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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pr 08. 2024

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49. 미션

처음에는 두 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움찔했다.

그러나 아이템을 소비하여 어렵게 만든 미끼다.

그걸 보고 걸려든 사냥감을 놓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소현배는 일단 화살을 날렸다.

몸통을 노렸는데, 마지막 순간에 마상욱이 움찔하는 바람에 손을 맞히고 말았다.


‘둘이 싸우는 것 같더라니. 공격을 받자마자 찢어지는 팀이었군.’


마상욱이 힐링 포션을 마시는 것을 보면서, 소현배는 풀숲에 몸을 숨긴 채 움직였다.

이런 지형에서 전투를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닐 텐데, 마상욱은 겁에 잔뜩 질려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힐링 포션을 마셨다.

엄폐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매번 파티로 들어와서 몰이사냥이나 하다 보면, 저렇게 되는 거지. 레벨만 높은 바보였군.’


처음의 위치에서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한 소현배는 다시 활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숨을 죽이고, 정확하게 몸통을 겨냥해서 시위를 놓으려는 순간.


“크헉!”


깜짝 놀란 소현배는 활을 거두면서 소리가 나는 뒤쪽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공중에 매달려 있던 주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누군가가 공중에 떠 있는 그를 공격한 것이다.


‘어느 쪽에서 공격한 거지? 바람 소리 때문에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건가?’


어느 방향인지는 몰라도 원거리 무기 사거리에 들어온 또 다른 구원자.

그리고 이제 결박석에서 풀려나 누구보다도 자기를 노릴 주석.

주석을 미끼로 이용해 마상욱을 거의 사냥했다고 생각하며 좋아하던 소현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소현배는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변수가 너무 많아져서 일단 공격보다는 상황 파악에 치중해야 할 상황.

힐링 포션을 마시고 손의 부상을 치료한 마상욱은 이제 소현배의 손아귀를 벗어날 것이다.

자신을 추격할 것이 확실한 주석, 그리고 주석을 공격한 또 다른 구원자.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몸을 숨긴 채, 소리에 집중하자.’


***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마구 뛰어오는 발소리에 이준기는 일단 몸을 낮췄다.

발소리가 들리던 남쪽에서 하민서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전력으로 달려온 모양이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이준기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경로.


하민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적대할 필요도 없다.

이기적 유전자의 최적 전략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지만, 맨 처음 수는 선행이어야 한다.


“민서 씨!”


이준기가 일어나면서 이름을 부르자, 하민서는 깜짝 놀라면서 제자리에 섰다.


“준기 씨?”


분명히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인데 공격을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민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준기가 입술에 손을 대고 쉿 소리를 내고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요?”

“누군가 상욱 씨를, 마상욱 씨를 공격했어요.”

“그걸 목격하고 도망 오시는 거예요?”

“아뇨. 목격한 게 아니고, 마상욱 씨와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마상욱 씨가 저를 속이려고 해서.”


그렇게 말하며 하민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속여요?”

“네. 그래서 둘이 말다툼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서 마상욱 씨가 맞았어요. 저는 무서워서 도망쳤고요.”

“그렇게 된 거군요.”

“공격한 사람도 무섭고, 상욱 씨도 저를 속이려고 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서…”


“일단 자리를 옮기죠.” 이준기는 하민서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네. 죄송해요.” 하민서가 조금 진정되는 듯 보였다.


둘은 북동쪽으로 움직였다.

이준기는 서너 걸음 정도 앞서 걸었다.

충분한 거리를 두고 뒤를 따라가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며, 하민서는 이준기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는 도중에, 이준기가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물었다.

“한 명 더 있어도 상관없죠?”


“네? 아! 팀이 있으신 거예요?" 하민서가 잠깐 당황했다. "같은 길드 한택수 씨?”

“문아린 씨와 만나기로 했어요.”

“아, 문아린 씨! 문아린 씨와 만나기로 하신 거예요?” 하민서는 여전히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네."


"여기 들어오기 전에요?"

"네, 그렇죠." 하민서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준기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이... 이런 일이 있을 걸 알고?"

"설마요." 이준기는 하민서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하지만 FFA가 데스매치일 수도 있으니까, 만약을 생각한 거죠."


"데... 데스매치." 하민서가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뭔가 방법이 있을 거예요."


이준기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이미 적대행위가 시작되었고, 한 명만 죽으면 되는 일이다.

FFA 포맷이지만, 단 한 사람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배틀로얄은 아니다.

그러나 그걸 지금 말해줘봤자, 믿지도 않을 것이다.


풀숲에 바람이 일자, 하민서는 얼굴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펑펑 울어서 얼굴 전체가 눈물범벅이었다.


“잠깐 쉴게요.”


이준기가 그렇게 말하고 풀숲 사이에 앉았다.

이준기 바로 옆까지 다가와서, 하민서도 털썩 바닥에 앉았다.


