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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히쓰 Oct 22. 2024

마흔에 쓰는 나희쓰한 자기소개서

침묵의 온도 - 냉탕과 온탕사이

억눌렀던 감정은 급기야 압력밥솥이 터지듯 터져버렸다.
모든 것에 화가 났다. 아이의 칭얼거림도 신랑이 가만히 있는 것도.
나만 잘못되었고, 나만 문제니 집에서 나라는 존재만 없어지면 될 것만 같았다.


이 감정의 폭발은 단순한 짜증이 아니었다.
그동안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던 수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밀려나온 것이었다. 분노, 절망, 두려움, 억울함, 죄책감... 이름도 모르던 감정들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아이가 집에 있는데도 무작정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당장 나가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이성이 돌아왔다.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이내 한숨을 쉬고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두면 또다시 반복할 것만 같아서 개인 상담을 신청했다.


나의 이 모든 문제는 남편 때문이다 라는 생각으로 상담사를 처음 대면한 날,
처음 본 상담사에게 그동안 쌓인 남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한참을 듣던 상담사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며 가만히 나를 위로해주었다.


진심으로 위로받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더 이상 강한 엄마이고 싶지 않다고.
상담사 앞에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오랫동안 숨죽여서 눈물을 흘리던 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상담사가 편하게 소리내어 울어도 된다고 하는 말에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울면서도 수치스러웠다. 이렇게 울어도 될까? 그 마음에 더 새어나오는 울음을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정해진 상담 시간이 종료되었는데도 쉽사리 눈물을 그치기가 힘들었다.


언제였을까? 나를 위해 이렇게 울어준 시간이.


그렇게 생각해보니, 아이 낳고 단 한번도 나를 위해 울어주질 않았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감정을 알아가기 전에 먼저 나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를 애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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