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크리스마스는 인사동을 걸었다.
크리스마스가 딱히 특별할 것은 없지만,
연말 분위기는 크리스마스라는 날의 존재가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도 얼어붙을 한겨울에
가장 따뜻한 느낌의 휴일을 만든 것은 누구 아이디어였는지 몰라도 참 대단하다.
종각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시청역에서 내렸다.
내비에서 안내하는 길이 이상해서 살펴보니, 실수로 한 역 먼저 내려버린 것이다.
이런 실수는 처음 한 것 같다.
기차도 연착 안 하고, 약속 시간에 아주 여유 있게 도착해서 좋았는데,
갑자기 뛰게 되었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을 지나치는 김에 사진 한 장 찍었다.
충무공 동상 옆에 오겜 영희 뭐냐.
무섭다.
길치인 내가 그나마 잘 아는 광화문, 종로 거리라 다행이었다.
잘 모르는 곳이었으면 약속 시간에 늦을 뻔했다.
4년 연속 미슐랭 별을 받았다는 식당은 과연 맛있었지만,
또 오게 될지는 모르겠다.
오랜만에 걸어본 인사동은 과연 많이 바뀌어 있었지만,
훨씬 더 심하게 바뀐 서울의 다른 곳들,
예컨대 홍대앞, 성수동, 건대입구, 신림사거리, 녹두거리, 합정동, 명동, 심지어 바로 옆 종로와 비교해봐도
인사동에는 그래도 예전 느낌이 조금은 더 남아 있는 것 같다.
특히, 처음 모습에서 별로 바뀐 것이 없는 쌈지길이 정겹게 느껴졌다.
(처음 생겼을 당시에는 가장 새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용수염 간식을 파는 가게도 아직 그대로 있었다.
<오, 그대 왔는가>는 사라진 것 같지만,
전통 찻집은 여전히 여러 개 있었고,
예전에 있던 찻집들에 비해 창문도 큼직해서 밝은 분위기인 것도 나쁘지 않았다.
써야 할 쿠폰이 많아 커피는 스벅에서 마셨지만,
자동화 기기가 여러 대 설치된 GS25에서 로봇 팔 커피를 마셔보았다.
세종시 로봇 카페는 로봇팔이 자판기 버튼 눌러주고, 컵 들어 옮겨주는 정도였지만,
이곳 로봇팔은 무려 라테 아트를 그려준다고 한다.
게다가 4가지 라테 아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제일 복잡해 보이는 '날개를 편 백조'를 선택했으나,
결과는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영 꽝이다.
그런데 커피 맛은 준수했다.
로봇 카페, 무인 카페에서 마셔본 커피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고,
M사나 C사 같은 저가 프랜차이즈 커피보다도 맛있다.
수다 떠느라 사진을 별로 못 찍었는데,
광주송정역에 도착해 보니 시청보다 더 큰 크리스마스 등불이 켜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