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Jan 04. 2024

떡국 대신 수제비

떡국 아니고 수제비야! 기억해 둬! 수제비!

배경 이미지 출처: Pixabay



새해가 지나고 벌써 1월 4일이다. 핀란드 사니까라는 핑계로 굳이 한국의 먹거리를 제때 챙겨 먹진 않는다. 그래도 왠지 생일즈음엔 미역국을 먹어야 할 것 같고, 새해즈음엔 떡국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다진 소고기로 우려낸 육수도 있고, 2024년이 밝았으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국을 끓여줘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런데 떡국떡이 없었다. 


영하 15도 아래로만 왔다 갔다 하는 기온에 굳이 떡국떡을 사겠다고 아시안마켓까지 트램을 타고 다녀오고 싶진 않았다. 여름엔 바람 쐴 겸 자전거를 타고 휘리릭 다녀오기도 하는 곳인데, 영하의 날씨가 되자 심리적 거리감이 너무 커졌다. 마치 산 넘고 바다 건너서 다녀와야 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육수는 있는데 그럼 무얼 해줄까? 그러다 문득 수제비가 떠올랐다. 아이들이 수제비도 좋아하는데 한동안 해준 적이 없었다. 육수는 있으니 반죽을 해놓으면 다음날 점심이나 저녁으로 해줄 수 있겠다 싶었다. 어젯밤 자기 전에 얼렁뚱땅 반죽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놨다.


점심때가 되어 좀 전의 딸과의 투닥거림을 풀고자 딸을 불렀다. 수제비 반죽을 넘겨주자 스퀴시 같다며 신나게 주물럭거린다. 비닐봉지가 터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곤 나는 육수의 기름을 걷어냈다. 그리고 반죽을 조금씩 떼서 얇게 늘린 뒤 육수가 담긴 냄비에 넣었다. 딸도 옆에서 따라 한다고는 하는데 밀가루 반죽 가지고 노는 수준이었다.


반죽을 주물럭거리는 게 신났는지 딸이 방방 뛰다가 열어놓은 찬장 문에 머리를 부딪혔다. 상당히 아파 보였는데 수제비 반죽을 떼어놓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서 그를 불러 살펴달라 했다. 그의 위로가 통한건지, 반죽을 주무르는 즐거움이 아픔보다 컸는지, 딸은 금세 다시 반죽을 만지며 통통 뛰었다.


동참하라고 권하지 않았다고 서운해할까 봐 아들도 불렀다.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들이 수제비 반죽으로 미니피자를 만들겠다는 딸의 조잘거림에 이끌려왔다. 아들은 반죽을 맛보는 것에 더 관심을 보였다. 반죽 맛을 본 아들이 반죽을 더 달라고 해서 조금 남은 마지막 반죽을 아들에게 넘기고 수제비 냄비의 화력을 올렸다.


수제비를 대접에 담고 계란지단과 다진 소고기 볶음, 김자반을 올렸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들어준 수제비를 맛있게 먹었다. 아들에게 지금 먹는 음식이 머냐고 물었더니 한치의 망설임 없이 떡국이라고 대답했다. 떡국을 끓여주려다 대신 수제비를 끓여준 건데... 아들에겐 떡국이나 수제비나 같아 보였나 보다.


얘들아, 오늘 먹은 건 수제비야.




매거진의 이전글 딸이 아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