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 일정을 굵게 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저렴한 방법은 여행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경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얻고 싶은 것은 어떤 건지를 먼저 선명하게 해 두면 시간이 깊어진다. ‘깨달음‘ 같은 어려운 거 말고, ‘오구라 토스트’나 ‘미소 카츠’, 혹은 '이누야마 천수각‘ 같이 그냥 이번에 떠나는 여행의 의미를 쏟아부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면 충분하다. 나의 나고야 여행 동기는 '바다가 보이는 료칸‘이었고, 여행의 컨셉도 결국 그 료칸이 결정했다.
나고야성 (名古屋城) 1-1 Honmaru, Naka Ward, Nagoya, Aichi 460-0031 일본
미쓰이 가든 호텔의 조식당은 18층에 있다. 장어 덮밥, 납작면 우동, 오구라 토스트 같은 나고야메시에다가 기본적인 호텔 조식 메뉴들을 갖추고 있다. 오구라 토스트는 구운 식빵 위에 생크림과 팥앙금을 올려 먹는 나고야식 아침이다. 아는 맛과 아는 맛이 더해져서 풍부한 아는 맛이 된다. 나고야에서는 아침에 카페에 가면 보통 커피와 함께 오구라 토스트 같은 조식 메뉴를 판매한다고 한다. 묵으려는 숙소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조금 일찍 일어나서 주변의 카페를 찾아가도 된다.
개인적으로 미쓰이 호텔 조식은 카레를 추천한다. 일본 카레 그 자체다. 다른 메뉴들도 훌륭한데, 장어 덮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관광객과 출장자 모두 각자의 아침 메뉴로 배를 채우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러 떠난다. 나는 나고야성으로 향했다.
미쓰이 가든 호텔 조식 원픽은 카레다. 주변 일본인들은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식당도 역시나 전망이 좋다.
나고야의 아침 출근길
무슨 메뉴가 있을까 궁금해서 이미지 번역을 돌려봤는데, 게장, 떡갈비, 김치찜과 간장새우를 팔고 있었다.
미쓰이 가든 호텔에서 나고야성까지는 구글 지도 기준으로 2km가 채 되지 않았다. 한 40분 정도 걸리겠네 하고 걸어갔는데, 한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걷기를 싫어한다면 나고야조역으로 전철을 타고 가도 된다. 메이테츠 나고야역을 기준으로 20분 안에 도착한다.
나고야 성은 커다란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해자 둘레길은 지금 러닝 크루들의 주요 코스로 활용된다. 나고야 성 근처에는 몸을 풀고 있는 크루들과 각종 러닝 제품들을 판매하는 전문 매장이 있다. 넘어가지 못해 안달이던 해자를 이제는 빙빙 둘러가며 체력 증진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후대인들의 지혜 어떤데.
해자 뒤로 보이는 나고야성의 천수각
검은 기와가 얹어진 망루가 해자 바로 옆에서 성을 지켰다.
나고야 성에 가까워 질수록 날이 갰다. 여행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나고야 성 근처에 스타벅스도 있다. 걷다가 지쳐 스타벅스에서 기운을 차리고 다시 성으로 향했는데, 천수각은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을 발견했다. 무려 2018년부터 진행된 보수 공사가 이유였다. 천수각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어 먼 길을 걸어왔는데, 왜 이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을까. 안 가볼 수는 없어서 결국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간 나고야 성의 주요 건물들은 아직 보수 중이거나, 이제 막 보수를 끝냈다. 다음날 이누야마성의 천수각에 가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남아있는 천수각들은 정말 오래되어서 밖에서 망을 볼 수 있는 공간의 바닥이 밖으로 기울어져 있다. 여기를 공개하여 관광객들을 맞이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정도다.
천수각을 대신하여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주요 건물은 나고야성의 성주가 직접 생활하는 공간이었던 혼마루어전이다. 사실 나고야성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패망 직전 미국의 폭격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복원된 장소이다. 혼마루어전은 이제 막 복원되어 당시 성주를 비롯한 귀족들이 생활한 공간을 엿볼 수 있다. 천수각은 층간 거리가 매우 멀다. 사다리를 타고 이동했을 텐데, 과연 귀족들이 무거운 갑옷을 입고 건물 위아래를 왔다 갔다 하는 불편함을 감내했을까? 그래서 따로 지어진 건물이 혼마루어전이고, 천수각의 주요 기능은 전망을 확보하는 군사 시설이었다.
나고야성 입장료는 대인 기준 500엔이다.
그런데 천수각은 18년부터 6년간 보수공사중이어서 입장이 불가능하다. 입장료가 그대로인건 이상하다.
나고야 성 내부 전경
나고야 성의 주요 건축물인 혼마루어전과 천수각. 혼마루어전은 보수를 완료했고, 천수각은 보수 공사중이다.
혼마루어전 내부 공간.온통 금으로 도배되어 있다. 나무 향이 짙다.
나고야성에는 닌자 학교가 있다.
나고야조역에는 역의 구조가 그려져있는 화이트보드가 있다. 아날로그화도 가능한 걸까.
