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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문 Nov 01. 2018

공포영화 속 여 주인공들은 원래 도망만 치지 않아

영화 [할로윈, 2018] 리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할로윈]의 부활은 비단 한 프랜차이즈의 성공적 귀환의 의미만 담고 있지는 않다. 영화 시장에서 거의 사장되었던 슬래셔 장르가 북미 박스오피스를 탈환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7080부터 90년대까지 미국의 영화 시장만의 대표적인 장르물 중에 하나였던 슬래셔 무비, [13일의 금요일], [할로윈],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부터 [스크림],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은 어느새 그들만의 정형화된 규칙을 형성하게 되고, 이로 인한 관객들의 피로 탓인지 한동안은 질 낮은 저예산 비디오 영화로만 제작되었다. 그런데 미국 영화 시장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제작사 [블룸하우스]가 [할로윈]의 리부트 작품을 꺼내왔다.


사실 영화판에서 맥을 못 췄을 뿐, 슬래셔 장르는 아직도 미국에서 사랑받는 장르 중 하나다. 그에 대한 반증은 미국 TV 드라마를 통해 확인된다. 영화판에서 답습하는 정체된 작품만 내놓던 시장이 드라마로 판을 넓히자 보다 이야기가 결합된 슬래셔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드라마 [스크림], [스크림 퀸즈]는 고정된 장르물의 규칙을 준수하면서 이를 한 단계 비트는 이야기 구조를 더해준 작품들이다.

미드 [스크림] - 슬래셔 +  젊은 하이틴공포물 + 살인범을 쫓는 스릴러
미드 [스크림 퀸즈] - 슬래셔 + 슬래셔 장르 속 피해자 1순위인 악녀 집단을 주인공으로 배치


#고전 장르에 대한 예우


블룸하우스가 제작하는 고전 슬래셔 무비라니, 슬래셔 장르를 어떻게 변주했을까 하는 엄청난 기대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 예상을 비웃듯이 영화 [할로윈, 2018]은 정통성 있는 방향을 선택했다. 특히 이전 할로윈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들이 눈에 띈다. 아이를 돌보는 보모에 대한 공격, 아이가 있는 집에 남자를 들이는 여자, 연쇄 살인마와 그의 담당 정신과 의사의 이상하리만큼 강한 집착, 엔딩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가질 공격성을 예후 하는 장면 등, 이 영화는 충실히 장르적 클리셰들을 이행하며 그 속에서 이전 할로윈 시리즈들이 가지고 있던 설정들을 꺼내와 향수를 느끼게 한다.



#할로윈만의 피해자-가해자의 관계


보통의 슬래셔 무비 장르라면 살인마의 탄생의 경우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기형아였기 때문에 받았던 서러움의 폭발일 수도 있고, 그가 애초에 돌연변이 괴물일 수도 있다. 물론 가족 구성원 모두가 미친 집안에서 어린 시절부터 학대받았던 설정 역시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살인마가 되었는지가 아니다. 그가 앞으로 피해자들을 사냥하고 유혈이 낭자하는 그 속에서 관객에게 얼마만큼의 공포감을 심어주는지, 그것이 핵심이다. 그렇기에 보통의 슬래셔 장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슬래셔 무비들의 일련의 도입부 규칙은 우연히 어딘가로 놀러 왔거나 혹은 남겨진 청춘남녀가 파티 속에서 살인마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구조를 가진다. 피해자-가해자 관계는 순전히 ‘오늘 참 재수 없었네’ 하는 정도의 우연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슬래셔 무비가 갖는 무차별적인 가해의 공포인 것이다.


[스크림](위),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아래)의 경우처럼 살인이 복수나 다른 목적을 띄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할로윈] 시리즈는 다르다. 마이클 마이어스는 그저 자신의 집에 들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로리(제이미 리 커티스)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다.(원작인 1편, 78년작의 기준으로는 마이클과 로리는 남매지간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집착이 맞고, 2편부터 둘이 남매라는 설정이 붙는다. 2018 버전은 원작인 1편의 4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역시 둘은 남매가 아니다.) 이러한 설정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우연히 마주할 수 있는 공포라는 점에서는 다른 슬래셔 무비와 동일하지만, 유독 한 인물에게 집착하는 살인마의 모습은 [할로윈]만이 가지는 독특한 지점이다.

