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독일 레퀴엠, 맘껏 슬퍼하되 두려워하지 말자

설상가상의 불행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위로

by 노마드뮤지션



인간은 본래 적응의 동물이 맞는가 보다. 이 어지러운 시국도 시간이 며칠이고 지나가니 이제는 평정심이 되찾아지는 걸 보니 말이다. 이 어지러운 시국을 대하는 우리의 스탠스는 이제는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다. 사람이 밀집되어 있는 곳(특히 대형 종교시설)을 피하고 마스크는 꼭 착용하며, 개인 위생에 좀더 신경쓰면 코로나에 감염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리고 의사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무시무시하게만 보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사실은 일반 감기와 다를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고로 평소에 감기를 조심하는 정도의 경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시국에 편승해서 공포분위기를 확대재생산하는 언론매체들이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언론매체들의 행태는 분명 오버스러운 면이 있다. 적당한 경각심이야 필요하지만, 공포감을 이용해서 속된 말로 한몫 떙기려고 눈알을 굴리는 소리가 대놓고 들리는 이 분위기는 좀 석연찮은 감이 없잖아 있어보인다.

https://youtu.be/tx5Kz1mCOmI

브람스 : 독일 레퀴엠 op.45

한나 모리슨, 소프라노

마이클 나지, 바리톤

빈 악우협회 합창단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지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나는 이 시국 가운데 연락이 오는 지인들에게 꼭 이렇게 말하곤 한다. “코로나를 조심하되,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자”. 그리고 오늘 언급할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이러한 스탠스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코로나 바이러스에 단순 대입은 힘들겠지만). 낭만주의 합창 음악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독일 레퀴엠은 브람스의 개인적인 고난과 번뇌에서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1856년, 브람스는 스승 슈만의 죽음을 목도한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남편을 보낸 클라라의 상심에 가득 찬 표정이 사진처럼 눈으로 들어왔다. 브람스는 이미 몇 년에 걸쳐 슈만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았기에 담담한 자세로 클라라를 위로할 수 있었지만, 말이 스승이지 가족과도 같았던 슈만의 죽음과 옆을 지키던 클라라의 깊은 상실감을 브람스는 자신의 일과 같이 깊이 가슴속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브람스는 대놓고 슬퍼하기보단 스스로를 뒤에서 지켜보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한동안 성경책을 끼고 살며 “죽음”이란 명제애 대한 상념들을 상고했다. 이 과정에서 브람스는 이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모테트 몇 곡을 쓰는가 하면, 케루비니의 레퀴엠을 면밀히 연구하면서 본인이 마음 속에 꾹꾹 눌러담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명제로 대규모의 곡을 쓸 결심을 세우고 곧 작업에 착수해서, 슈만이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1861년 4개의 악장을 완성했다. 그런데 네 악장을 완성 후 이 대규모 곡의 작업은 갑작스레 소강상태에 접어드는데, 애시당초 고향 함부르크에 정착하고자 했던 브람스는 그 계획이 틀어지자 과감하게 음악의 도시 빈으로 갔다. 우중충한 함부르크와는 달리 빈은 활력이 넘치고 밝은 도시였던데다, 브람스 본인이 빈에 적응하느라 바빴는지 이 무겁고 심각한 곡을 작업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고향 함부르크에서 모친이 오늘내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브람스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빈에서 함부르크로 달려갔지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버린 뒤였다(빈과 함부르크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 브람스는 이번에야말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정도의 슬픔에 빠지고 말았다. 두 달이나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린 브람스는 한동안 중지되어 있던 이 대곡의 악보를 꺼내 작업을 재개했다. 그리고 1년 후 마침내 여섯 악장으로 된 전곡을 완성하게 되었다. 신중한 성격의 브람스는 이 곡을 세 개 악장만 시험적으로 빈에서 초연한 뒤, 완전체 전곡을 1868년 4월 10일에 브레멘에서 드디어 자신의 지휘로 무대에 올렸다. 결과는 압도적인 성공이었다. 클라라가 브람스에게 쓴 한 장의 편지가 이 성공을 뺴도 박도 못하게 증명한다!


“ 저는 당신의 레퀴엠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 곡이 지닌 이상한 힘은 듣는 이를 깊이 감동시키고야 맙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게 훌륭한 작품입니다. 장엄하면서도 시적인 그 음악에는 사람들을 흥분하게도 하고 차분히 가라앉게도 하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러한 대성공에 힘입은 대작 “독일 레퀴엠”은 브레멘 초연을 시점으로 10년간 독일어권 국가에서만 무려 100번 이상 연주되는 대기록이 세워졌고, 그 이전까지 촉망받는 유망주 작곡가에 불과하던 브람스의 명성이 확고부동해지는 확실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그런데 여기에도 만족하지 못한 완벽주의자 브람스는 향후 한 곡을 더 추가해 현재의 형태를 만들었다).


이것이 개괄적으로 짚어본 브람스 독일 레퀴엠의 작곡배경이다. 그런데 클라라의 편지에서 암시하고 있는 바, 이 대곡은 “레퀴엠”이라는 프레임이 가진 통상적인 성격과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브람스가 이 곡을 쓰면서 가진 시선의 방향이 결코 망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망자와 아직 살아있는 자를 균형있게 바라본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브람스의 시선의 균형추는 살아있는 자 쪽에 좀더 쏠려 있다. 고로 레퀴엠이라는 형식이 가지는 우중충함과 찝찝함으로 대표되는 선입견을 전혀 가지고 들을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10년 간격으로 겪은 브람스의 고뇌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제대로 된 위로 또는 다독거림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닫고 있었던 듯하다. 이러한 독일 레퀴엠의 내러티브는 지금의 이 코로나 시국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크기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거대한 고통을 5천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나눠서 지고 있는 이 순간, 브람스가 부드럽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 얼마나 고마운지. 언론매체의 선동질에 일희일비, 부화뇌동하지 말고 서로 힘내자고 격려하고, 각별히 조심은 하되 두려움은 내려놓자고 다독거려 보자. 그러나 한껏 날카로워진 시민들의 현재 멘탈 상태로는 말로 하는 이러한 다독거림조차도 오해의 소지(특히 정치적으로)가 없다고 결코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는 브람스 독일 레퀴엠이 주는 다독거림에 귀와 가슴을 맡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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