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3.모든 것이 쉬울 수는 없다.
'퇴사 후 세계여행'이 아닌 '세계여행 후 입사'를 얼떨결에 하게 된 직장인의
회사에서 일어나는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쓰는 글입니다....!!!
10일 간의 긴 휴식이 있었다.
나름대로 정말 전략적으로(?) 준비를 잘 마치고
드디어 최종 연봉 협상 및 계약을 하러 회사에 다시갔다.
오랜만에 오는 회사였는데
아무래도 계약서를 쓰려고 하다보니
맨날 평소에 출근했을 때와는 다르게 긴장이 많이 되더라
"음... 저기요...."
사장님의 불안하면서도 조곤했던 첫 말투를 들으면서
나도 뭔가 틀어진거 같은 느낌이 들며 스스로 불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도 나름대로 채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어요.
변호사와 회계사를 만나 관련 세법들을 검토하고 중소기업 청년고용지원 금액등을 확인해 보았는데,
스타트업 일자리에서 연봉 4000이상의 양질의 일자리 대상으로 지원되는 정책은 업다시피 하더라구요."
"그리고 정책도 정책이겠지만
이 바닥에서 연봉을 이만큼이나 주면서 고용을 하는 경우는 거의 전례가 없더라구요.."
"제가 생각이 미처 짧았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애초에 말씀드렸던 가이드라인의 연봉보다 조금 낮은 금액에 계약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전혀 예상 못한 상황이었다.
그간 10일 동안 열심히 나름대로 준비했던 것이 한 순간에 다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음..... 나름대로 이것 저것 많이 알아보고, 협상론에 심리학 관련 서적까지 읽어가면서
회사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준비한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고 말해보며
내가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내려고 나름대로의 노력을 많이 했는데
사장님이 여행을 다녀온 10일 사이에 미안하다고 하면서 제시했던 연봉의 금액은
10일이 지난 지금, 기존 연봉으로 제시했던 금액에 비해 1000만원이 내려간 금액이었다.
연봉을 자세하게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1000만원 감봉'은 나에겐 엄청나게 큰 액수였다.
'....................'
준비해 온 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다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와 사장님은 테이블을 마주하고 한참 동안을 정적인 상태로 있었다.
"저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그러세요 라는 사장님의 대답을 듣고, 한 10여분 정도를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정말 머릿속으로 수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한 조건이면 '그냥 미련없이, 회사에 얽매이지 말자' 생각이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회사에 대한 미련을 좀 비우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내 의견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오랜만에 뵙고 이야기하는데, 연봉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 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선적으로 저도 이렇게 계약을 하는 것은 처음이고,
사장님 또한 처음이시기에 충분히 많은 검토를 거치지 못한채 임시 방편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갑자기 연봉이 기존에 비해서 체감상 너무나도 많이 낮아진 금액이라 저도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물론 이 낮아진 금액도 결코 낮은 연봉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압니다.
그리고 스타트업 업계에서 이런 연봉을 제시하는 회사가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알구요.
특히 회계사나 변호사같은 이 바닥을 훤히 아시는 전문가들이 보는게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훨씬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이죠,
"제 입장에서는 이렇게 연봉이 낮아질 경우, 대기업과 이 회사의 차이점이 모호해집니다.
무엇보다도 성과나 급여체계에 대해서 아직 기준이 잘 잡아지지 않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입장에서
여기에서의 기본급은 제가 그나마 믿고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안전적인 버팀목이자 일종의 보험인데
이 기본급이 대기업과 비슷하거나 살짝 높은 수준이라면, 저는 대기업을 갈 것 같습니다."
"대기업은 그래도 연차에 따른 연봉과 급여가 안정적이고,
성과급이나 체계도 분명한 기준에 따라 지급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컨설팅펌과 각종 금융기관 및 벤처,
수많은 스타트업 자문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누구보다도 이 바닥을 잘 아시는 사장님께서
애초에 제시했던 금액이 그냥 말장난으로 제시했던 금액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설령 그냥 제시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름대로의 이 가격이면 합리적인 금액이라 판단했을 거기에
그러한 가격대를 제시했을 거고, 저도 생각을 해보겠다는 기준은 그러한 금액과 기준에 맞춰서 생각했기에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계약을 진행해 보겠다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금액을 떠나서, 무엇보다도 사람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미래가 불안정안 회사임에도 사장과 직원이 신뢰를 기반으로 일을 해야하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특히 여기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일을 해야하는 피고용자 입장에서 이렇게 계약을 시작하는 가장 처음 과정부터 이렇게 기존과 다른 액수를 제시하면서 계약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면 제가 과연 이 회사를 쭉 믿고 여기에서 일을 진지하게 시작해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사장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봤을 때, 1000만원 이라는 금액이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에 비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회사에 좋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초기의 1000만원 차이가 좀 부담스러우시다면 안 뽑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고용되어 일하는 저의 입장에서 사장님 같으신 분이 이렇게 제안을 하신다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 번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애초에, 정말 회사를 성장하고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 사람을 구하고 싶으셨던거지 연봉을 주고 일시키는 봉급쟁이를 구하려고 뽑으시는게 아니셨잖아요."
