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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Sep 30. 2024

왜 굴다리를 버렸을까

[감상평] 이학, <격기3반>

데피니션 그 잡채


<격기3반>은 내 삶을 통틀어 내가 가장 아꼈던 만화 중 하나다.

이 작품은 현재 연중 상태인데,

그 연중이 발생하기 전 약 1주일 동안 매일 "내일 업뎃된다"라는 공지가 떴다.


작가 이학의 훌륭한 면모 중 하나는, 돈이나 세간의 평가를 이유로 자신의 작품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을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만화에 열광하는 수많은 팬이 바로 이 점 때문에,

외부 압력에 굴해서 스토리나 캐릭터를 비틀지 않는 그의 고집 내지 장인 정신 때문에 

<격기3반>에 열광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연중 직전에 급하게 마무리된 <피의 사회> 최종화에 대해 대단히 실망했다.

누가 봐도 급조된 결말이었다.


이학의 페르소나(로 추정되는 캐릭터)


이전에 여러 차례 뻘글을 썼듯이,

나는 이 작품의 메인이 굴다리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같은 이유로 굴다리 캐릭터들이 작품의 중심에 있다고 믿고 싶다.


굴다리는 주인공 주지태가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던전>이기도 하지만,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수많은 '이유'의 존재 가능성을 알려주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이기도 하다.


굴다리는 세상에서 버려진 하나의 작은 세상이다.

굴다리 사람들은 세상과 유리된 상태로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바깥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스스로 교화하여야 한다고 믿는 이현걸,

굴다리 땅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토대로 굴다리를 재건하려는 적두,

세상과 연결을 끊고 기존에 가장 유효했던 방식으로 되돌아 가려는 강두,

방식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굴다리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재평가가 시급한, 적두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리인 채 살아가는 것"이 현걸 덕분이라 말하는 동근혁,

둘만의 세계에서 존재 의의를 찾으려는 귀둥-초롱 커플,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지만, 굴다리 안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성미, 임형철, 김다혜,

(물론 이들의 행태는 히키코모리에 가깝다)

신의 수수께기에 도전하는 오진,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려 했던 조수지,

굴다리의 현실에서도 인간성을 찾으려 했던 (그래서 이현걸에게 큰 영향을 준) 김잔디,

모두 나름대로 살아갈 이유에 매달린다.


이들의 모습은, 마찬가지로 살아갈 이유에 목 매는 주지태에게 대단히 중요한 레퍼런스가 된다.



그런데 '피의 사회' 마지막화는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굴다리 던전을 급하게 닫아버리고 만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의 방향성을 양보하지 않기 위해,

돈, 편집자는 물론 독자들과도 싸웠던 작가의 과거 모습과 전혀 다르다.


수시로 연중되는 이 작품을 복습하고 또 복습하던 내가,

'피의 사회' 마지막회를 본 이후로 발길을 끊게 된 것은 바로 이 실망감 때문이다.

(동근혁과 엔젤기훈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었는데, 연중 이후 방치하고 있다.)


굴다리를 버리고 학교로 돌아간 주지태의 이야기가 과연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을까?


카리스마 그 자체


사족.


굴다리를 버리더라도, 작품에는 매력 넘치는 인물들이 많다.

차소월, 최영준, 양기훈, 이자경, 그리고 주지태.


그러나 동근혁, 이현걸, 강두, (분명히 살아 있을) 오진, 김귀둥, 이창, 고운성, 황주란이 빠진 격기3반을 왜 봐야 하는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연재 재개와 함께 쿠키 싸들고 달려가겠지만.)


차소월만 보고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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