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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Apr 06. 2024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물었다.

또 한 번의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며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쉽지 않은 주제다. 한 번쯤 물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글로 쓰려니 온갖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듯하다. 32살의 나에게 인문학은 무엇일까?


인문학을 처음 접했던 25살의 나는 인문학의 ‘인’ 자도 모르고 선생님께서 책을 읽고 글을 쓰라고 하니 무작정 읽고 썼던 기억이 있다. 아무것도 일단 뭐든 했던 그 시절은 내 인생의 손에 꼽을 만한 터닝포인트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인문학의 ‘인’자 정도는 이해하고 있을까? 여전히 인문학은 어렵다. 그리고 완벽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평생 공부해도 완벽한 이해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해서 아주 많이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사전에 인문학을 치면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은 자연과학(自然科學, natural science)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지칭한다. 인문학이란 언어·언어학(言語學, linguistics)·문학(文學, literature)·역사·법률·철학·고고학·예술사·비평·예술의 이론과 실천, 그리고 인간을 내용으로 하는 학문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라고 나온다.


이 설명만 봐서는 몹시 머리 아프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나의 삶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역사니 언어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들을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올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먹고사는 현실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만 같다. 나 역시 인문학을 배우기 전까지만 해도 비슷했다. 그러나 내가 배운 인문학은 조금 달랐다. 위 정의와 같은 개념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지적 배움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분들이 더 많았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날들 잠시 브레이크가 걸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인문학은 쉽게 말하면 ‘인간에 대한 공부’다. 단순히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 그리고 이 세계가 돌아가는 이치와 원리 등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작업을 한다. ‘나’에 대한 이해도 되어있지 않으면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테니 말이다.


나의 첫 인문학 스승은 ‘인문학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매일 삶 속에서 쌓아가는 교양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셨다. 지식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 마치 삶이 예배여야 한다고 말하는 성경 말씀과 같이 삶에서 묻어나는 것이라 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살고 싶은 대로 생각 없이, 그저 끌려가듯 살 때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통해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사랑’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이후 글쓰기 교육을 할 때도 이 부분을 늘 먼저 이야기한다. 가능하면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문학의 핵심은 묻고 답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내가 하는 말, 행동 그리고 삶의 방식, 더 나아가 내가 믿는 모든 것들에 대해 묻고 답하면서 그 안에서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했던 것들과 내가 이루고자 했던 삶의 목표, 내가 정답이라 믿었던 것들이 과연 마침표로 끝나는 것이 맞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가령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가졌던 나의 종교적 신앙이 과연 진짜 신앙이라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돌아보면 믿음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사실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늘 그렇듯 끊임없이 물음을 던져야만하는 인문학은 필연적으로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무작정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물었을 때,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답을 찾았을 때, 그때야 비로소 진정으로 나의 것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인문학이 삶에 대한 주체성과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고 믿는다. 인문학의 힘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물음을 통해 깨어있어 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온전한 존재로서 존재할 때 발휘되는 생명력. 어쩌면 이것은 위에서 스승님이 말씀하셨던 ‘사랑’의 또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깨어있는 삶에 대한 목마름과 갈급함이 계속해서 인문학을 놓지 못하게 하는건 아닐까. 그래서 ‘인문학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인문학은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것은 마음의 울림을 따라가는 길이고,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를 택하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물음 끝에 지금 나를 울리는 이 마음이 진정한 믿음의 출발점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삶의 여러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결국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내가 나답게 살기위해, 더 나아가 그 어떤 존재도 이유 없이 이 세상에 보내지지 않았다면 나만의 사명을 찾기 위해 계속 묻는 것. 인문학이란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인문학은 전적으로 능동태다. 영혼이 게으른 자에게는 더한 궁핍을 준다고 했듯이 삶의 이유든 의미든 믿음이든 인간다움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가만히 있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맞다. 표현하는 언어와 방식이 다를 뿐이지 삶의 진리를 깨달은 이들이나 수많은 종교에서 결국 모두가 같은 말을 하듯이.


오랜만에 다시 진득한 물음의 여정을 시작할 생각을 하니 두려우면서도 설렌다.


머리와 가슴을 괴롭혀보자. 기꺼이.


당신은 영혼은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
깨어있는가 잠들어 있는가

당신은 삶의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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