...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했다.
여기 회사의 재무상태나 매출실적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정작 직원이 필요한 것은 사장님이지 내가 아니었다.
사장님은 회사를 더욱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직원이 분명 필요한 상황이었고
나도 이런 회사에 들어가면 좋은 연봉조건에, 좋은 복지까지 얻으며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장님께서 정말 본격적으로 알아보고 전문가들한테 조언도 들어보면서
진지하게 고려하고 정말 힘들게 말씀해주신 말씀이긴 했지만 처음부터 계약이 이렇게 변경된다는 것은
불안정한 스타트업을 처음 회사로 시작하는 나에게는 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계속 이 회사를 믿고 내가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심이 들었다.
결국, 분명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에 연봉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으면
미련가지지 말고, 사장님 사업 잘되라고 격려나 해 주려고 나오려고 했다.
그리고 사장님이 한참의 고민을 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래요, 제가 미처 생각이 짧았던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잘 못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여기서 같이 회사를 성장시켜나갈 팀원을 구하는데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점에 대해선 제가 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이미 신뢰가 많이 깎인 것 같지만, 그동안 혼자서 개인으로 사업을 운영해서 아직 이렇게 고용을 해서 같이 일한다는 개념이 없어서 저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같이 운영을 하는 팀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네요."
"연봉은 원래 기존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하시고, 다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을 어떨까요....? 괜찮으신가요?"
........?!!!!
내 소신껏 말하고 회사를 나오려 했는데, 소신있게 말하니 연봉이 바로 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나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돈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정말 이런 부분을 미처 생각 못하셨던 것 같았다.
원래 제시된 연봉을 제안받으니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내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심리학과 협상론관련 책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했기에
(이것은 나중에 언급하도록 하겠다. 협상론과 심리학은 면접에 있어서 정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사장님이 제시한 연봉도 어쩌면 하나의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돈을 내렸다가 올리면서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일종의 장치일수도 있겠지만은, 그래도 나에겐 이제 나쁘지 않은 조건이 되었다.
그렇게 그날부로 계약서에 싸인을 했고,
9월 10일부터 나는 이 회사에서 정식적으로 계약되어 일하는 직원이 되었다.
자세한 연봉금액은 공개할 수는 없지만, 사회초년생으로서
대기업에 일하는 친구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것,
어쩌면 대학교 4년을 마치고, 취준하는 대신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내내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생각이었다.
선진국인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직장인' 친구들을 대상으로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선진국 친구들의 직장이나 직업관,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은 무엇을 중요시 하는지, 내 삶에서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하며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우리보다 열악한 남미여행을 하면서도
다들 위험하다고 안하는 카우치서핑을 하고, 현지인들 집에 자면서
스페인어라 말이 안통할 때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면서도 현지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이런 환경에서도, 행복하게 삶을 사는 친구들을 보며
과연 많이 버는 것이 행복일까,
'헬조선'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말 수많은 생각과 그 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있었던 일들이
하나의 영화장면처럼,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하는 마인드로
정해진 기준이나 틀에 맞춘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직무에 관련하여
무턱대고 수 많은 대기업 인사팀 쪽으로 직접적인 메일들을 보내면서 했었던 말들
"저는 회사일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람이고, 제가 과연 이러한 직무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스스로 이러이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직무방향이 저의 성격과 잘 맞는지 궁금해요."
"애초에 전공을 살려서 대기업을 입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력서에 쓰여있는 졸업 전공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고, 그게 더 이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를 찾는데 적합한 것 같아서 이렇게 메일을 보내봅니다."
"선배님들을 좀 만나보고 싶습니다. 회사에 취업시켜달라는게 아니라 정말 이쪽 직무에 관심이 있어서 직무 관련하여 여러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싶어요."
참으로도 무식하고 용감한 시도였지만,
덕분에 해당학교 후배도 아니고, 같은과 후배도 아님에도
현업에서 그 쪽 직무에서 일하시는 다양한 선배님들을 만나
내가 하고싶었지만 모르던 직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회사 홈페이지나 각종 취업관련 사이트에는 나와있지 않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만 알 수 있는 알짜배기 회사생활 관련 정보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뭐 결론은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지만.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는거, 좀 더 재밌게 살다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는 있을 거 같아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취직을 하면 다들 기분이 좋다고들 하는데
다들 자랑할만한 대기업이 아니어서 그런가, 썩 그렇게 기분이 막 좋지만은 않았다.
많은 연봉을 받을 수록, 내가 그만큼 책임지고 해야할 일이 있는거고
어쨌든 돈을 받고 일하는 직장인으로서 월급루팡이 아닌,회사에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해야하는 것이기에
회사가 성장하고 싶은 방향에 맞게 열심히 일하면서 나도 같이 성장하며 일하는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그래도 직장은 구해져서 다행이다.
다음부터는 간단한 회사에 대한 이야기와
본격적인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쓸 예정이다.
요즘 일이 많고 사람들 만나는 일이 잦아서
다음 편은 언제 작성할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쓰도록 해야겠다.
- 취준생이 끝나기 까지의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