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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Apr 24. 2024

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56. relentless

하민서는 맵 중앙의 큰 나무를 향해 걸었다.

섬 어디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나무라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이준기를 따라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멀어지는 이준기의 뒷모습을 보고 포기했다.


‘마상욱은 어떻게 됐을까?’


아이템 뽑기에서 컵라면이 나왔다는 거짓말 때문에 마상욱과 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준기도 뽑기에서 컵라면이 나왔다고 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니, 죄책감이 들었다.


‘아차, 주석!’


한참 동안 걷고 나서야 주석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민서는 멈춰 섰다.


지금까지 살인자는 세 사람.

소현배, 주석, 그리고 이준기다.


소현배는 이준기에게 죽었다.

이준기는 같은 편이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남은 것은 주석.

따라서 주석이 경계 대상 1호다.


풀숲에 몸을 숨기고 하민서는 아이템 ‘게스 후’를 작동시켰다.


- 추적 대상을 정해주세요.


“주석.”


지도 화면을 펼치자, 주석의 현재 위치가 표시되었다.


“어? 이게 무슨 뜻이야?”


지도를 보고 당황한 하민서가 혼잣말을 했다.

자신의 위치와 목표물이 겹쳐 있었다.


“안녕하세요?”


***


“준기 오빠, 저 사람은 놔두고 가도 상관없어요?”

“풀어주자는 얘기야? 아님, 죽이자는 얘기?”

“모르겠어요, 저도.”

“마음이 복잡하지?”

"네."


멀리 떨어져서 속닥거리는 둘을 향해 김형채가 다급하게 외쳤다.

“준기 씨, 저 좀 풀어줘요. 해운대 던전에서 같은 공격대였잖아요. 기억 안 나요?”


이준기는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쉿! 형채 씨 그렇게 소리 지르는 게 과연 좋은 생각일까요?”


“그러니까 나 좀 살려 달라고요!”

김형채가 한층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준기는 무시하고 다시 문아린을 돌아보았다.


“아린아.”

“네.”

“미션이 두 개잖아. 우리는 그중에서 두 번째 미션, 즉 내가 선택한 ‘고공 침투’를 하러 간다.”


“오크 사원을 붕괴시킨다는, 그거요?”

“그래.”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끼리 할 수 있어요?”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 우선 거기로 가자.”


“그래요. 그런데, 저 사람은요?” 문아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형채를 훔쳐보며 물었다.

“복수를 하고 싶다든가, 그런 건 아니지?”

“아녜요. 제 목, 잘 붙어 있잖아요. 안 죽었음 됐죠.”


“이 상황에 농담이라니, 아린이답네. 그래 저 사람은 그냥 놔두자. 그리고 말인데...”

“네?”

“나도 살인자야. 너도 이제 알잖아. 현배 씨, 내가 죽였어.”


문아린이 이준기를 바라보았다.

“그건 나중에 얘기해요.”


***


“주, 주석…!”

눈앞에 나타난 주석을 보고 하민서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뭐 제가 귀신도 아니고, 뭘 그렇게 놀라요? 하 선배님.”

“가, 가까이 오지 마.”

하민서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아. 이것 참. 하 선배도 다마스커스예요? 그거 어디 공장에서 찍어내나? 겨우 그런 게 전리품이라고 생각하니까 하 선배 죽일 동기가 안 생기잖아요.”

“무, 무슨 소리야! 덤빌 거면 빨리 덤벼!”


주석은 무기도 꺼내지 않은 채 비아냥거렸다.

“뭐 다른 건 없어요? 뽑기 아이템은 뭐 나왔어요?”

“살인자!”


“어디 보자. 저는 뽑기 아이템이 둘 다 추적 장치가 나와서요. ‘게스 후’라고 아실는지 모르겠네요. 사람 추적하는 건데. 좋기는 해도 이게 뭐 두 개씩이나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나무 밑에서 기다리니까 알아서들 오시네요. 여기가 뭐 만남의 광장이라도 되나?”

“여, 여기서 기다렸다고?”


하민서의 물음에, 주석은 뒤쪽의 커다란 나무를 가리켰다.


“오크 사원이 저 나무 위에 있는 저거 아님 뭐겠어요? 그러니까 다들 여기로 오시겠지. 저도 미션은 해야 돼서요. 남은 인원 중에 절반을 죽여야 하니. 다섯 명 중에 절반이면, 2.5명이네요, 글쵸?”

“주, 준기 씨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그렇게 되면 2대1이야.”

“에? 이 선배도 이쪽으로 온다고요? 좋은 정보네요. 하하. 고마워요 하 선배님.”


“문아린도 같이 올 거야!”

“그럼 세 명이네요? 딱 좋네요. 두 명 죽여드리고, 한 분은 반으로 갈라드릴게요. 그러면 2.5명이네.”


“너… 너 혼자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하는 하민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주석의 웃는 입가에서 새어 나온 살인자의 ‘기’가 하민서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던 주석이 사뿐하게 지면으로 내려왔다.


