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신문을 읽으며 경제 공부를 하기 앞서 알아 두면 좋을 상식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전 ‘산업’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구분을 꼽습니다.
사례 하나 이야기하고 시작하겠습니다.
큰 배를 만들어 국내외 해운사들에게 판매하고 싶은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밑천이 전무했기에 사업계획서를 열심히 만들어 대출을 받기 위해 영국의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대출에는 담보가 필요한 데, 이 사업가에겐 거대한 사업자금에 걸맞게 담보로 제시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대출 담당자가 못 미더워 하자 사업가는 지갑을 꺼내듭니다. 그리곤 거북선이 그려져 있는 한국 지폐 한 장을 꺼냈습니다.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철갑선(거북선)을 제작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그렇지 밑천만 있다면 영국보다 더 나은 배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사업가는 차관(대출)에 성공했고, 30년이 지난 현재, 해당 회사는 전세계 조선사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조선업계를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정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유명한 일화들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곤 하지만, 전 이 이야기를 접하고 ‘산업과 금융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산업은 실존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하며 금융은 자금의 융통을 의미합니다. 금융이 없다면 산업이 없고, 산업이 없으면 금융도 없습니다.
자금 융통은 위에서처럼 차관을 통해 이뤄지기도 하지만, 주식이나 채권 등의 발행을 통해 이뤄지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만들어져 금융 시장에서 다양한 경제 주체(개인, 기관, 외국인)에게 거래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주는 대출 역시 대표적인 금융 활동 중 하나이고요.
위에 언급한 사례에 나온 조선업은 실체가 존재하는 산업 경제 중 한 분야입니다. 물론 산업이라고 모두 실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화가 없더라고 서비스로서 산업을 영위하는 것들도 많으니까요. 예를 들면 정보기술(IT) 관련 서비스들이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사례 말고도 수많은 성공한 기업들이 처음엔 작은 아이디어로 시작해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이는 모두 ‘금융’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사업아이디어를 계획서로 만들고 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실행하고, 결국 산업경제와 금융경제(이자 수익) 모두 성장하는 구조인 셈이죠.
어디선가 많이 보고 들어본 내용 같죠? 바로 우리가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차를 사거나 더 가까이는 신용카드로 결제를 할 때도 이와 같은 원리의 적용을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에 발생할 우리의 이득에 대한 신용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셈이죠. 금융은 신용을 기반으로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산업경제와 금융경제는 한 국가의 경제 발전도에 따라 엎치락 뒤치락 힘겨루기를 하곤 하는데요, 우리나라 경제 발전 상황에 빗대어 좀 더 설명해보겠습니다.
자본주의를 크게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로 나누는데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성숙단계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도입기의 자본주의에는 금융 경제 보단 산업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고 출시하기만 하면 불티나게 판매가 되는 시기인 것이지요.
하지만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제품 경쟁력이 중요해지면서 자본주의는 성장기를 넘어 성숙기로 넘어가게 됩니다.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소비자들은 이제 눈이 높아져 양보다 질을 추구하고, 더 나아가서 윤리적이며 환경을 생각하는지도 고려하며 소비하기 시작합니다. 성숙기에 접어든 자본주의는 산업에서 금융으로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 지표로만 봐도 산업보다 금융이 자본주의를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산업 경제, 실문시장의 대표 지표인 GDP는 2021년 기준 약 2000조원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반면 금융경제의 경우 주식시장 1580조원, 채권시장 2500조원, 외환, 장외 파생상품 시장만 해도 1300조원을 웃돌고 있습니다. 그 외 언급하지 않은 금융경제 시장 등을 감안하면 실물시장(산업경제)과 자본시장(금융경제)의 격차가 실로 어마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산업 경제를 능가해 버린 금융 경제
이런 상황을 개인에게 빗대어 보자면 제조업, 유통업, 각종 서비스업 등을 개발하는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마냥 만능인 시대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산업경제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흐름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 흐름은 이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을 넘어 ‘돈'도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부모님의 부모님의 세대가 열심히 피와 땀으로 일궈낸 고속 성장으로 우리 나라는 막대한 부를 창출했고, 이 막대한 유보 자금을 ‘어떻게’ 활용할 지가 바로 우리 세대가 당면한 과제인 셈입니다.
제가 글을 쓰고 있는 2023년 현재는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고금리로 전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사실 제로금리, 저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던 세계경제에서 최근의 고금리 현상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급작스럽게 코로나가 전세계를 삼켜버리며 미국 정부에서는 어마어마한 통화량을 풀게 됐고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연준의 금리 상승에 따라 전세계 곳곳에서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죠.
고금리 여파는 생각보다 큰 진통을 낳았습니다. 대출 금리가 높아지면서 서민들은 물론 기업도 휘청댔고, 부동산 거래는 시들해졌으며 주식 시장도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결국 금융시장이 실물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더 짙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는 약 60% 정도가 근로소득을 나타내고 자본소득은 19% 남짓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경제 활동을 하게될 시대에는 아마 이 수치가 서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돈에게 일을 시키는 시대가 될수록 안타깝게도 빈부격차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빈부를 결정하는 중요 조건 중 하나는 ‘경제와 금융에 대한 지식’일 것입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이사회 의장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기 한다”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이 한 말이 이 쯤에서 다시 떠올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