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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Apr 20. 2020

연습곡의 목표를 고찰하다

바흐, 쇼팽과 체르니의 근본적인 퀄리티 차이

 하루는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다가, 옆방의 한 취미생이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곡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영 귀가 괴로웠다. 그 사람은 피아노 꽤나 치는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기계적이고 반복 많고 템포는 어지럽게 빠르고…정말 문자 그대로 미디 느낌이었다. 로비에 나와 있을 때 그 사람에게 무슨 곡이냐고 물어 보았다. 체르니 op.299(체르니 40번)의 39번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체르니 40번을 딱 반 정도까지 쳤었고 이것이 너무 지겨워서 학창시절 피아노 배우기를 권뒀기에 39번을 처음 들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결국 블라인드 테스트로 들은 음악이 심한 거부감을 줬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체르니였던 셈이다. 악보를 보니 음형은 쇼팽 에튀드 op.10-1 “승리”와, 검은 건반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op.10-5 “흑건”과 유사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연습하면서 저 두 곡도 연습하고 있는 걸 많이 보았다. 연습실에서 그 사람과 오며가며 상당히 친해진 상태라, 조심스럽게 한 번 물어 보았다. “승리도 있고 흑건도 있는데, 굳이 이걸 칠 필요가 있나요?” 그러자 대답을 머뭇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저 씩 웃기만 한다. 추측건데 이 사람은 어쨌든 체르니는 필수로 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체르니 op.299(체르니 40번) 39번과 쇼팽 op.10-1 비교>


 뭐 굳이 체르니를 쳐야겠다면야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좀 답답했다. 앞서 언급했던 쇼팽 op.10-1과 체르니 40번의 39번은 유사한 테크닉을 쓰고 길이도 비슷하다. 그런데 음악이 주는 느낌은 그냥 클래스가 다르다. 한 마디로 하늘과 땅 차이다. 넓은 음역을 위아래로 오고가는 오른손의 아르페지오와 단순하게 코드 또는 옥타브만 짚어 주는 왼손이란 구조는 비슷한데, 쇼팽의 그것은 심금을 울리는 느낌이 뚜렷한 확실한 예술성을 보여주고, 체르니의 그것은 차라리 미디로 만든 음악을 듣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단조롭고 조잡한 느낌이다. 이것이 고수와 범인의 차이다. 체르니라는 인물을 범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냥 음악을 대하는 가치관의 차이라고 해 두자. 그래도 의문을 생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체르니는 엄청난 다작의 작곡가다. 그런데 거의 도식에 맞춰서 기계적으로 쓴 작품이 이렇게 많다면 그것 또한 왜 그랬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슈만은 체르니를 가리켜 "상상력과 영감이 결여된 작품을 마구 찍어내는 피아노 교사다. 누군가 그를 은퇴시키고 작곡을 중단하도록 연금이라도 넉넉히 줘야 할 판" 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는데, 내가 느끼는 바도 정확히 똑같다(정작 쇼팽은 체르니를 높이 평가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https://youtu.be/nMM6h9Yf348

쇼팽 : 연습곡 op.10-1 "승리"

마우리치오 폴리니, 피아노

https://youtu.be/N4aERGV_tBg

체르니 : The school of velocity op.299-39

권순훤, 피아노


 연습곡이라는 장르로 한정해 봐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쇼팽의 연습곡을 가리켜 연습곡이라는 영역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혁명적인 작품이라고 일컫는다. 각 곡들마다 목표로 하는 테크닉이 따로 있으면서도 각 곡들이 극히 높은 예술성을 구현했다는 점에서다. 그런데 이것 또한 그 자체로는 틀린 이야기가 아니지만, 또 완전히 맞는 이야기도 아니다. 예술성과 음악성을 불어넣은 연습곡의 원조는 바흐이지 쇼팽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흐는 자신의 생애에서 특히 쾨텐 시절에 다양한 악기를 위한 기악곡들을 대거 썼는데, 이 작품들의 대부분은 원래의 용도가 연습곡들이다. 예를 들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서문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전주곡과 푸가는 젊은 음악학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또 어느 정도 음악을 익힌 자들에게는 '여가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라고 쓴 바흐의 의도가 딱 못박혀 있다. 연습곡이라는 것이다. 또한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무반주 첼로 모음곡 등 우리가 흔히 듣는 독주악기용 작품들 또한 원래는 연습곡의 의도로 작곡된 작품들이었다. 즉 바흐의 이런 정신을 쇼팽이 계승한 것이라고 봄이 옳으며,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리스트, 모슈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스크랴빈, 드뷔시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명품 에튀드들을 쉼없이 쏟아낸 것이다. 즉, 바흐가 일찍이 “연습곡은 이렇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던 셈이다. 심지어 체르니조차도 평생 바흐 평균율을 깊이 연구했고, 아직도 널리 쓰이는 자신의 에디션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써놓은 수많은 연습곡들은 가슴을 울리는 깊은 음악성을 왜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인가. 물론 듣다 보면 상당히 수려하고 예쁘다는 느낌을 주는 곡들도 적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것을 넘어선 깊은 감동을 주는 음악은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 내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체르니라는 인물을 비하하자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체르니는 연습곡들을 작곡할 때 오로지 테크닉의 연마라는 목표에만 포커스를 맞췄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 맞게 쓰는 것이 옳다. 예를 들어 취약한 테크닉을 발견했을 때 그 테크닉을 연습하는 목적의 연습곡을 골라서 치는 식으로 말이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것까지도 필요 없다고 본다. 바흐의 인벤션과 평균율을 치면서 성부들을 귀로 예리하게 가려내는 연습을 하고, 쇼팽 에튀드를 치면서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음악성의 표현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익히고, 스크랴빈이나 라흐마니노프 에튀드로 자유롭게 감성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천 배는 더 유익한 것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어린 시절에 이미 쇼팽 에튀드 24곡을 자다 일어나서도 바로 칠 수 있을 정도로 마스터했으며, 클라우디오 아라우는 48곡의 바흐 평균율의 전곡을 모든 조로 이조해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익혔다고 한다. 현재와 과거에 이름을 날린 이 두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레퍼토리가 매우 넓다는 것인데, 바흐 평균율과 쇼팽 에튀드가 쌓아준 데이터들의 결과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체르니 100, 30, 40, 50, 60을 모두 친 사람이 그렇게 레퍼토리가 넓다는 이야기는 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저렇게 치다가 피아노에 정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피아노를 치는 목표는 기계적인 기술 습득이 아니다. 물론 과정일 수는 있겠지만 최종 목표는 될 수 없다. 최종 목표는 연주하는 이와 듣는 이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연습곡에도 예술성을 부여한 바흐와 그것을 계승한 쇼팽의 패러다임이 무조건 옳다. 오로지 테크닉의 연마에만 목표를 한정시킨 체르니를 계속 붙잡고 있는 건 정말로 시간 낭비다. 그런데 체르니의 이러한 커리큘럼이 (엉터리 체르니 커리큘럼의 원조)일본인들에겐 잘 맞는 것 같다. 일본인들은 본래 매뉴얼이 없으면 극히 무기력해지는 수동적인 국민성이 있는데, 체르니만큼 테크닉적인 매뉴얼이 체계적으로 잡힌 피아노 교재도 달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세상만사는 절대 매뉴얼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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