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이니? 성질 낼 줄 아는구나! 그래도 웬만하면 싸우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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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취향이 확고해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싸움에 휘말리는 일이 드물다. 아들 반 남자아이들끼리 종종 이리저리 부딪힐 때도 아들은 자주 예외였다. 그런 아들이 친구들과 싸웠다는 메일을 지난주에 받았다.
네 명의 남자아이가 학교 마당에 눈으로 성을 쌓고 있었다. 때마침 근처를 지나던 두 명의 남자아이가 '공격'을 외치며 쌓고 있던 성을 향해 눈덩이를 던지며 눈싸움을 걸었다. 지나가던 또 다른 아이까지 불러들여 성을 점령하겠다 위협하니 평화롭게 성을 쌓던 아이들이 화가 나 과격하게 대응했다. 성을 쌓던 아이 한 명이 공격하던 아이 한 명의 멱살을 잡았다. 또 다른 아이는 공격하던 아이 하나를 발로 걷어차려 했다. 다행히 다친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이 던진 눈덩이는 아무도 아무것도 맞추지 못했다. 발차기는 헛발짓이 되었다.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진 않았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무탈하다는 결과보단 아이들의 행동에 주목했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뒤 싸움에 관여한 아이들과 싸움을 되짚어 보고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일부 아이들이 잘못한 게 전혀 없다며 반항했다. 결국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다른 날 다시 한번 사건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선생님은 부모가 아이의 싸움을 인지하고 있는지를 물으며, 가정에서 아이들과 싸움에 대해 대화를 나눠달라 요청했다. 여기까진 모든 상황이 익명으로 묘사되었다.
우리만 볼 수 있는 내용이라고 시작되는 마지막 문단에는 아들의 행동이 특정되어 있었다. 아들이 멱살을 잡은 아이였다. 멱살을 잡힌 아이는 목이 졸리는 느낌이었다 했지만,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들의 멱살은 그리 과하지 않았다는 결론이었다. 사건을 되짚어 보는 시간에 아들은 전체적인 상황을 잘 설명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적절한 사과를 했다.
폭력에 민감하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친구와 놀다 보면 투닥거릴 수도 있지 싶었다. 오히려 학교에서 문제가 되었던 일을 아들이 우리에게 언급하지 않은 게 걸렸다. 옆지기도 나와 같은 의견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충분한 조치를 취했고 아들도 수긍했으니 괜찮은데, 아들이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점을 문제로 여겼다.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아들에게 싸움에 가담한 친구들의 신상을 물었다. 전부 아들이 생일파티에 초대했던 아이들이었다. 심각한 싸움보다는 친구끼리 놀다가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충돌했다고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들에게 멱살을 잡은 마음은 공감되고 때때로 친구들과 다툴 수 있지만, 폭력은 최대한 피하라고 했다. 앞으론 이런 일은 담임선생님의 메일이 아닌 아들에게 직접 듣고 싶다고 당부했다. 누구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을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손 놓고 당하진 않겠다 싶어 다행이다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은 아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핀란드 문화는 학교에서 생긴 일을 알리는 메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충돌을 익명으로 서술한 것이 그 예인데, 덕분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관련된 모든 아이들의 부모에게 인물을 특정하지 않은 전반적인 상황설명에 각자에 해당하는 내용을 덧붙여 개개인에 맞는 메일을 따로 보내는 수고를 했다.
그나저나 아들이 혼나느라 모국어수업인 한국어수업에 지각했다. 담임선생님이 아들이 한국어수업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해 일어난 일일 것이다. 아들, 딸 모두 한국어수업을 학교수업의 일부라기 보단 과외활동으로 여기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아들에게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수업을 우선으로 하는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