“풋. 그건 두고 봐야 알겠죠, 하 선배님.”

“안 덤비면, 내가 간다!”

“그러시든가요. 누가 말렸나. 아, 그리고 한 가지. 저 이제 26레벨이에요. 두 번째 미션 깨고 렙업했거든요.”

“잘난 척 그만두고 어서 덤벼!”


“그래서 제가 말이죠. 하 선배나, 이 선배나, 문 선배, 그 누구보다도 레벨이 높다고요.”

“서론이 길군, 주석. 뺀질거리는 얼굴, 역겹다.”

“나 참, 하 선배님 변덕이 너무 심하신 거 아녜요? 아까 저 처음 보시고, 원빈이라고 하신 거, 하 선배잖아요?”

“사, 살인자!”


하민서가 위협하듯이 다마스커스를 휘둘렀다.

주석은 콧방귀를 끼며 대꾸했다.


“좀 늦긴 했는데, 이제 정식으로 제 소개를 할게요, 선배님.”

“무슨 개소리야?”

“그만 좀 우세요. 눈물로 세수하시겠네.”

“누가 울었다고 그래!”


“뭐, 하 선배는 아주 빠르게 저승으로 보내드릴게요. 안 아프게. 고맙죠?”

“내가 네놈에게 죽을 것 같아?”

“뭐, 알겠습니다. 하 선배님, 제 이름은 주석입니다.”

“시, 시끄러워.”


“길드는 브릴리언트. 길드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가입했고요.”

“더, 덤벼!”

“특기는 이겁니다.”


이 중요한 순간에, 하민서는 눈을 깜빡했다.

눈에 눈물이 너무 많이 고여서.

눈을 감고 뜬 그 잠깐 사이에, 주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나무 아래에 도착하자, 문아린이 이준기에게 물었다.


“상태창을 열고, 던전 정보로 들어왔어요. 그 다음엔요?”

“던전 정보에서 ‘미션’을 클릭하면 3-2 ‘고공 침투’ 나오잖아. 그걸 눌러.”

“아, 됐다. 여기서 ‘예’ 클릭하면 되는 거예요?”

“응. 빨리.”

“자, 그럼 클릭합니다. 어? 어어?”


눈앞에서 문아린이 사라졌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주석이 나타났다.


양팔을 들고 이준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는 다가왔다.

“말로만 듣던, 이준기 선배!”


“주석. 넌 왜 사람들을 죽이는 거지?”

이준기의 물음에, 주석은 한 손을 귀에 대고 비웃듯 말했다.

“네? 뭐라고요? 그게 미션이잖아요! 퀘스트라고요. 던전 들어왔더니 그걸 시키는데, 어떡하라고요?”


“미션은 두 개다. 혹시 못 본 거야?”

“아! 그, 뭐랄까, 오크 잡는다는, 그 식상한 퀘스트?”

“올라가자. 같이 오크 잡자구. 그럼 다른 사람 안 죽여도 돼.”

“에? 정말요? 그래서 제가 뭘 얻을 수 있나요?”


“레벨업도 하고, 아마 보물 상자도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나갈 수 있지.”

“아, 이 선배. 그건 좀 약한데요. 사람 하나 죽일 때마다 보물 상자 이상으로 템이 쏟아지거든요. 이 선배도 해보셨으니 아시잖아요?”

“살인하면, 기분 별로지 않아?”

“정말요? 이 선배는 저랑 같은 과 아녔어요? 아까 알림 메시지도 나왔잖아요! 저 말고도 사람 죽여서 미션을 깬 사람이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얼마나 흥분됐었는데요. 그게 바로, 이준기 선배!”


단검을 든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과장스러운 어조로 외치는 주석.

무표정으로 그 퍼포먼스를 쳐다보던 이준기가 말을 이었다.


“내 제안을 거부한다고 보면 되겠지? 살인 미션을 굳이 하겠다는 거잖아. 맞지?”

“딩동댕! 네, 맞아요, 선배!”

“날 죽일 자신은 있고?”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준기는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우하하! 이 선배, 자신감이 넘치네요! 레벨이 저보다 좀, 많이 낮은 것 같은데. 혹시 모르셨나?”

“와라.”

“무기, 꺼내세요. 저 그렇게 막돼먹은 놈 아닙니다.”

“그래. 좋아. 잠깐만 기다려.”

“무기가 많으신가 봐요? 오오, 기대되는데요. 선배를 죽이면 또 인벤토리 난리 나겠네.”


이준기는 인벤토리…가 아니라 상태창을 열었다.

던전 정보, 그리고 빠르게 미션 3-2를 클릭.


“안녕!”


슈슉! 하는 소리와 함께 이준기가 주석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주석은 머리에 손을 대고 입을 크게 벌려 웃기 시작했다.


“우후, 우하하하! 이준기 선배가 내빼버렸네! 이거, 어떡하지?”


주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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