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남종영, <동물권력>
침팬지 루시는 인간에게 입양되어 인간처럼 자랐다.
인간의 음식을 먹고, 인간의 집에서 잤으며, 발정기에는 플레이보이에 나오는 인간 수컷 사진에 몸을 문질러댔다고 한다.
루시는 자라면서 동물의 본성을 드러냈고,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양부모는 동물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재니스 카터를 고용해 루시의 야생 귀환을 맡겼다.
카터는 루시, 그리고 다른 침팬지 여러 마리와 함께 무인도에서 지냈다.
루시는 열매도 따지 못하고, 나무도 타지 못했으며, 다른 침팬지와 어울리는 것은 더욱 못했다.
그래서 카터는 원래 계약 기간인 6개월을 넘겨 무려 6년 동안 루시와, 다른 침팬지들과 섬에서 생활했다.
어느날, 대시라는 수컷 침팬지가 카터를 두들겨 패고 끌고 다녔다.
무리의 우두머리인 카터를 그 자리에서 축출하고, 자신이 알파 메일이 되기 위해서였다.
카터는 이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달 후, 카터는 인간 음식과 장난감 선물을 들고 섬을 다시 찾아 루시와 포옹을 나눴다.
그리고 루시는 얼마 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루시의 기구한 삶은 다큐로 제작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DEy2JyUwbE
23년을 살다 간 루시는 17년 동안 인간으로 살았다.
플레이보이의 사례에서 보듯, 루시는 자신을 인간이라 생각했다.
갑자기 야생의 섬에서 열매를 따먹으며 살아야 한다는 과제를, 당황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카터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침팬지를 기르는 양육자라는 우월한 지위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야생의 섬에서 함께 살아가는 대등한 존재로서 말이다.
이것이 동물권, 즉 고통을 느끼는 동물이라는 존재에게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권리에 대한,
가장 올바른 대답일 것이다.
카터는 섬에서 지낼 때 철사로 만들어진 케이지 안에서 잤다.
자는 동안 안전 확보를 위해서였다.
침팬지들의 섬이었던 그곳에서는, 인간 카터가 철장 안에서 보호받는 동물이었다.
동물권을 다루는 인간이 동물을 대할 때, 어디까지 평등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우화 같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서사는 아주 예외적인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