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오래 전에 나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TV 때문이다. 이제는 인터넷과 휴대폰, SNS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결국 "값싼 엔터테인먼트"가 답이다. 물론 맥도날드도 중요하다. 먹는 문제와 시간을 죽이는 문제, 이 두 가지가 해결되면 사회는 유지된다. 이런 류의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유의 단편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 사유에 사유를 이어붙여 연장해 갈때, 다른 사람들이 이미 내뱉은 말들에 이어붙이면 일이 조금 더 수월해진다. 비유하자면, 남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모듈을 내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라이브러리나 가져다 붙이면 코딩에 해설을 넣어야 한다. 사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후설의 에포케나 하이데거의 In-der-Welt-Sein을 가져다 쓰면 굳이 해설이 필요없겠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덜 유명한 학자들의 개념을 가져다 쓰는 경우라면 주석을 달아야 한다. 혼자 보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면, 그 정도는 하는 것이 독자가 응당 받아야 하는 서비스다.
챗GPT에게 묻고 싶다. 6살 짜리도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이 책을 좀 번역해줘, 라고 말이다.
사실 이렇게 한줄 평을 쓰고 싶다. 입진보라는 게 바로 이거다.
<나당 탐정 사무소>
이 소설에 아주 신선한 리뷰 댓글이 있었다. 나도 배우고 싶은 댓글 스킬이다.
- 경찰이 움직도르래도 모를 정도로 멍청하다는 설정. 신선하네요.
사족으로,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연합 중 하나가 나당 연합군인데, 굳이 이런 작명을 왜 했을까? 그런데 주요 인물 중 하나의 이름이 이세민인 걸 보면, 아무래도 당나라 찐팬인가 보다. 사실, 중국사에서 당나라는 아주 괜찮은 나라였기는 하다.
로랑스 드빌레르, <모든 삶은 흐른다>
바다와 관련된 이런저런 소재를 가지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관한 질문에 대답을 해보는 에세이.
해적을 조심하자, 상어처럼 살아보자, 크라켄에 놀라지 말자, 이런 얘기는 과연 신선하기는 하다.
마일리스 드 케랑갈,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뇌사자 장기 이식을 마치 르포처럼 다룬 소설.
조사를 꽤 꼼꼼히 한 점은 훌륭하나, 왜 이걸 굳이 소설로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
르포 대신 소설로 써서 달성한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신뢰성을 떨어뜨린 느낌이다.
무엇보다, 소설적 재미가 아예 없다.
박현숙, <6만 시간>
박현숙 소설 중에 제일 낫다. 특히, 짱구 형의 삶에 대한 태도가 정말 존경스럽다.
<곽재식의 역설 사전>
역설이라고는 해도, 논리학 이야기는 아니고 주로 경제학 쪽에 등장하는 역설처럼 보이는 주장들을 해설한 책이다. 위트가 넘치는 글솜씨가 일품이다.
특히 애빌린의 역설이 참신했는데,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결정이 컨센서스(투표 없음)로 이루어진다는 이 역설을 확장하여, 부장님의 짜장면이나 히틀러의 선동까지 연결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대개의 챕터가 이런 식으로 논의를 확장해 나가면서 전개되는 점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