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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n 17. 2024

자유의지란 존재하는가

결정론과 창발론 사이에서

Kurzgesagt에 또 재미있는 영상이 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ebSfjmQNvs


너는 NPC냐?

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달려 있지만, 자유의지가 과연 존재하느냐에 관한 이야기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정론,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창발론 사이의 대립이다.


자, 이제 양쪽을 살펴보자.


우선,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입장, 즉 결정론을 보자.

결정론에 대한 반박으로 제일 손쉬운 것이 양자역학을 들먹이는 것이다.


뉴턴식 결정론은 이미 양자역학에 의해 부정되었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과연 결정론 자체를 부정했을까?

결정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유의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적 무작위성이 결정한다.

무작위성이 개입된 결정론이 과연 결정론이냐 하는 질문은 차치하고, 일단 자유의지는 부정된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또다른 주장은 우리가 아직 최종적인 물리학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면 가능하다. (이건 위 영상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이다.)

카를로 로벨리가 <내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말하듯, 양자역학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고, 이중 상당수는 양자역학을 깔끔하게 설명하는 방법이 언젠가 발견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근본적으로 뉴턴 이전에 하늘을 보며 신비해하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라는 거다.


사진: Unsplash의Branimir Balogović


다시 영상으로 돌아가자.

결정론자 반대편에는 창발론자들이 있다.

emergence라는 단어만 봐도 무슨 얘기를 할지 뻔한데, 문제는 시작부터 이 논리에 오류가 있다.


- 모든 것을 입자로 설명할 수 없다.


대단히 오해 소지가 높은 문장을 그냥 은근슬쩍 말하고 지나간다. (누가 모든 것을 입자로 설명한다고 했나?)

이는 단지 '입자'라는 단어로 장난을 치는 것인데,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입자'로 설명할 수는, 당연히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리학은 그런 학문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를 근본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물리학이다.

그게 안 된다면, 애초에 물리학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인류는 아직도 궁극의 물리학, 즉 TOE(모든것의 이론)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메타적 질문을 거듭했을 때, 그 원류에 있는 것이 입자인지 에너지인지 초끈인지는 그 다음 이야기다.


창발은 이해하기 쉬운 현상이다.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은 사례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원소의 단순합보다 전체가 더 커지는 현상, 즉 플러스 알파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과연 그 플러스 알파가 뭔가 다른 것, 내지 새로운 것일까?

그 플러스 알파는 단지 우리의 무지가 만들어낸 환상일 수 있다.


되돌아보면, 인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서 설명해 오고는 했다.

번개가 제우스의 분노라든가, 연소 현상이 플로지스톤에 의한 것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따라서 창발이란 개념도 언젠가는 제대로 된 설명이 '등장(emerge)'하면 사라질 것이다.


영상에서는 창발론자들의 또다른 반박으로 자유의지의 부정이 카테고리 오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주장이야말로 카테고리 오류다.

이런 말장난에까지 반박할 필요를 못 느낀다.


사진: Unsplash의Fuu J


나는 자유의지라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서, 우리 삶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걸 2,500년도 전에 이미 붓다가 깨달았다.


Kurzgesagt 영상의 결론은 모르겠다, 다. (Kurzgesagt가 원래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느끼니 이 아니 좋을쏘냐, 그대로 즐겨보자는 쪽이다.

결론은 다르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붓다와 같다.


그냥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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