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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의 중립 선언이 위험한 이유

by 김시바

※ 먼저 본인은 윤석열 전 대통령은 범법자라고 생각하며, "국민의힘" 정당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임을 밝힙니다. 이 글은 당선 유력 후보의 정책이 미칠 영향과 특정 발언 이면에 숨긴 의미를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어제 이재명 대통령 선거 후보의 선거 유세 중 중국 관련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5385932?sid=100



발언의 요지는 이재명 후보 본인이 당선되면 중국을 비롯한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과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겠다는 것이다.


해당 유세 내용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하자, 온라인상에서는 지지자들이 과거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조선시대 광해군을 언급하며 이재명 후보가 실리적인 중립 외교 정책을 밝혔다고 치켜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과연 이재명 후보의 저 유세 내용이 '실리적인' '중립' 외교를 지향한다는 의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재명 후보의 발언 내용은 '중립적' 이지도 않고, '실리적'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중국, 대만, 러시아와 모두 친하게 지내겠다." 라고 말하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유력 대통령 후보가 특정 국가나 특정 세력과만 친하게 지내겠다고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여기에 숨어있는 악마는 바로 "중국과 대만이 싸우던지 말던지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 라고 하는 발언이다. 언뜻 들어보면 남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정말 '실리적인 중립 외교'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것처럼 보인다.



1. 중립 선언이 중립적이지 않은 이유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현재 중국은 대만과의 통일을 위해 여차하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으며, 대놓고 대만 봉쇄 작전과 침공 작전을 연습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대만은 경제력에 비해 군사력이 매우 약한 상황이다.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중국에 의해 최신 무기 수입이 저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미일 3국이 돕지 않는다면, 현재 대만의 군사력으로는 중국의 침공에 일주일도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약 12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일본이 우리나라 침략을 위해서 군대를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막을 군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때, 다른 나라들이 "싸우던지 말던지 그건 일본과 한국의 문제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은 중립적인 행위일까?


힘의 균형이 일방적인 상황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은 사실상 중립을 가장한 "강자에 대한 묵시적 동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난 빠질께" 라고 말할 때 어떤 국가가 좋아하고, 어떤 국가가 싫어하는지를 보면 이러한 의사 표현이 어느 측의 의견에 따르는 것인지 분명하게 나타난다.


국제관계는 냉정하다. 특정 한쪽의 의사를 지지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 그런 행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사실상 중국 편을 드는 행위가 우리나라에게 '실리적' 이지 않다는 것이다.



2. 중립 선언이 실리적이지 않은 이유


안타깝게도 중국과 대만의 싸움은 우리나라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와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순망치한 관계(입술과 이빨 사이 같은 의존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지도를 펼쳐놓고 중국과 대만, 한반도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3042510573978320


우리나라는 대만, 필리핀, 베트남, 인도 등과 함께 중국과 미국 사이의 경쟁에 최전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 등과는 다른 특성이 있다. 바로 다른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에 접근할 수 있는 바다와 하늘의 길이 사실상 중국과 미국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만약 대만이 무력에 의해 중국 땅이 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우리나라에 접근할 수 있는 바다와 하늘 길의 대부분은 중국이 사실상 장악하게 된다.


(실제 중국 영해가 아닌 공해라고 해도 중국 해군과 전투기들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므로 중국의 영역이 된다고 봐도 된다. 미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봉쇄가 아주 쉬워진다. 한국으로 향하는 수백 척의 상선 중 한두 척만이라도 중국에 나포되거나 침몰하게 되면 다른 모든 상선들은 한국행을 포기하거나 운임과 보험료가 치솟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바로 옆의 일본 땅과 일본 영해를 거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사실상 중국에 의해 포위되는 형상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처지가 현재 대만과 비슷하게 바뀌는 것이다.


중국이 대만을 다루는 방식이나 수자원을 이용하여 동남아 국가들을 다루는 방식, 사드 사태를 이용하여 한국을 공격하는 방식을 보면 알겠지만, 중국이 사실상 한국을 봉쇄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그들이 한국인들을 위해 친절하게 바다와 하늘 길을 자유롭게 내버려둘 가능성은 매우매우 낮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중국과 대만이 싸우던지 말던지 내버려둘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그런 입장을 견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09799724?sid=104



3. 대만이 무너지고 나면 그 다음은??


물론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무조건 중국과 대만의 전쟁에 참전을 해야 하고, 지금부터 중국과 대립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은 현재 상황에서, 굳이 우리가 먼저 나서서 중국 편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재로써 가장 적절한 멘트는 한국은 “평화적 노력을 지향한다” 라거나 “무력에 의한 강압적인 상황 변화에 반대한다”가 될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중국과 미국 모두 한국의 지지가 필요하다.


우선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동맹국들 중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지정학적/정치적 봉쇄를 뚫을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중국 입장에서는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가치 외에는 특별한 가치가 없다. 제조업이나 산업 관점에서는 중국이 우리나라의 완벽한 대체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중요하다. 최근 조선업 관련 미국 정부의 행보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특히 제조업 관련하여 미국의 부족한 역량을 메울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는' 미국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싸워서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국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대만이 중국 땅이 되고 나면 어떻게 될까?


중국은 태평양 진출이 자유로워지므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크게 줄어든다. 안그래도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지정학적 가치 외에는 특별한 가치가 없었는데, 한국의 바다와 하늘 길까지 장악할 수 있으므로 한한령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거친 압박을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의 중요성이 크게 떨어진다. 한국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너무 가깝고, 앞서 설명했듯 한국을 돕기 위해서는 중국의 해군과 공군을 뚫어야 되는 부담이 가중된다. 게다가 미국 입장에서는 이미 일본이라는 대중국 방어선이 있는 상황이므로 굳이 일본을 넘어서 한국까지 방어하기에는 투자 대비 이익이 크지 않다. 아마도 한국의 제조업 기반을 포기하고 일본과 미국의 제조업 역량을 키워야 된다는 목소리가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군사적, 정치적 입장과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쪼그라들게 되는 것이다.


그때 가서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한들 미국이 선뜻 나서서 도와줄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대만도 안 도와준 간잽이들 취급을 받을텐데? (지금도 간잽이 취급을 받고 있지만...) 그때가서 중립을 선언하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중립이 될까?


착각해선 안된다.


광해군은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을 선언한 적이 없다. 그는 명나라 요청에 따라 군대를 파견하면서 청나라 내부와 연결되기 위해 애를 쓰는 등 끊임없이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줄타기를 했던 것이다. 중립을 선언하고 편안하게 국제정세를 나몰라라 행동을 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우리나라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중립을 선언하면 주변 환경이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시스템과 환경의 방향 설정은 리더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리더를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시스템과 환경을 세팅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집값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 공짜 밥을 줄지 안 줄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의 지도층들은 언제든 미국으로 도망칠 준비를 해두는 것이고, 워렌 버핏은 결국 미국에 투자하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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