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는데, 헛수고... 너의 엉뚱한 발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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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아프다. 장염인듯하다. 평소 생기발랄한 딸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훅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위태위태한 모습이 안쓰럽다. 밥도 새 모이만큼만 겨우 먹고 있다. 딸 친구 생일선물 산다고 돌아다닐 때 몇 번 토했다고 해서 국물이라도 먹었으면 싶어 저녁에 북엇국을 끓였지만 퇴자 맞았다. 그나마 그날 아침 내가 먹고 싶어 끓여놓은 미역국 국물을 조금 들이켜서 다행이었다. 그리곤 저녁으로 배가 고팠던지 토스트를 세장이나 먹었다. 어찌나 다행이던지... 둘째 날은 토스트, 밥과 김자반, 요거트를 조금씩 나눠 먹었다. 조금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포르투갈식 대구살 토마토 진밥을 해줬는데 거부했다. 셋째 날은 딸이 '새벽 6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배고프다.'며 나를 깨웠다. 비몽사몽간에 토스트와 물을 챙겨주곤 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딸에게 가보니 넋이 나간채로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lightheaded'하다고 울먹이는데, 어떻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토스트는 먹지 않았다. 계속 배고프지 않다는 딸을 달래 늦은 아침으로 오트밀 조금과 간 쇠고기 볶음을 섞어주었다. 점심은 미역국 국물에 밥을 말아줬다. 저녁으로 브로콜리 감자 치즈 수프를 해줄 심산인데, 이것도 안 먹겠다고 하면 어쩌지? 다시 토스트나 밥과 김자반으로 도돌이표를 찍으려나?
틈틈이 열은 오르는데 토하는 것 때문에 위에 부담될까 봐 이브프로펜을 먹이는 게 께름칙했다.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제는 좌약이어서 위에 부담되지 않아 안심이었지만, 좌약을 넣을 때 느낌을 매우 싫어했다. 엄마보단 아빠가 넣는 게 덜 불편하다는데 무슨 차이일까? 첫째 날에서 둘째 날로 넘어가는 밤에는 다행히 열은 오르지 않았지만, 목마르다고 물 달라고 나를 두 번 정도 깨웠다. 잠결에도 예의 차리느라 길게 사정설명하는 딸에게 그냥 간단하게 물이라고 하라 했더니, 딸이 내게 무례하기 싫다고 했다. 사실, 내가 잠결이라 딸의 긴 설명을 알아듣기 힘들었다. 둘째 날에서 셋째 날로 넘어가는 날 밤엔 내 침대로 넘어온 딸의 몸이 뜨거워 잠이 깼다. 열이 39도까지 치솟아 좌약을 넣어주었다. 딸이 내 침대를 차지하곤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거실에 있는 소파로 옮겨 잠을 청했다. 간신히 잠이 들었다 싶었는데, 딸이 새벽 6시 이전인데도 배고프다며 나를 깨웠다. 혹시나 싶어 체온을 쟀더니 38도라 이브프로펜을 먹이고 토스트를 주고 다시 잠을 청했다. 싸한 느낌에 딸에게 가보니 'lightheaded'하다는데 그냥 달래주는 거 외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제발 오늘밤은 무탈하길...
둘째 날 낮에 컴퓨터로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 딸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왜 집안에서 낮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지를 묻자 딸은 눈이 피로해서 그런다며 울먹였다. 눈이 피로하면 컴퓨터를 보지 말고 휴식을 취해야지 왜 선글라스까지 끼며 억지로 동영상을 챙겨보는지 딸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로 딸을 쉬게 했고, 딸은 금세 잠이 들었다. 문득 예전 동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료가 소아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는 딸에게 아프면 알려달라고 진통제를 요청해 주겠다며 딸이 아픈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동료의 딸은 부모의 당부를 자기 맘대로 해석해, 아프다고 말하면 부모가 슬퍼할 거라 여겨, 부모가 슬프지 않게 고통을 최대한 참았다고 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과 엉뚱함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볼 같다. 그 덕에 즐겁고 행복할 때도 많지만, 때론 아이들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주변의 어른들이, 부모가 아이들을 살뜰히 살피고 보살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딸아, 생기발랄한 네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도록 어서 낮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