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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색을 찾는 과정

심리상담 첫날

이유 없이 나타나는 감정은 없고,
오래 감정을 억눌렀을수록 보내주는데 시간이 걸려요.

“당신의 보물 1호는 무엇입니까?”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질문이었다. 9개의 심리 상담지 중 <Personal Information Sheet>에 질문과 함께 답을 쓰는 공란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도 여러 번 받아본 질문이었다. 어떤 답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바로 답을 적었고 그 답은 자주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민이 됐다. 보물 1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 내가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게 뭘까? 몇 분을 하다가 ‘잘 모르겠음’이라고 적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공허하다’라는 말을 해왔다. 그 말 이전에는 공허한 어떤 느낌을 느꼈을 것이고, 그 느낌 전에는 어떤 상황을 마주쳤을 것이다. 내 안이 텅 비었을 때, 왜 이렇게 공허할까?라고 되묻기보다 다른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다. 지금 공허한 이 느낌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계속 먹는 행위를 통해 음식물을 위에 가득 채워보기도 하고, 빈 틈이 없도록 하루 일과를 가득 채워 살아보기도 했다. 그래도 부족한 날에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제주도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꽤 오래 ‘공허함’으로 부터 도망쳐 다녔다. 잠시 잊고 잘 지냈다. 그러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중간중간 공허함이 무기력으로 번아웃으로 우울과 답답함으로 찾아왔다. 아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유 없는 감정들이 무서웠다. 맞닥뜨려야 할 일들은 어떻게든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구나. 이번에는 예전처럼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나만의 동굴로 숨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


첫 심리상담은 왜 이곳을 오게 되었는지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어떤 질문에 답을 하다 울컥하기도 했고, 과거의 상황에 몰입이되 선생님의 질문을 듣지도 못하고 이야기를 쏟아내기도 했으며, 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했다. “스스로의 색을 찾기 위한 상담이 되겠어요. 스스로를 너무 싫어하지 말고, 좋아하지는 못해도 안 싫어하는 방향으로 가보죠“


“네”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수용하는 것에서부터 상담이 시작됐다. 나는 나를 싫어하지만, 나니깐 이런 나라도 좋아해야 한다며 스스로가 좋은 척하고 살았던 걸까?


“이유 없이 나타나는 감정은 없고, 오래 감정을 억눌렀을수록 보내주는데 시간이 걸려요. 아! 감정을 잘 보내준다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오히려 아주 가벼워지고 일상에 소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게 되죠.”


시간이 걸려도 앞으로는 조금씩 달라질 거고, 변화하는 과정안에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됐다. 나는 나의 보물 1호가 되고 싶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좋아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좋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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