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비즈니스 제안을 해보다
해외 사설기숙사를 찾는 건 유학생이나 예비 유학생 같은 극도로 한정적인 사람들 뿐이다. 제발 그들이 우리 회사의 똘똘한 사람들이 돈과 시간을 쏟아서 만든 이 편리한 플랫폼을 (심지어 공짜임.....) 알아서 좀 써줬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우리의 존재조차도 모른다는 것.
실제로 주변 유학생들 한 20명들에게 물어봤는데 단 한 명도 "유홈즈를 들어봤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젠장.....우리 플랫폼 이렇게 개쩔고, 무료고, 거의 대부분의 기숙사들과 제휴 중이고, 이젠 심지어 한국인 직원들도 있는데 왜 우릴 모르니 ㅠㅠㅠ
맘 같아서는 시내 한복판에서 확성기라도 들고 외치고 싶지만, 그래봐야 그곳에 유학생이 없으면 아무 소용조차 없는 것을. 결국 가장 빠른 방법은 유학생들과 가장 많이 소통하는 다른 플랫폼에 우리 좀 홍보해달라고 부탁하는 방법 밖엔 없었다. 그리고 그 가장 대표적인 플랫폼이 바로 "유학원"이었다.
신나게 파트너사와의 커미션 분배를 골자로 한 Business partnership proposal plan을 정성껏 써서 VP에게 보고했더니만 한참을 듣던 그녀,
"제이콥, 우리 파트너십 프로그램 있는데?"
아 쫌 진작 말해주지...(가뜩이나 영어로 써야해서 시간이 2배로 걸렸던 것.. 열정만수르인 뉴비 마케터는 이때부터 모든 걸 물어보고 진행하기로 한다).
1. 그나저나 우릴 뭐라고 소개하지?
팀원들이 3일에 걸쳐 유학원들을 리스트업 하는 동안 나는 우리 회사를 어떻게 소개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유학원들도 우리가 누군지 100% 모를 테니까. 사실 회사 자체를 PR해야하는 경험은 예능PD시절엔 해본 적이 없는 낯선 일이었다. 그 땐 적어도 MBC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야 이제 우리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 완벽하게 파악했지만 타인에게 우리 회사를 설명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하는 일부터 그 일을 얼마나 잘하는 지에 대한 자랑도 함께 해야하는데, 그 에티튜드는 당당하면서 도 재수없진 않아야 한다. 쉣, 너무 어려워...
일단은 그 모든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담겨있는 회사 브로셔를 기준삼아 보기로 한다. 우선 죄다 영어로 되어있는 브로셔를 한국어로 바꾸는 작업부터 진행했다. 물론 유학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야 영어를 잘하시겠지만, 그래도 제안하는 입장에서 더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길 바랐기 때문.
동시에 좀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회사가 사실상 중국 회사라는 점이다. 솔직히 나부터도 중국 제품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신이 있다. 왠지 잘 부서질 것만 같고, 린쟈오밍 같은 사람에게 사기당할 것만 같고, 개인정보를 다 털릴 것만 같은 그런 불신. 괜히 중국회사라고 했다간 시작부터 부정적인 인식을 줄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본사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숨겨야 하나? 오피스는 런던에 있으니까 잘하면 숨겨질 것도 같은데 말이지...
고민 끝에 거짓말을 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숨기기 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차라리 대놓고 말을 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영국 회사인 척 하다가 들켜서 해명하느니 차라리 "이건 대륙의 실수입니다!"라고 마케팅하는 편이 더 쉽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어떤 유학원도 우리 회사의 출신을 문제삼지 않았다.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면 국적이 뭔 상관이냐는 입장이었던 것. 역시 자본주의는 차갑다.
2. 생각보다 냉담한 반응에 상처받은 뉴비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유학원들에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해외기숙사 중개 플랫폼 <유홈즈>입니다. 메일을 드린 건 다름이 아니오라...(중략)... 그리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 미팅을 좀 하고 싶은데요, 저희가 런던에 있다보니 줌미팅으로 하면 어떨까요? (하략)"
아주 대기업부터 작은 기업까지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모든 업체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 수만 얼추 200개는 훌쩍 넘었다. 내심 유학생들이라면 한 번 정도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법한 초대형 유학원들로부터 기민한 답장을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1주일 안에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준 곳은 5%도 채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내가 봤을 땐 우리 회사가 나쁘지 않고, 커미션 분배도 이 정도면 타사보다 훨씬 좋고, 상대가 손해볼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 거절도 아니고 읽씹이라니...
생각보다 냉담한 반응에 뉴비 마케터는 상심했지만 이내 오기가 생겼다. 메일이 스팸행을 당했다면 전화로 직접 설득해주겠어!
3. 을(乙)처럼 보이지 않기
하지만 유학원들과 전화를 하며 더 냉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일단 해외전화를 받지도 않는 업체들도 꽤 많았고 (아마도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을 듯ㅠㅠ), 전화를 받아도 매우 냉담하고 귀찮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시차 때문에 아침에 일찍 출근해도 전화를 돌릴 수 있는 시간은 2시간이 채 안 되는데 마음이 초조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애초에 특정 기숙사와 독점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곳을 제외하곤 도대체 우리의 제안을 들어보지조차 않는 이유를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누가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PD 시절, 이렇게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면 완전히 시청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돌이켜 보곤 했다. 비슷한 방법으로 팀원들을 불러다가 내가 유학원의 입장이 되어 전화를 받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그랬더니 발견된 문제점, "야, 우리 너무 잡상인 같은데?"
물론 우리가 그들에게 전화를 건 건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을의 입장으로 부탁한다기 보다는 동등한 입장에서 윈윈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제안을 하는 것인데...그리고 우리도 나름 이쪽 바닥에선 대기업인데 말이야..
이후 팀원들의 마인드셋을 싹 조정했다. 주눅들지 말 것! 애초에 뭐 부탁하러 전화한 듯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하지 말 것! 상대가 거절하면 그들의 입장에서도 손해인 것이니 우리도 너무 아쉬워 하지 말 것! (이게 제일 중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같은 내용을 전달했는데도 긍정적인 응답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모르긴 몰라도 전화를 받는 입장에서도 "이정도 기백은 있어야 내 파트너가 될 수 있지!" 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ㅎㅎ 따지고보면 누가 쭈글쭈글한 회사랑 같이 파트너를 하고 싶겠는가.
4. 돈보다 중요한 어떤 것
거기에 더해 통화를 하다보니 느낀 점. 의외로 돈보다는 "기숙사 소개라는 귀찮은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감 있는 회사"라는 것이 그들에겐 훨씬 큰 베네핏이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나는 금전적인 부분, 그러니까 소개한 학생이 최종적으로 우리 플랫폼을 통해서 기숙사에 입주하게 되면 기숙사로부터 받는 커미션을 일정부분 공유하는 형태의 금전적 베네핏을 파트너십의 핵심 요소로 봤다. 그래서 우리의 커미션율이 타사에 비해 얼마나 공격적인 것인지에, 그리고 이전까지의 실적에 비춰 이로 인한 기대수익이 얼마인지를 설명하는데에만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점점 유학원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며 금전적 베네핏 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학생들의 기숙사 선택을 컨설팅 해왔는지, 우리 플랫폼이 타사에 비해 얼마나 더 다양한 선택지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포커스를 이동시켰다. 점차 전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유학원들의 퀘스천 마크가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한국 유학원들과의 파트너십을 늘려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