“여기 앉아도 돼요?” 이미 앉고 나서 하민서는 당황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럼요. 자리맡은 사람 없습니다.” 이준기가 미소를 보였다.


“준기 씨는 침착하시네요. 서로 공격하라고 해서 저는 깜짝 놀랐는데.”

“누군 안 놀랐겠습니까. 살려고 숨어 있는 것뿐이죠.”

“어떻게 하시려고요?”

“누군가 절 공격하면, 그땐 반격해야겠죠.”


바람이 풀밭을 마구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바람 소리, 바닷새 소리, 그리고 멀리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섞여 긴장감을 지우는 듯했다.


“문아린 씨와는 어디에서 만나기로 하신 거예요?”

“북쪽 끝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거의 북쪽 끝인데, 주위에 안 보이는 거 보니 아직 도착 못 한 모양이에요. 저보다 더 멀리 떨어졌나 봐요.”

“만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일단 여러 명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공격하기 어렵겠죠.”


하민서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물었다. “누군가 죽지 않으면 미션이, 던전이 안 끝나잖아요.”

“그건, 두고봐야 알겠죠.”


이준기의 침착함에 근거가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생각하며 하민서는 어색하게 웃었다.

문득, 이준기가 고개를 숙이면서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쉿!”


멀리에서부터 분명하게 들려온다.

검날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


“주석!”

“마상욱 선배?”


풀숲에 몸을 숨기고 움직이던 두 사람은 3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쳤다.

바람 소리가 강해져서 서로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무기를 들고, 허리를 숙인 채로 그들은 대치했다.

마상욱이 먼저 말을 이었다.


“네놈이냐, 날 쏜 게?”

“무슨 얘기예요, 그게? 저기 공중에 한 30분 동안 매달려 있느라 죽을 똥 쌌구만.”

“그게 너였다고?”

“소현배 선배가, 무슨 아이템을 써서 절 매달았죠.”

“그런 아이템도 있어? 난 컵라면 나왔는데.”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말하는 마상욱을 바라보며, 주석은 잠깐 얼었다.


“네? 컵라면? 마 선배, 이 상황에 개그가 나와요? 대단하시네요.”

“농담 아냐. 그런데, 소현배가 널 공격했다고?”

“그 사람, 유명하잖아요. 설마 모르세요?”

“그 사람이... 정말 자객이라고?”


“절 죽이려고 했다니까요?”

“그거야 미션이 그렇게 나왔으니까…”

“그랬다고 아무나 막 죽여요? 아니, 그렇게 거리낌도 없이 사람을 공격해요?”

“소현배가 그랬단 말이지…”


“우리 함께 소 선배를 잡아서 왜 그랬는지 한번 물어볼까요, 마 선배?”

“뭐야, 지금 한 팀 먹자는 거야?”

“우리끼리 싸워서 피 흘리면, 남들만 좋잖아요. 저는 마 선배를 죽이고 싶지는 않아요.”

“소현배는 죽일 마음이 있고?”


“날 죽이려고 했으니까요. 정당방위잖아요.”

“그래, 그럴까, 그럼? 그런데 우린 서로를 어떻게 믿지? 네가 내 뒤통수 안 칠 거라는 걸 내가 어떻게 확신하냐고?”

“마 선배님, 제가 사람 죽일 그런 녀석으로 보여요?”

“살인자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사람도 있냐…”

“믿어주세요. 저를 소현배 선배 같은 부류로 생각하시면 섭섭합니다.”

“그런가…”


마상욱은 잠깐 생각했다.

잘은 몰라도, 구원자들의 스킬 종류는 백 가지도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슨 이상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


“주석!”

“네.”

“신뢰를 확인하기에는 모자랄지 모르지만, 이건 어때? 우리 서로의 빌드를 공개하는 거야.”

“에? 그게 가능해요?”


“아이템 링크 공유하는 거랑 마찬가지야. 그냥 상태창 연 다음에, 빌드를 찍어서 나한테 공유하면 돼.”

“아, 그래요? 그건 뭐 간단하죠.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뭐야, 그걸 못 찾아? 빨리해.”

“잠깐만요. 이거던가? 그런데, 선배.”


“왜?” 서투르게 상태창을 조작하는 주석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마상욱이 되물었다.

“아이템, 컵라면 나왔다는 거 사실이에요?”

“몇 번 말해야 믿겠냐? 링크해 줘?”

“일단 제 빌드 링크해 드린 다음에요. 하하.”


“그래, 빨리 좀 해라. 뭘 그렇게 못 찾아.”

“제가 말이죠…”


파팟!

칭!


시야가 잠깐 이상해진 것과 동시에, 마상욱은 옆구리에 통증을 느꼈다.

뭔가가 움직인 건가?

그런데 주석은?


“크헉…”


팟!


손에 든 다마스커스로 날아오는 검날을 막으려고 했지만, 너무 빠르다.

전광석화.

잔상이 남는 속도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한다고?


“끄으으…”

마상욱이 배를 붙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주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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