[할로윈]시리즈의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


#살인마에 저항하는 자세


생존했지만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 사는 로리와 마이클 마이어스의 관계는 영화 도입부 기자들이 마이클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각적으로 표현된다. 병원에서 특별 케이스로 분류된 환자들은 체스판 형태의 격자무늬판 위에 놓여있다. 마치 하나의 장기 말처럼 마이클은 감정도, 표정도 없이 로리에 대한 집착만을 보인다. 로리 역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두려움에 맞설 준비가 되어있다. 둘은 끝나지 않는 게임 안에 갇힌 것이다. 후반부 추락한 로리가 사라져 있는 것을 바라보는 마이클의 모습은 1편의 오마주(동시에 슬래셔 무비에서 죽어도 죽지 않는 살인마의 클리셰)인 동시에 두 사람의 입장, 위치가 바뀌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마이클이 사냥당할 일만 남은 것이다.

상황의 역전, 마이클을 쫓는 로리


#그럼에도 남는 아쉬운 점들...


사실 피해자-가해자 관계가 역전되는 이러한 설정은 영화 [유어 넥스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로리가 강한 모성애로 맞서 싸우는 설정 역시 [할로윈 H2O]에서 나온 적이 있다. [할로윈, 2018]은 가장 모범적인 고전 공포영화의 전법을 쓰는 정공법과 살인마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이라는 그나마 현대식 설정을 교묘하게 믹스해놓았다. 사실 이 작품의 마케팅에서 자주 보이는 현대식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무색할 정도로 거의 모든 공포 영화의 주인공은 항상 여성이었으며, 그 주인공들은 절대로 나약하거나 보호만을 받는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다. 공포영화의 드라마 주요 골격이 유약했던 피해자가 자신의 공포와 마주하는 성장형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초반에 상대적으로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나약하게 그려질 뿐이다.

강한 여전사가 나오는 [유어 넥스트]


[할로윈, 2018]은 현재 북미 성적도 좋을 뿐 아니라 언론과 평론가들 사이에도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것은 현재 영화 시장과 언론이 보여주는 이중적이면서도 위선적인 작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여름에 개봉했던 [쥬라기월드 : 폴른 킹덤]을 생각해보자. 원작들에 대한 훌륭한 오마주와 전작보다 훨씬 복잡해진 플롯을 지녔어도 평단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할로윈, 2018]의 상황은 다르다. 외신에서부터 호평 세례의 작품에 대해서는 국내 평론가들은 입을 맞춘 듯 좋은 평만 남기고 있다. 물론 슬래셔 무비의 독실한 팬으로서 [할로윈, 2018]은 나쁘지 않은 작품인 동시에 훌륭한 슬래셔 무비의 귀환을 알렸다는 사실에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사실상 그 이상의 것은 갖추지 못했다. 철 지난 공룡놀이와 싸이코 드라마는 사실상 같은 선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여전사’를 강조하고 나섰다. 이전 작품들에서 나왔던 모든 생존자(여전사)들의 존재는 새까맣게 잊어먹은 듯 ‘최초’, ‘처음’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채 말이다.


네이버에 개재된 일반인의 평, 애초에 슬래셔 영화에 여성 캐릭터가 활약하지 않은 작품이란 게 있을까?
영화 기사에 일부 발췌 - '기존 공포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과는 달리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  기존의 작품들 속의 생존자(여주인공)는 다분히 의존적이었는 지 생각해보자




영화 [할로윈, 2018] 속 제이미 리 커티스의 멋진 여전사의 모습은 훌륭했다. 특히 마이클 마이어스를 수송한 차량이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그에 대한 두려움과 그를 죽이겠다는 일념 그럼에도 차마 죽이지 못하는 고뇌를 일 순간에 보여줄 때는 확실히 [할로윈] 시리즈에는 그녀가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슬래셔 무비를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멋진 장치는 살인마가 아닌 생존자 쪽일 수밖에 없다. 관객의 감정이입은 희생자의 시선에서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가두던 감옥에서 나오는 그녀의 모습은 시리즈를 장식하는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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