 가깝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이폰 스냅촬영 상품을 마이리얼트립에 등록하고, 이를 통해 모객된 손님들과 주중이든 주말이든 오전에 촬영을 하고 바로 도서관으로 갈 수 있게 스케줄을 잡았다. 한창 벌때는 내가 방송PD로 벌던 월급보다도 더 많은 돈을 훨씬 적은 노력으로 벌 때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전업을 할만큼 전도유망한 비즈니스는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부업으로 남겨뒀지만 이건 어디에 고용되어서 알바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다만 플랫폼에 수수료를 떼줘야 할 땐 조금 승질남).
취업을 한 현재에도 주말에는 스냅 촬영을 계속 받고 있다. 전혀 스트레스 받지도 않으면서도 정말 쏠쏠함 그 이상의 벌이를 가져다주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부업이다! (인스타그램 @to_the_moon_london이나 마이리얼트립 https://www.myrealtrip.com/offers/135858에서 예약하실 수 있음! 많관부 ㅋㅋㅋㅋㅋㅋㅋㅋ)
(2) 한국어 선생님 되기
한국어 선생님도 주변에 많은 지인들이 실제로 많이 하고 있는 일이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 수요가 꽤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식 자격증이 없더라도 누구나 한국어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본인만의 커리큘럼이 학생 모객에 훨씬 중요한 요소이다.
선생님이 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preply 같은 언어학습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선생님과 학생을 중개해주기 때문에 가장 손쉽게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마이리얼트립처럼 강의료에서 일정부분의 수수료를 떼어간다. 당연한 것이란 걸 알면서도 은근히 속 쓰리다.
아니면 한국어 언어교환 meet-up 같은 모임에서 한국어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을 직접 만나고 인연이 되면 사적으로 과외 제의를 해보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당연히 수수료를 떼일 일도 없는대다가 학생과 커리큘럼을 함께 조율해 나가는 등 더 신나는 과외 경험을 쌓을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너무 E의 관점인가..).
나도 Preply를 통해서 한국어 강의를 몇 번 해봤는데, 한국어 선생님의 경우 돈도 돈이지만 오히려 본인의 영어가 많이 느는 장점이 있다. 영어로 가르칠 준비를 하고 실제 수업을 하는 그 행위 자체가 정말 엄청난 영어회화 공부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그 때 인연을 맺은 학생이 훗날 면접을 앞둔 내게 모의 영어인터뷰를 해주기도 하는 등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그녀는 제법 거창한 욕도 할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해졌지만, 왠지 자꾸 그녀에게서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는 건 내 착각일까?)
(3) 되팔럼 되기
과거, 런던 유학생들의 가장 쏠쏠한 알바는 구매대행이었는데 브렉시트 이후 세금 혜택이 사라지면서 런던의 구매대행 시장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하지만 패션 아이템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부지런한 자들은 현재 구매대행과 매우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아주 짭짤한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되팔럼'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방식은 바버 또는 슈프림 등 한국에 들어와있지 않지만 매우 힙한 아이템들의 런던 지점에 오픈런으로 달려가 획득하고 바로 당근나라에 올려버리는 것이다. 난 패션 쪽에 전혀 밝지 못해서 엄두조차 내본적이 없지만 정말 부지런한 몇몇 친구들은 이를 통해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많은 수익을 얻고 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되팔이라는 행위 자체가 권장되어질만한 행위인지에 대한 물음표가 있어서 크게 추천하지는 않는 일거리다. 다만 이것이 아직 돈이 되는 분야임은 분명하다.
4. 총평
원래 이렇게 길게 쓸 글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길어졌다. (그러다보니 포스팅도 늦어졌다).
총평을 하자면 유학생 신분으로 영어를 잘하면 잘하는대로, 또는 못하면 못하는대로 손쉽게 일을 구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아예 내가 창의력을 발휘해 일거리를 만들어버리는 일도 충분히 가능한 세상이다. 정말이지 어메이징하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이번에 학교 밖에서 돈을 벌며, 그리고 내 사업을 하며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10년 동안 정규직 회사원으로 살아온 내가 드디어 울타리 밖의 세상들을 본 느낌이랄까? 어쩌면 내가 그간 너무 안일하고 편안하게 살아왔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