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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지순 Apr 23. 2018

짤리기 전에 아니면 짤린 다음?

선택의 순간

기업에는 소유주가 있다. 한국은 소유주가 기업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전문경영인이 대표인 경우는 흔치 않다. 우리는 보통 소유주라는 용어 대신 '오너(owner)'라는 영어를 주로 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소유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직장인들에게 좋은 의미로 다가가지 않아서라 생각된다.


직장인이 갖추어야 하고 오너가 강조하는 덕목  중에 애사심이 있다. 애사심이 있는 사람은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내 일처럼 하고, 누가 회사 욕을 하면 열을 낸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본인이 몸담고 있는 기업은 내 것이 아니고 맡고 있는 업무도 보상이 있기에 해야 하는 것이다. 내 소유가 아닌데도 내 것처럼 일하는 마음을 갖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자그마한 애사심도 없으면 오래 근무하기 참 힘들다.


한국의 유명 대기업 글로벌 채용팀이 해외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경력자를 스카우트할 때 가장 흔히 쓰는 방법이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단순 한국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이 아닌 해당 기업에서의 성과가 곧 국가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이다.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어떤 일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애정'이다. 누구는 '일에 대한 애착'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때로는 '동료애'로 버티어 낸다. 또한 '가족애'는 한 집안의 가장에게 근원적인 힘을 준다.


애사심은 단순히 몸담고 있는 기업을 사랑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본인이 속한 기업 내의 여러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복합적이고 긍정적인 감정이다. 왜냐하면 기업이라는 무형의 존재에 대해 직접적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존중,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과 성취감, 기업이 지향하는 장기적인 방향성과 본인의 비전과의 합일성 등 여러 요소들이 애사심을 형성한다. 그중에 오너에 대한 직원들의 애정이 하나의 요소로 포함되어 있다.


오너에 대한 애정이라고 얘기하면 일부 딸랑이들의 가식적인 표현이라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월급쟁이들은 재직 중인 상황에서 싫던 좋던 오너와 한배를 탄 동지이다. 오너의  판단에 회사의 사활이 걸려있고 사소한 행동거지에 기업 이미지가 좌우된다. 따라서 직원들은 오너의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을 위해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관심을 갖는다.


오너는 기업의 얼굴이고 오너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기업을 운영하는 토대가 된다. 어느 기업은 오너가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를 놓고 임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몇 시간씩 한다. 또 어느 기업의 직원들은 실컷 오너에 대한 험담을 하다가 나중엔 장점 몇 가지를 찾아내서 위안을 삼는다.


오너의 역할이 중요하고 크다는 것은 결국 오너 리스크가 높다는 것이다. 오너 리스크는 주주들의 최대의 관심사이자 기자들의 기사거리이다. 오너의 불법행위 혹은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기업주가가 요동치고 뉴스 일면을 장식한다.

   

그런데 오너 리스크는 직원들의 인생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인생이 걸려있다고 해서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팀원들과 며칠 밤 고생해서 힘들게 완성한 기획안을 오너는 단 몇 초만에 날려버릴 수 있다. 내부 경쟁을 좋아하는 오너 밑의 직장인은 내부 직원들과 싸우느라 머리가 빠진다.


그런데 오너 리스크는 직원들의 인생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20 년 이상을 한직장에서 근무한 김 부장은 오늘도 평소처럼 아침 일찍 출근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우선 커피 한잔을 마시고 메일을 확인한다. 영업부 신입인 최 사원의 아침 인사는 김 부장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한다. 최사원에게 손을 흔들고 다시 메일을 점검한다. 사내 메일 한통이 도착했다. 인사팀에서 온 메일인데 평소 인사팀 메일은 단체 메일인데 개인적으로 받는 것은 오랜만이다. 궁금한 마음에 바로 열어보았다. 내용을 확인한 김 부장은 본인의 눈을 의심했다. 아니 메일 서버를 의심했다. 내용은 회사를 나가 달라는 '권고사직 메일'이었다.


잘못 전달된 것이리라 생각해서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자리를 비운 인사팀장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시 인사팀장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또 받지 않는다. 인사팀 박 대리에게 물어보니 대표이사실에 들어가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답답한 김 부장은 인사팀으로 찾아갔다. 빈 회의실에서 다시 커피 한잔을 마신다. 멀리서 얼굴이 상기된 인사팀장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김 부장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간다. 인사팀장은 김 부장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순간, 김 부장은 받은 메일이 진실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김 부장이 입을 열었다.