우쓰미역 (Utsumi 内海駅)
나고야시는 아이치현의 현청 소재지다. 그리고 나고야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츄부 국제공항보다 밑으로까지 같은 아이치현 소속의 여러 시와 정들이 뻗어있는데, 오늘의 목적지가 그곳에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료칸 야마우미 온센 시우쿠 카이푸 료칸이다. 문제는 거리다. 나고야 중심에서 료칸까지 가기 위해서는 전철을 타고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데, 1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래도 꾸역꾸역 찾아가기 위해선 나고야의 지하철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메이테츠 나고야역에는 한 정거장에 여러 가지 노선이 섞여서 지나간다. 한국의 환승 지하철역은 노선이 층마다 구분되어 서로 섞이지 않지만, 나고야역은 하나의 승강장에 수많은 노선의 지하철이 순차적으로 들어오고, 이 노선을 색으로 구분한다. 그래서 노선마다 지하철이 서는 위치가 조금씩 다르고, 승강객들이 알아서 자기가 타야 하는 노선의 구분선에서 줄을 서고 대기해야 한다. 나고야 시내를 돌아다닐 때에는 주로 Higashi Okazaki 선을 (노란색), 나고야 시를 벗어나 위아래로 움직일 때에는 메이테츠선을 (빨간색) 이용한다.
나고야역에서 야마우미 온센 시우쿠 카이푸 료칸을 가기 위해선 우선 우쓰미역까지 가야 하는데, 그전에 후키富贵역에서 경전철로 환승을 해야 한다. 나고야역에서 후키역까지는 고와河和행 메이테츠 특급열차를 타고 이동한다.
노션별로 색이 다르다.
탑승하려는 색에 맞춰서 줄 서있으면 열차가 알아서 줄 앞에 정차한다.
후키역에서 내려서 경전철로 갈아탄다. 철로를 사이에 두고 승강장이 나뉘어 있는데, 1번과 3번 승강장은 하행, 2번 승강장은 상행이다. 메이테츠 특급열차를 타면 3번 승강장에서 내리면 우쓰미역으로 가는 경전철로 갈아타기 위해 3번 승강장으로 철로를 건너가야 한다.
메이테츠 특급 열차를 타고 후키역에서 내리면 철로를 건너 3번 승강장으로 가야 한다.
3번 승강장과 2번 승강장이 붙어있다. 나고야 시내로 돌아갈 때는 다시 후키역으로 와서 2번 승강장으로 오는 상행선을 타면 된다.
미리 언급하면, 이 료칸은 이미 한국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이렇게 외진 곳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겠지만, 카이세키 석식 장소에 있는 모든 테이블에 한국인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고야는 드디어 오명을 벗었다는 확신을 얻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또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한국인들은 좋은 곳을 찾아 떠난다. 료칸을 관리하는 분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시지만, 어떻게든 소통하려고 노력하신다. 심지어 중요한 안내문은 이미 한국어로 번역해서 복사해 주신다. 이 료칸까지 가는 길을 직접 체험한다면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체감할 수 있다. 해풍 료칸으로 불리는 만큼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한 이 료칸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도 걸어서 15분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데, 바로 그 료칸에 한국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함께 저녁과 아침을 먹고 온천탕을 공유한다. 그만큼 엄청난 료칸이란 뜻이다.
우쓰미 역에서 료칸으로 전화를 하면 픽업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마도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는 것 같은 료칸 직원 분들 중 한 분이 운전해서 데리러 오시는데, 조용한 일본어로 이런저런 료칸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데도 하잇을 남발한 탓에 차에서 내릴 때까지 알아듣는 척을 해야 했다. 알아차리셨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위치가 이렇게 멀어도, 소통이 어려워도, 뜻밖에 한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마주쳐도, 이 료칸은 도착한 즉시 곧바로 탄성이 나온다. "와 무슨 이런 료칸이 다 있어!" 싶을 정도의 숙소다. 대문을 열면 바로 있는 창으로 바다가 보이고, 그 앞에서 체크인을 한다. 도자기가 놓인 창을 지나 왼쪽으로 가면 식당, 오른쪽으로 가면 객실과 온천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2층부터 8층까지 각종 노천탕과 개별탕이 있는데, 특히 5층에 있는 노천탕은 사전에 시간 블록을 잡아두고 예약제로 운영되는 프라이빗 온천이다. 이렇게 성별 제한 혹은 쿼터제로 운영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글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 8층의 온천이 특이한데, 옥상에 남탕-혼탕-여탕이 함께 있는 구조이고, 위에는 하늘만 보인다. 남탕에는 반바지가, 여탕에는 타월형 가운이 비치되어 있어 혼탕을 이용할 때도 무리가 없다.
체크인 직후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해피 아워를 운영한다. 어떤 해피한 시간이냐면, 2층에 마련된 공간에서 사케를 무제한 제공한다. 짐을 풀고 찾아가면 소라와 오징어를 숯불에 굽고 있는 요리사가 반겨준다. 술은 사케와 쇼츄 (일본식 소주) 두 종류가 있다. 쇼츄보다는 사케가 부드럽고, 더 많이 마실 수 있다. 체크인 시간에 맞춰서 방문한 손님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서 사케를 마시고 몸을 덥힌다. 마찬가지로 이 료칸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구성 요소다.
객실에서도, 그리고 각 층의 온천에서도 모두 바다가 보인다. 나는 바다가 보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그런 모습이 이미 익숙한지 안내해 주시는 직원분은 상대하는 손님이 놀라는 걸 그만할 때까지 기다려주신다. 다 놀라고 나면 유카타를 가져다준다. 이제 할 일은 위아래층을 오가며 몸을 담그고, 때가 되면 밥을 먹는 것뿐이다.
료칸의 리셉션이다.
객실에서도 바다가 보인다.
해피아워에는 간단한 안주와 풍성한 주류를 제공한다. 왼쪽 병에 담긴 것이 사케, 오른쪽이 쇼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