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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망친 곳의 낙원 Jan 03. 2024

0. 영국에서 직장생활하기

만 37세 문과출신 예능PD, 마케터 되다! 


나이: 만37 

전직: MBC C&I 차장 PD (예능)  

현직: Uhomes 한국/일본팀 세일즈 마케팅 총괄 (런던오피스) 


이게 현재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세줄 요약이다. 


어느날 문득 TV 예능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만35세의 PD는 와이프와 함께 돌연 런던으로 유학을 떠난다. 영국 명문대에서 석사를 따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뭔가 영어도 유창해지고 예능PD보다 훨씬 더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현실은 애매한 영어실력과 다른 직렬로 가기에는 더 애매한 경력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더랬다. 


그래서 생각했다. 영국에서 회사생활을 하고 난 뒤 한국으로 돌아가면 저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아내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원만히(?) 타협하고 운 좋게 취업에도 성공해 현재는 Uhomes라는 글로벌 기숙사 중개 플랫폼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하고 많은 직업 중에 마케터를 새로운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매우 현실적이다. 전직 PD로의 콘텐츠 제작경력을 살리면서도 향후에도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로 이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커리어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 Uhomes라는 회사에 지원한 이유도 매우 현실적이다. 첫 번째 이유는 Uhomes가 성장하는 회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회사라면 마케팅도 좀 공격적으로 할 것이고, 그럼 마케터로서 나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판단했다. 이전까지 계속 침체기에 있던 산업에 종사했기에 성장하는 회사에 대한 갈망이 크기도 했다.


또한 성장하는 회사 중에서도 한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노리는 기업이어야만 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영국 마켓을 타겟팅하는 포지션에 지원해봐야 내가 영국인 지원자보다 앞설만한 것이 딱히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Uhomes는 당시 한국과 일본 시장을 총괄해줄 팀장을 찾고 있었다. 해서 난 지원했고, 합격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우선 내가 기존에 받던 월급보다도 적은 월급에 계약을 해야만 했다. 그들로서는 최선의 성의였겠지만 그래봐야 박봉인 영국 마케팅 매니저의 월급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고 그것은 외벌이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아내가 큰 도움을 주는데, 아내가 나보다 먼저 런던의 한국회사에 취직을 한 것이다. 물론 그 일은 결코 아내가 원하는 직무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월급은 나보다도 더 높았다. 첫 단점은 아내의 도움으로 해결. 현재 우리 부부는 살인적인 런던 월세를 감당하면서 약간의 저금까지 하는 정도로 자리잡았다. 


둘째는 5년차 플랫폼 스타트업이니만큼 체계가 없다는 것. 이건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는데 사실 초짜 마케터인 나에게는 너무 큰 자유도가 오히려 단점으로 느껴졌다.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회사는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하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보여주길 기대했다. 이것도 어찌어찌 잘 적응해나가며 배우는 중. 


마지막은 본사가 중국에 있는 중국 회사이다보니 내가 기대했던 매우 자유분방한 서양식 오피스 문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휴가일은 최소인데 업무 시간은 최대화 된 구조랄까? 물론 그래봐야 영국 노동법을 따라야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에 비하면 천국 그 자체이지만, 그래도 가끔 금요일의 출근 기차가 매우 한산한 것을 볼 때면 '우린 왜 다른 회사처럼 금요일에 재택근무를 하지 않을까?' 싶은 배부른 투정이 들기도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 매거진엔 내가 영국의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마케터로서 생존하는,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할 예정이다. 목표는 매주 한편 씩은 글을 쓰는 건데 그것이 가능할지는 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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