"메일을 받았는데......... 도대체 이유가 뭐지? "

인사팀장은 잠시 허공을 쳐다보고 회의실로 가자고 김 부장 팔을 잡는다.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직장인은 기업 오너 및 대표와 애증의 관계다. 사람을 오랜 시간 지켜보고 있으면 애정 어린 감정도 있지만 피하고 싶은 마음도 함께 존재한다.


사유는 단순했다. 불시에 오너의 현장 점검이 있었다. 몇 개월 전 임원회의에서 지시했던 사항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눈앞이 캄캄하고 현기증이 났다. 머리 속은 변명거리로 가득하고  현장점검에서 문제가 생긴 점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김 부장은 공채 출신으로 재직 중에 결혼도 했고 고등학교 자녀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다. 아이들과 한참 놀아주어야 할 시기에는 지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계속되는 매장 오픈 및 폐점, 본사에 올라오면 뒤로 미루어 놓은 사무 업무로 저녁은 의례 회사에서 먹었다. 


다른 경쟁사로 갈 기회도 많았지만 젊은 시절에 일구어 놓은 회사 내의 작고 큰 성과물들은 마치 친자식과도 같아서 차마 떠나지 못했다. 그들을 본인 손으로 직접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명감도 들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은 이젠 단순 직장의 선후배가 아닌 가족과 같았다. 일할 때에는 원칙을 지키며 엄하게 대했지만, 업무가 끝나면 후배들의 가정사를 상담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김 부장이 곧 임원이 될 거라고 떠들고 다녔다. 스스로 생각해도 직장에서 몸 받쳐 일했던 시간과 노력이 컸다. 먼저 임원이 된 동기를 부러워했고, 되고 싶은 욕구가 큰 것은 사실이나 회사가 본인을 내치리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20 년 근속상으로 아내와 제주도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벌어진 상황이다. 


인사팀에서 내려온 김 부장은 자리에 앉았다. 인사팀장에게 들은 여러 가지 조언과 퇴사 조건이 머릿속을 맴돌다가 순간순간 마음을 쥐어 짜낸다. 김 부장은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살핀다. 매번 친숙한 모습들인데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전무님 전화다. 전화를 받은 김 부장은 회사 근처의 커피숍으로 향한다. 그러다 커피숍 옆의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를 산다. 10 년 전에 끊은 담배인데 무의식적으로 손이 간다. 담배 연기는 죽은 자의 잔재를 앉고 하늘로 올라가는 화장터의 연기처럼  김 부장의 애환을 담아 몽글몽글 흩어진다.


황 전무와 마주 앉았다. 김 부장은 말이 없다. 황 전무도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 김 부장, 사장님은 예전의 사장님이 아니야. 세월이 지나가면 강산도 변하지만, 사람도 변해"

" 하지만......................................................................"

" 나도 조만간 떠나겠지. 자네가 먼저 떠나지만...... 자네 말고도 몇 명 더 있어"

" 매장 사건이 직접적인 사유가 아닌 거 자네도 알지? "

" 네... "

" 회사는 변화를 필요로 해, 혁신을, 아니 사장이 혁신을 원해"


김 부장은 권고사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떠들썩했던 사무실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소식을 들었는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직원들이 김 부장을 힐끔 훔쳐본다. 


퇴근했지만 집으로 향할 수가 없었다. 걸려 온 수십 통의 전화와 문자는 받지 않았다. 그중 입사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야. 김!!!!!!!! 너 왜 전화 안 받아!!!!!!!!!!!!!!!  지금 어디야? "

"어. 회사 앞에서 보자."


김 부장의 일상은 예전과 다르다. 아니 달라져야만 한다.

-  김 부장과 같은 구직자에게 -

출근은 하지 않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명함을 만들라. 
명함을 주지 못하면 다음 만남을 기약하기 힘들다.

재취업을 위해서 모든 인맥을 동원하라.
사돈의 팔촌도 좋다. 인맥을 아끼다가 맥이 끊어진다.

나보다 어리거나 동년배의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구직 기회는 별로 없다.
그들이 구직 상황에서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의사결정권자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만나라.
의사결정권자는 곧 대표이사 내지 오너이다.

오너 리스크를 피하고 싶다면 창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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